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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초하 Oct 19. 2023

팀장 해볼 생각 있나요? - 팀장 제안과 거절

초짜 이직러에게 닥친 위기​

불길한 기운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다.


참으로 평범한 날이었다. 어느 때와 같이 일을 하고, 밥을 먹고, 회의를 했다. 그날의 마지막 회의는, 우리 팀에 새로 오신 신규입사자 분께 어떤 업무를 주면 좋을지 논의하는 자리였다. 팀장님은 팀원들의 의견을 수렴해서 어떻게 업무를 나누면 좋을지 의견을 주셨고, 팀원들 또한 각자의 입장을 전하며 전반적인 업무를 조율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렇게 평범하게 회의가 마무리되는 듯 했다. 회의를 마치려는 때 팀장님께서 갑자기 한마디 하셨다.


"미팅은 여기서 끝낼게요. 초하님께 논의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초하님은 잠깐만 남아주세요. 다른 분들은 나가보셔도 됩니다."


미팅을 참석했던 다른 팀원들은 하나둘씩 나갔고, 갑자기 소환된 나는 어리둥절한 상태였다.


"갑작스럽겠지만, 혹시 팀장해 볼 생각 있어요?"

"네....??????"


갑작스러운 질문에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지금 조직개편을 논의 중인데요. 저희 팀이 2개 팀으로 나뉘게 될 수도 있어요. 팀이 나뉘면 새로운 팀장을 선임해야 하는데, 혹시 초하님이 새로운 팀을 맡아줄 수 있을지 먼저 의사를 물어보는 거예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제안이었다. 아니, 이것은 나에게 제안이 아니라 시한폭탄이었다. 나는 팀장을 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리고 스스로가 팀장을 할 수 있을만한 역량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하지도 않았다. 무턱대고 팀장을 했다가 나 혼자 독박쓰고 끝날 일이 아니었다. 팀이 다 같이 망할 수도 있었다. 팀장 제안을 받자마자, 이미 내 머릿속에는 침몰하는 배의 형상이 그려지고 있었다.


"아뇨. 지금 사실 너무 당황스러운데요. 저는 팀장 할 역량도 없고요. 자신도 없어요..."


갑작스러운 시한폭탄에 심장이 벌렁거리고 얼굴이 벌게진 채로 나는 횡설수설 대답을 이어갔다.  


"제가 지금 팀에서 연차가 가장 많다 보니 이런 제안을 주신 것 같은데요. 팀장은 감히 제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닌 것 같아요."


횡설수설 대답하고 있었지만 사실 내 말의 요지는 하나였다. '싫어요! 못해요!!!'


"초하님이 연차가 많기 때문에 물어본 건 전혀 아니고요. 제가 가까이에서 함께 업무를 하며 봤을 때, 실제로 초하님께 맡기면 잘할 것 같아서 제안하는 부분이었어요."


"아뇨. 그럴 리가요..."


"사실 제가 초하님 성향을 아니까 거절할 것 같다고 예상하기는 했어요. 그래도 오늘 처음 제안을 받은 부분이니까, 한 번 고민해 보고 내일 다시 이야기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어때요?"


"네. (더 고민하더라도 제 대답은 동일할 것 같긴 한데요.) 일단 알겠습니다..."


미팅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내 심장은 여전히 두근댔고, 일은 손에 잡히지 않았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니 "언젠가 팀장이 되는 날도 오긴 하려나?"라는 막연한 생각을 해본 적은 있었다. 하지만 그게 적어도 지금은 아니었다. 아니, 내가 벌써 이런 제안을 받게 될 것이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지금 회사로 이직하기 전, 이전 회사에서 난 중간 연차의 과장이었고 팀장은 멀고도 먼 미래의 일이었다. 이런 고민을 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근데 이직하고 온 지금의 회사에서 나는 생각보다 너무나 고연차였다. 10년 가까이 한 회사에서 우물 안 개구리로 있으며 세상 물정을 너무 몰랐다. 우물 밖으로 나오니 10년 차는 꽤나 무거운 연차였고, 사실 내 연차에 팀장을 하는 게 그리 이상한 것도 아니었다. 그 사실을 내가 여태 몰랐다는 게 문제였다.


