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나를 책임지는 사람은 바로 나
새해라고 크게 의미를 부여하며 살지는 않았다. 특히 30대에 접어 들면서부터, 새해는 나에게 외면하고 싶은 존재가 되었다. “또 한 살을 먹는다”는 사실이 썩 달갑지 않았던 것이다. 한 해 한 해가 넘어갈 수록 더해지는 내 나이의 무게가 버거웠다. 그래서 새해는 나에게 반갑지 않은 존재였고, 새해를 가장 새해답지 않게 보내는 게 나만의 새해 루틴이 되었다. 늦게 일어나고, 떡국도 먹지 않고, 늘어지게 쉬기만 하는 그런 어느 평범한 휴일일 뿐이었다.
새해에 대한 생각이 바뀌게 된 계기는 몇 년전 한 예능 프로그램 덕분이었다. 즐겨 보던 TV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서 전현무가 새해를 맞이하여 한라산을 등반했던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당시 이 에피소드가 꽤 화제였다. 나도 뒤늦게 해당 방송을 보며 깔깔 웃었던 기억이 선명하다. 이 에피소드 이후로 그 해 전현무는 예능에서 엄청난 활약을 보였고, 연말 방송연예대상에서 대상까지 받았다.
새해 첫 날에 한라산의 정기를 받았더니 1년이 운수대통 했던 것일까? 아니면 새해를 맞이하여 한라산을 등반했던 그날의 마음가짐이 그의 1년을 열정적으로 만들어줬던 것일까? 원인과 결과를 알 수는 없으나, 2022년 그의 활약을 보며 나는 꽤 큰 영감을 받았다. 어쩌면 새해를 가장 새해답게 보내는 것은 나에게 1년을 멋지게 보낼 1년짜리 원동력을 선물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작년 1월 1일에는 나 답지 않게 등산을 시도했다. 한라산을 갈 패기는 없어 아쉬운대로 등산 초보가 쉽게 오를 수 있다는 아차산을 올랐다. 작년 새해는 이직한지 한달도 채 되지 않은, 이제 막 새로운 회사에 적응하던 시절이었다. 새로운 환경에 부딪힌 나에게, 23년 한 해를 잘 버텨줄 수 있는 1년짜리 원동력을 선물해주는 것이 필요했다. 그 간절한 바람을 담아 아차산을 올랐던 덕분인지, 나는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며 새로운 곳에 둥지를 틀 수 있었다. 좋은 동료들을 만났고, 새로운 경험도 만들었다. 새해에 오르지 못했던 한라산은 그해 여름에 갔다. 제주 워케이션이라는 소중한 경험 덕분에 말이다.
이렇게 열심히 2023년을 보내고 나니, 2024년은 더 잘 지내고 싶었다. 비록 내 나이에 한 살의 무게가 더해지는 것은 여전히 싫지만, 대신 몸과 마음은 더 여유있는 새로운 한해를 보내고 싶었다. 그 어느 것에도 휩쓸리지 않고 가장 나답게 내 인생을 사는 것이 2024년 나의 새해 소망이었다. 어떻게 이런 마음 가짐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 이런 저런 고민을 하며 핸드폰을 뒤적이던 그 때, 오호라 싶은 것이 눈에 들어왔다.
‘만다라트 계획표? 이거 괜찮아 보이는데?’
만다라트 계획표는 핵심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세부 목표를 정하고, 이 목표를 중심으로 뻗어나가며 달성 방법을 기재는 것인데 일본의 유명 야구선수 오타니 쇼헤이 덕분에 더 유명해졌단다. 블로그에 새해 목표를 만다라트로 멋드러지게 작성하여 올린 글을 보니 묘한 자극이 되었다.
‘나도 저런 만다라트 계획표가 하나 있으면 멋질 것 같아!’
이미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에는 만다라트 계획표에 대한 컨텐츠가 무궁무진했다. 다들 언제 이런걸 자기들끼리 만들고 있었던 것인지, 휘황찬란하게 작성하여 뽐내고 있는 각종 만다라트 계획표들을 보며 나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래, 작년 새해는 전현무처럼 보냈으니, 이번 새해는 오타니처럼 보내자.’
책상에 앉아 다이어리를 꺼냈다. 새해를 맞이하여 새롭게 산 다이어리였다. 비록 매해 1월만 빼곡히 쓰다 어느새 백지가 되어버리기 일쑤였지만, 올해는 이 다이어리를 정말 성실히 써볼 참이었다. 그 마음가짐을 담아 비장한 마음으로 다이어리 맨 앞장을 폈다. 이 곳에 나만의 2024년 만다라트 계획표를 쓸 것이다. 나는 자를 대고 반듯한 네모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9개의 네모들이 모이고 사방팔방으로 뻗어나가 순식간에 81개의 네모들이 그려졌다. 수많은 네모들 중에서 가장 가운데에는 내가 가장 이루고 싶은 목표를 써야 한다. 올해 나는 어떤 목표를 이루고 싶을까? 어떤 목표를 이뤘을 때 올해 정말 잘 보냈다고, 나에게 칭찬을 할 수 있을까? 난 고민 끝에 가장 가운데 네모에 짧은 한 줄을 썼다.
마음 근력이 단단한 사람
겨우 한 칸 채운 것 뿐인데, 가장 중심이 되는 네모에 적은 나의 2024년 새해 목표를 보기만 해도 뿌듯했다. 그래, 나는 올해 마음 근력이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 부자가 되고 싶은 것도 아니고, 대단한 명예를 얻고 싶은 것도 아니다. 그저 내 인생을 가장 나 답게 살 수 있는 단단한 마음을 갖고 싶다. 주변의 시선에 휩쓸리지 않고, 남의 이야기 하나 하나에 신경쓰지 않고, 나 다운 행복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뻔하디 뻔한 이야기이지만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니까, 나의 행복만을 바라보며 2024년을 살고 싶다. 내 중심을 지키고 나답게 사는 사람! 상상만 해도 멋졌다. 나는 간절한 소망을 담아, ‘마음 근력이 단단한 사람’이 되자는 2024년 목표를 세웠다.
그나저나 이제 겨우 가운데 네모 한 줄 썼을 뿐인데, 나머지 80개의 네모는 언제 다 쓸 수 있을까? 아직 만다라트 계획표에 있는 80개의 네모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음 근력이 단단한 사람이 되려면 어떤 세부 목표를 잡으면 좋을까? 명상? 운동? 일기? 이런 저런 키워드들을 쓰면서 2024년의 내 모습을 상상했다. 무엇이 됐든, 2024년의 나는 2023년의 나보다 더 단단하고 멋진 사람이 될 것이다. 새해를 가장 새해답게 보내면서, 올 한해를 멋지게 보낼 1년의 원동력을 나에게 선물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