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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초하 Sep 30. 2023

경력직 이직 6개월 차 후기

10년 차 직장인의 첫 이직 적응기

얼마 전 팀에서 같이 일하는 동료로부터

"초하님도 이직한 지 벌써 반년은 되셨네요?"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 질문을 받는 순간 정말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내가? 벌써???

시간이 참 빠르다.


내가 벌써 이직한 지 반년이라고? 6개월=반년, 사실 같은 기간이지만 반년이라는 표현이 사람을 엄청 위축시켰다. 엄청난 시간이 흐른 기분이다. 벌써 이렇게 많은 시간이 지났단 사실을 왜 부정하고 싶은 걸까?


아무래도 여전히 내 퍼포먼스는 내가 만족할 만큼 올라오지 않았음에도, 이직한 지 반년이나 되었다는 사실이 이제 더 이상 "난 이직한 지 얼마 안 됐잖아!"라고 핑계를 댈 수도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싶다. 벌써 여기서 일한 지도 6개월이 넘었으니 더 이상 핑계 대고 숨을 구석도 없다. 인정하자. 이게 내 실력이다.


그래도 이직한 지 3개월이 지나 수습해제가 되었을 때 엄청나게 다가왔던 불안감과 자존감 하락에 비하면 지금은 그나마 조금 나은 편이다. 나는 여전히 남들과 나를 비교하고 있고, 여전히 자리잡지 못한 것 같은 내 포지션에 불안하며, 여전히 내 연차만큼의 역할을 하고 있지 못하는 것 같은 느낌에 스트레스받고 힘들어한다. 하지만 그 괴로움에 너무 깊게 빠지지 않으려고 한다. 수렁으로 들어가려고 하면 스스로에게 얼른 말한다. "그만해! 1등 하려고 하지 말자! 꼴찌면 어떠냐! 적당히 하자!"


이직 후 새로운 환경에 부딪히며 나에게 왔던 이유 모를 불안감과 정신없음은 30분 단위 스케줄링 덕분에 많이 나아졌다. 사실 이 스케줄링을 한다고 해서 정신없음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밀물처럼 몰아치는 것들을 처리하다 보면 계획해 뒀던 오늘 하루 목표를 20%도 처리하지 못할 때가 부지기수다. "난 1분도 놀지 않는데 왜 이렇게 업무를 쳐내지 못하는 거지?"라는 근원적인 질문과 함께 스스로의 업무 능력을 의심한 적도 많다. 그래도 폭풍처럼 업무가 지나간 후 방황하고 있는 정신줄을 이 스케줄링 노트가 잡게 도와준다. 하나씩 클리어한 업무를 만년필로 찍찍 그을 때 오는 만족감도 한몫한다.


비교는 100% 풀지 못한 숙제이긴 하다. 나보다 연차도 낮지만 훨씬 좋은 퍼포먼스를 보이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왜 나는 저만큼 하지 못하는 걸까? 비교할 때가 많다. 하지만 어느 정도 내려놓고 인정하기로 다짐한 순간부터 이런 스트레스도 조금씩 줄어들 수는 있었다. 내가 연차는 많지만 실력이 연차순이 아니니까... 내 실력은 1등이 아니고, 1등이 되고자 하는 욕심도 내려놓으니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고 본질도 놓치지 않게 되었다. 6개월간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며, 남과 비교하면 남의 것이 커 보이고 어쭙잖게 남을 흉내 내다 나의 장점까지 잃게 된다는 것을 배웠다. 남과 비교하며 마음속에 번잡스러운 생각이 들 때마다 떠올린다. "저 사람은 저런 걸 잘하고 나는 이런 걸 잘한다. 내가 잘하는 것을 하자. 본질은 결국 매출을 만드는 것이다." 본질을 떠올리면 번잡스러운 마음에 소화기가 찾아온다.



남과의 비교에서 자유로워지기까지 법륜스님의 "나는 괜찮은 사람입니다"라는 책이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 남과의 비교에서 내가 속상한 이유는, 스스로를 아주 뛰어난 사람으로 만들어놓고, 가상의 자기를 기준으로 현실의 나와 비교하기 때문이란다. 현실의 나를 끌어올려 허상에 맞출게 아니라 허상을 버리면 지금 이대로의 내 모습도 괜찮다는 것! 어쩜 나도 내 스스로에게 너무나 높은 평가 잣대를 들이대며 스스로를 괴롭혔던 것 같다. 너무 힘들게 살지 말자. 적당히 살자! 괴로운 마음이 들 때마다 이 문장을 속으로 항상 읊는다.



"잘하려고 하지 말자! 대충 하자!"



한편... 여기 온 지 6개월 정도 되니, 내가 어쩌다 메인 담당(?)이 되어 진행 중인 된 두 가지 정도의 agenda도 생겼다. 이 중 하나는 회사에서도 나름 중요하게 챙기고 있는 개발 과제건인데, 개똥도 약이 될 수 있는지 전 직장에서 대리 시절 2~3년 정도 잠깐 관련 업무를 했었던 게 매우 도움이 되고 있다. 그 경험이 없었다면 여기서 적당히 아는 척도 못했을 거고 또 한 번의 멘붕을 경험했을 것 같다. 뭐든 중요하지 않은 일은 없다는 걸 다시 한번 체감한다.


이렇게 이직 6개월도 어영부영 지나가고 있다.


잘하고 있는 것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최대한 나를 보호하고 지치지 않는 방향으로 내 마음을 관리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는 요즘이다. 회사에서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보다 나의 삶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늘 잊지 않으려 한다. 언제나 우선순위 제1순위는 나 자신이다!



이직한 지 6개월째 되었을 때 썼던 일기입니다.

정말 "이직한 지 반년이나 되었네요?"라는 동료의 질문에 화들짝 놀랐던 기억이 생생하네요.

반년이라는 표현이 주는 무게감이 너무나 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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