내가 팀장을 할 수 있을지 상상을 해보았다. 내가 하는 말을 팀원들이 신뢰하고 따라올까? 내가 팀의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을까? 내가 올바른 의사결정을 할 수 있을까? 내가 팀원들을 대신해서 싸워줄 수 있을까? 내가 우리 팀의 성과도 잘 어필할 수 있을까? 머릿속에 떠오르는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요" 하나로 귀결됐다. 나는 냉정하게 우리 팀에서 업무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아니다. 이미 나보다 훌륭한 퍼포먼스를 보이는 팀원들이 많다. 그들에게 내가 팀의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을지, 내가 제시한 방향성을 팀원들이 따라줄지 확신이 없었다. 업무 이해도 100%가 아닌 내가 과연 올바른 의사결정을 할 수 있을지도 의구심이 들었다. 내 성격상 팀원들 대신하여 싸워주는 건 기대도 할 수 없다. 결격 사유가 너무 많았다. 이건 하면 안 되는 일이었다. 고민을 하면 할수록 하면 안 된다는 확신만 강하게 들었다.




다음 날, 팀장님과의 두 번째 면담을 하였다.

나는 어제오늘 생각한 내용을 정리해서 간곡한 거절의사를 표시했다.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는데, 너무 죄송하지만 사실 아무리 고민해 봐도 제 답변은 '못할 것 같다'로만 정리가 되네요. 팀장은 밖에서 팀원들 대신해 싸워줄 수도 있고, 얻을 건 얻고 어필할 것은 어필할 수 있는 그런 역량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저는 그런 면이 전혀 없어서 제가 팀장을 하면 오히려 혼선이 올 것 같아요. 솔직히 우리 팀에 업무적으로 저보다 뛰어나게 잘하는 사람들도 많아서, 제 업무 역량이 팀장을 할 수준도 못된다는 생각도 하고요. 다 떠나서 관리자는 조직을 관리하는 능력이 필수적인데, 저는 사실 리더로서 누군가를 리딩하고 이끄는 역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저같이 아무것도 모르고 역량도 없는 사람이 함부로 팀장이 되면 팀원들도 저도 다 힘들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조직장에게 "나 이렇게 역량이 없어요"라고 자기 PR 하고 있는 상황이 우스웠다. 하지만 자존심보다도 너무 하기 싫은 마음이 더 컸는지, 나의 답변은 장황하고 길게 이어졌다.


"초하님이 이렇게 단호하게 말하니 더 이상 제안하기도 어렵네요. 초하님 생각은 알겠어요. 하지만 초하님도 연차가 있기 때문에 언제까지 팀장직을 피할 수는 없어요. 지금은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였고 갑작스러운 제안이었으니 이해하지만, 앞으로 조금씩 리더의 역량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어요. 그게 초하님의 커리어 발전에도 도움이 될 거예요."


"네. 알겠습니다."


이렇게 두 번째 면담이 끝이 났다. 무슨 정신으로 말하고 끝났는지도 모르겠다. 팀장에게 자기 어필은 못할 망정, 나는 이렇게 역량이 없다고 구구절절이 설명하고 끝나다니... 원했던 바-팀장직을 맡지 않는 것-를 쟁취했음에도, 마음 한 켠이 씁쓸한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팀장을 하기 싫은 마음도 컸지만, 내 업무 퍼포먼스에 자신감이 없어서 잘 해낼 자신이 없는 마음이 더 컸다. 이 일만 10년을 한 사람인데도, 아직까지 내 업무 역량에 자신감이 없다는 사실이 슬펐다.


언젠가 내가 스스로 판단하기에 팀장을 할 수 있을만한 역량이 갖춰진다면 모를까, 근시일 내에 기꺼이 팀장직 제안을 받을 일은 없을 것 같다. 아마 평생 그럴 일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오늘도 고비를 넘긴다.



이 위기(?)를 잘 넘긴 후, 팀은 조직개편이 되었고 새로운 팀장님이 오셨습니다.


새로운 팀장님의 모습을 보면서, 역시 팀장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은 따로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역시 저는 팀장을 할만한 재목은 아니었단 사실에 확신이 드는 요즘입니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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