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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초하 Oct 21. 2023

적응한 듯 적응 아닌 적응 중인 나

10년 차 초짜 이직러의 이직 11개월 차 회고

요즘 일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내가 이직한 지 몇 개월이나 되었는지 세어본 지도 꽤 오래되었다. 오랜만에 손가락으로 세어봤더니, 8개월... 9개월... 10개월... 11개월??????? 벌써 다음 달이면 1년이라고? 상상도 못 했던 11이란 숫자와 마하의 속도로 흐른 시간에 꽤나 놀랄 수밖에 없었다.  


벌써 이직한 지 11개월이나 된 경력직 이직러로써 요즘 나의 상태는, 이직이라는 놈의 밀당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중이다. 어느 때는 "이제 나도 적응했구나" 싶다가도, 돌아서면 "왜 이렇게 생경하지?" 싶고, "언제쯤 이 생활을 적응할 수 있지?"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분명 이직 초반의 내 모습에 비하면 일적으로도, 심적으로도 안정감이 생긴 건 분명하다. 그렇지만 그래서 누가 나한테 "이제 좀 적응했니?"라고 묻는다면 선뜻 "네" 또는 "아니요"라고 확답할 수 없는 애매모호한 상태다. 적응한 듯 적응 아닌, 여전히 적응 중인 요즘이다.


조금은 적응한 듯?

일단 이직 초반에 느꼈던 업무적인 불안감은 많이 해소가 되었다. 내 업무 퍼포먼스가 올라갔다거나, 팀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기보단 (뭐 그런 면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잘하고 싶다는 욕심을 내려놓은 게 더 결정적인 이유인 것으로 보인다. 완벽하고 높은 성과를 내고 싶다는 마음을 내려놓았다. 이곳에 와서 날 괴롭혔던 크리에이트브함은 내가 노력한다고 잘할 수 없는 분야인 것으로 받아들였다.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에 집중하기로 했다. 나는 브랜드 마케터가 아닌 프로모션 마케터고, 본질인 매출 극대화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생각이 심플해졌다. 뱁새가 황새 쫓아가려고 가랑이 찢어질 뻔했던 실수를 줄이고 있다. 잘하면 잘하는 대로 용기를 얻고, 못하면 못하는 대로 "그럴 수도 있지 뭐"라고 마음의 유연함을 기르고 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며 업무적인 포션도 저절로 커지다 보니 일을 쳐내느라 이런저런 잡생각이 줄어든 것도 한몫을 했다. 일 하나하나의 성과와 퀄리티를 생각하기엔, 업무가 산적해 있었다... 7월부터 8월 초까지는 업무량이 극에 달해 어떻게 이러고 살 수 있을까 싶기도 했다. 최근에는 일 쳐내기 모드로 모든 것에 임하고 있다. 이러다 보니 이직 초반에 비해 업무적인 불안감이 덜해진 것도 크다. 경력직 채용은 그 회사에서도 일이 많고 시킬 것이 왕창 많아 비싼 돈 주고 뽑는 것이니, 업무적인 불안감은 시간이 지나면 어느 정도 해소되는 것 같다. 이건 사실 많은 이직 선배들이 나에게 해준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직한 지 얼마 안 됐을 땐 내가 제 몫을 다 못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불안감이 컸다. 시간이 지나며 이직 선배들이 해준 이야기에 나도 공감이 된다. 업무적인 불안감은 시간이 지나며 어느 정도 해소가 된다. 회사에서도 양껏 부려먹으려고 뽑은 것이기 때문에...^.^


아직 완전한 적응은 아닌...

여전히 출근을 생각하면 항상 마음이 불안하다. 한 번도 편안한 마음으로 출근한 적이 없다. 이 회사의 시스템이 파악된 것 같다가도, 잘 모르고 생경한 부분이 툭툭 튀어나온다. 낯설고 새로운 공간에 놓여있을 때 큰 불안감을 느끼는 나로서는, 이 생경함이 주는 불안감이 지속적인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언제쯤 이 낯설고 생경한 감정이 사라지고, 편안한 마음으로 출근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매주 월요일이 새롭고 생경하다. 겨우 겨우 한 주를 버티다 보면, “이 생활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마음이 바쁘고 버겁다 보니 나도 모르게 ‘내일은 모르겠고, 일단 오늘 하루만 버티자’ 모드로 지내게 된다. 그래서 늘 하루살이처럼 산다. 당장 닥친 업무만 쳐내고 늘 일을 뒤로 미룬다. 그러다 보니 내일의 나는 늘 닥쳐서 일하기 일쑤고, 마음이 불안하고 조급하다. 악순환의 반복이다!


사실 이직하고 얼마 안 됐을 때는 이러한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퇴근 이후의 내 시간도 기꺼이 할애해서 잔업을 처리하곤 했었다. 요즘의 나는 그러고 싶은 열의가 1도 없다 ^.^ 어떻게든 빨리 퇴근하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에!


여전히 적응 중인 나

그래서 이직 11개월 차인 나는, 여전히 계속 적응 중인 상태다. 이곳에서의 시스템은 여전히 생경하며, 업무도 할만하면 새로운 게 튀어나와서 날 힘들게 만든다. 그래도 가장 달라진 점은, 이제는 힘들 때마다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동료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전 회사처럼 엄청난 친분을 자랑하는 관계는 당연히 아니다.(재택이라 그렇게 친해지기도 어렵다.) 그래도 11개월 정도 이곳에서 일하다 보니 적당히 내 힘든 점을 토로할 수 있고, 일하기 싫을 때 툴툴댈 수 있으며, 어려운걸 편하게 물어볼 수 있는 관계성이 생겼다. 슬랙으로만 커뮤니케이션하는 사이들이지만, 그래도 오래간만에 출근해서 만나면 반가운 마음도 든다. 피상적인 관계 속에서도 나름의 동료애가 쌓이는 것 같다. 그래서 이직 초반보다는 덜 외롭고, 덜 힘들다. 이렇게 조금씩 새로운 조직에 적응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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