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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초하 Oct 01. 2023

이직 8개월 차, 결국 실수를 했다.

10년 차도 이직은 어렵더라고요

새로운 팀장님이 오셨다. 내가 이 회사로 이직한 지도 약 8개월, 이제 겨우 적응하나 했더니 또 다시 새로운 팀장님의 업무 스타일에 적응을 해야 했다. 새로운 사람이 오면 늘 그렇듯 당연하게 해 왔던 업무도 설명이 필요하고, 없던 업무도 생겨나게 된다. 루틴하게 진행했던 주간 회의도 약간의 긴장감을 갖게 된다. 팀장님이 새로 오면서 타이밍 좋게 일도 넘쳐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일에 치여 쫓기듯 시간을 보내고 있다 보니...


결국 실수를 했다.


휴먼에러 하나 대차게 냈고, 매출도 빵꾸가 났다. 실수를 하려면 티 안 나는 실수를 하던가! 엄청 표 나는 실수를 했다. 하하!


요 며칠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일을 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싶었다. 내 실수로 데미지를 입었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벌어진 일인 걸. 실수를 수습하고, 남은 일들을 마무리하고, 미룰 수 있는 건 최대한 미루고, 퇴근하려고 보니 벌써 7시였다. 야근인들 많은 이 회사도 금요일엔 다들 일찍 퇴근하는 분위기인데 나만 늦게 퇴근하네.... 이미 슬랙 불이 꺼진 팀원들의 상태를 보며 씁쓸한 마음으로 나도 퇴근을 찍고 방을 둘러보는데....


정리되지 않은 이불과 난장판인 침대, 폭탄 맞은 듯한 책상, 그리고 씻지도 않은 몰골에 잠옷 차림의 내 모습을 보니 현타가 왔다.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 실수를 해서 우울한 게 아니었다. 상황에 휩쓸리고 쫓기듯 산 내 일상이 우울했다.


걷잡을 수 없이 다운되는 기분을 애써 감추고 밖으로 나왔다. 원래 집 앞 헬스장으로 운동을 가는데, 오늘은 밖을 걷고 싶었다. 한강으로 나갔다.



핸드폰을 가방에 넣고, 앞만 보고 걸었다. 헬스장에선 러닝머신을 하면서도 핸드폰을 손에 놓지 않고 있었는데, 간만에 핸드폰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시간이었다. 무념무상으로 걷고 싶었지만 잡생각이 뭉게뭉게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나 요즘 왜 이렇게 쫓기듯 살고 있는 걸까?


휩쓸리지 않고 중심을 잡고 지내기 위해 노력하려 하지만, 출근하면 여기저기에서 불러대는 슬랙 멘션에 정신을 못 차리기 부지기수다. 그 덕분인지 이직 후 꾸준히 나를 괴롭혀왔던 남과 나를 비교한다거나, 내 퍼포먼스가 불만족스럽다거나 하는 생각에 더 이상 매몰되지는 않게 된다. 정확히는 그런 생각에 매몰될 겨를이 없다. 바쁘니 이런 것도 다 상념이고 쓸데없는 고민이란 사실을 깨닫게 됐다. 하루하루 내게 주어진 일을 쳐내기 바쁘다. 사실, 이게 정상의 삶은 아니다.


실수는 내가 정상적으로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는 위험 시그널이다. 오늘 나는 내 실수를 통해 지금의 내 삶이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내가 나에게 보낸 위험 시그널 덕분에, 상황이 더 심각해지기 전에 이 문제를 인식하게 된 것을 오히려 감사하게 받아들여야겠다. 똑같은 실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으면 된다. 나에게 숙제는 지금의 내 생활의 균형을 다시 잡는 것이다. 아무쪼록 넘쳐나는 일복 속에서도 휩쓸리지 않고 쫓기지 않고 내 중심을 잡고 이 시간을 보내고 싶다. 일에 너무 과몰입하지 않고 내 생활을 잘 챙겨야겠다.



물론 이직하고 그동안 실수가 아예 없었던 것은 절대 아니었는데요. (잔잔바리 실수가 얼마나 많았겠어요!)


대차게 휴먼에러 하나 내고, 제대로 정신적 데미지 입었던 날 썼던 일기입니다.


지금 와서 다시 읽어봐도 아찔하고 힘들었던 기억이네요. 분명한 건, 시간은 흐르고 실수는 잊혀지고 사람은 성장한다는 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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