brunch

수제파이 가게에서 만난 알바에게

by Aeon Park

안녕, 네가 비록 마스크로 얼굴의 반을 가리고 아마도 머리카락이 떨어지는 걸 방지하기 위한 카페의 조처였을 모자를 야무지게 푹 눌러 쓰고 있다고 하더라도 네 눈빛과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나보다 어린 사람'의 아우라 때문에 나는 반말로 말을 걸어볼게. 나는 40대 후반의 아줌마거든. 아직 미국 Karen의 경지에는 다다르지 못했고 한국에서 말하는 젊줌마도, 영포티도 아니야. 그냥 아줌마야. 만나서 반가워.


나는 그날 남편과 함께 도시에 쇼핑을 나왔다가 파이집에 들렀고 내가 2년째 살고 있는 시골 동네에는 파이집은 커녕 단종되었다가 다시 나온다는 애플파이를 파는 맥도날드도 없는 관계로 우리는 반가움에 눈이 뒤집어졌어. 홍차에 우유를 넣어마시던 영국식 습관이 남아있기 때문일까? 남편은 한국생활 5년차에도 늘 카페라떼만 따뜻하게 마시기 때문에 '늘 마시던 걸로~'라고 말하곤 자리를 맡으러 가버렸고 주문은 오롯이 내 차지가 되었지.


저 인간은 어차피 핫 카페라떼만 마시니까 고를 필요 없고, 나도 그걸 마셔볼까? 메뉴를 읽는데 내가 좋아하는 플랏화이트가 있는 거야. 아 이걸 마실까 하던 순간에 내가 플랏화이트보다 더 좋아하는 '세일 메뉴'가 눈에 들어왔지. 파이와 아메리카노를 같이 하면 더 싸게 해준다는 세트메뉴. 그래, 파이는 어차피 먹으려고 했던 거니까 나는 이걸로 먹고 남편은 애플파이와 라떼를 시켜주자. 그런데 잠깐.. 이 맛있는 걸 엄마 아빠만 먹자니 너무 미안한데? 학교 간 우리 꼬맹이 거 두 개 더 사야겠다.


자, 이제 난 너에게 말을 걸 준비가 되었어. 펌킨 파이, 애플 파이, 블루베리 파이, 초코 파이랑요, 아메리카노는 세트로 묶어주시고 따뜻한 라떼, 마시고 갈게요. 같은 알바 처지에 내 딴에는 알아듣게 설명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뿔싸 아니었어. 어느 게 포장인지 어느 게 먹고 가는 건지 말을 안 했던 거지. 버벅대는 너의 모습을 보며 아차 싶었어. 아마도 오늘이 첫날일 수도 있겠구나 싶었던 거야. 연방(연신) 죄송하다는 너에게 나는 왕언니의 마음으로, 주말 3시간 알바의 마음으로, '아니예요 아니예요 천천히 하세요'라고 말했지. 다행히 뒤에 기다리는 사람도 없었거든.


네가 이전 카드 결제를 취소하고 다시 결제를 할 때는 초코파이를 아메리카노와 세트로 묶어 주시고, 라떼 먹는 사람은 애플 파이랑 먹을 거니까 블루베리랑 펌킨을 포장해주시면 돼요~ 라고 다시 말했어. 그리고 자리로 돌아갔지. 남편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왜 그렇게 오래 걸렸느냐고 물었고 나는 시끄럽다고 가만히 있으라고 일러뒀지. 왜냐하면 너의 사수랄까? 그 분이 계산대에 와서 너에게 뭘 잘못했냐고 묻기 시작했거든. 나는 그때 최대한 여기엔 잘못이 없음을 표현하고 자리로 돌아왔고 남편에게도 입을 닫았어.


그리고 손이 허전한 걸 느꼈지. 진동벨을 받지 않았던 거야. 줘야 받지. 하지만 눈치껏 저 커피 나오는 곳에서 지금 나오고 있는 저 트레이가 내 거구나 싶어서 얼른 받으러 갔어. 네가 또 잘못을 한 것처럼 보이게 하고 싶지 않았어. 그런데 문제는 다른 직원분은 이게 내 거라고 내가 아무리 말해도 진동벨이 없으면 줄 수 없다고 했어. 나는 조용한 목소리로 '진동벨을 안 받았고 이거 내 거 맞으니까 가져갈게요..' 라고 말했는데 그 직원은 결국 '진동벨을 안 드렸어요??'라고 목청껏 말하고야 말았어. 흑. 미안해. 트레이를 들고 돌아온 나에게 남편은 또 눈을 네모나게 뜨고 이번엔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이번에도 조용히 하라고 말했어. 그럴 일이 있고 그냥 조용히 있자고.


나는 그날이 너의 첫날이었다고 굳게 믿고 있어. 어설픈 너를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기 때문이야. 아직 친한 사람이 없어서 그랬겠지. 첫날인데도 가장 어렵다고 할 수도 있는 고객 응대를 그럼에도 왜 네가 하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앞으로도 내 뒤로도 친절하고 시간 여유 있는 사람들이 와서 그날의 네 하루가 괜찮았기를 바라. 나는 너에게 뭐라고 하기 위해 이 글을 쓰고 있는 게 아니야. 그럴 수 있어. 그럴 수 있으니까 힘내라고 말해주고 싶어서 쓰는 거야. 조금 손과 입이 더 익숙해질 때면 너는 "방금 주문하신 걸 세트로 묶어서 더 저렴하게 드릴 수 있는데 그렇게 해드릴까요?", "여기 진동벨 있습니다. 울리면 가져가시면 됩니다."라고 유창하게 말하고 있을 거야. 유창하다 못해 너무 외운 듯이 주절거려서 로봇이 말하는 건가 싶을 정도로 말이야. 나를 서브했던(serving) 그날의 너는 충분했어. 충분히 친절하게 4가지 종류의 파이를 정신없이 말하는 나의 주문을 다 받았고 어느 파이를 먹고 갈 건지 어느 파이를 포장할 건지 미리 말하지 못했던 나를 민망하지 않게 해주었고 그 정신없는 와중에 진동벨을 챙기지 않았던 건 누구나 그럴 수 있어. 진동벨은 정말 정신없는 가게에서 사람 대 사람으로 '음료 나왔습니다~'하지 못할 때나 필요한 거지, 나는 트레이가 나오자마자 내 것인 걸 알았고, 똑같은 주문을 한 다른 손님이 없었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진동벨 없이도 가져갈 수 있었는데 진동벨이 없다고 해서 트레이를 내어주지 않은 다른 직원에게 더 의아함을 느꼈으니까.


나의 첫날들이 생각나. 나는 MBC에 작가로 처음 들어간 날, 첫날이라 일이 없었던 것뿐인데 할일이 없어서 일을 찾아서 해야겠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같은 사무실에 있는 사람들의 책상을 치우기 시작했지. 내가 할 일도 아니었는데 말이야. 지금은 작가 후배들이 그런다고 하면 못하게 뜯어말렸을 거야. 그때는 어렸고 지금과 같은 세상도 아니었으니까. 남의 책상을 왜 내가 치워. 지금 생각하니 이불킥키리킥킥이야.


지금 일하고 있는 시골 카페에서의 첫날도 기억나. 첫날은 누구나 그런 거야. 그날이 너에게 특별히 힘든 날이 아니었기를 바라. 그저 첫날이었을 뿐이니까.







keyword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