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나는 무책임한 사람일까?
매일같이 파이어족을 말하는 친구 한 명이 있다. 그 친구는 ‘지금 바짝 벌고 허리띠 졸라 메야 조기 은퇴를 할 수 있는거야!.’ ‘월급에 만족하면 안돼.’, ‘재테크 공부를 해라’ 등 만날 때마다 나와 친구들의 정신 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특히 내가 매일같이 야근하며 고통받고, 팀장을 하네 마네로 하소연할 때마다 친구의 쓴소리는 더 강해졌다.
‘너 그렇게 스트레스 받으면서 회사 다닐래? 그냥 지금부터라도 재테크 공부를 해.’
평소라면 ‘그래 맞아 그래야지’라고 공감하면서도 한 귀로 흘려 버렸을텐데, 이상하게도 친구의 이야기가 떠오를 때가 있었다. 남은 업무를 마무리하고 밤 10시, 11시에 퇴근 버튼을 누른 날, 씻고 침대에 누우면 알 수 없는 허무함과 함께 친구의 조언이 생각나는 것이다.
‘이렇게 일만 하느라 허덕이는게 내가 원하는 행복이랑 가까운걸까?’
‘회사는 왜 다니는걸까? 결국 돈 벌려고 다니는거 아닌가?’
‘돈에서 자유로워지면, 회사를 그만두고 난 내가 원하는 삶을 살면서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
‘그래. 나도 재테크를 더 적극적으로 해야겠다. 당장 내일부터 시작해야지’
사실 내가 재테크를 아예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꼬박 꼬박 예금과 적금을 들고 있었고, 주식 열풍이 불었던 코로나 시절에는 남들 따라 주식 계좌를 만들기도 했다. 이때 만든 주식 계좌로 지금까지 소액의 주식 투자도 시도해보고 있다. 나름 주식 리딩방도 하나 있어서, 전 회사 직장 동료분의 리딩에 따라 삼성전자 주식을 열심히 사고 팔기도 했다. 그런데 작게나마 주식을 하며 느낀건, 주식도 부지런한 사람만이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난 매일같이 어플에 접속하여 주식창을 볼 만큼 부지런하지 못했고, 물리적인 시간을 마련하는 것도 어려웠다.
- (AM 08:30) 아침에 장 열리면 삼성전자 78,000원 부근 잡았던거 오늘 10% 이하 남기고 청산요.
- (AM 11:30) 앗…제가 너무 늦게 봤네요. 저 또 매도 타이밍 놓친거죠? 다음을 노려볼게요…
늘 돈을 벌 수 있는 타이밍을 공유 받아도, 나는 항상 뒤늦게 확인해서 돈벌 기회를 놓치기 일쑤였다. 일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수익을 낼 수 있는 소중한 정보가 나에게 뒷전이 되는 것이었다. 돈벌려고 일하는데, 일을 하느라 돈벌 수 있는 정보가 뒷전이 되는 상황이라니… 나도 참 나다.
하지만 이번엔 마음가짐을 달리 해볼 생각이었다. 매일 주말만 바라보면서 주중 5일 전체를 일에 희생시키는 요즘의 내 인생이 안쓰러웠다. 자유로워지면 이 생활도 청산할 수 있으니, 앞으로 3년간 바짝 벌어서 조기 은퇴를 할 참이었다. 타이밍도 적절하게, 때마침 운명처럼 인스타그램에서 배당주 관련 도서 광고도 발견했다. 책 제목은 무려 ‘배당주로 월 500만원 따박 따박 받는 법’, 이 제목 보고 혹하지 않을 직장인이 어디 있을까?
‘그래. 안정적으로 따박 따박 월급처럼 받을 수 있게 배당주 포트폴리오를 만들자. 내일부터 바로 시작이다!’
나는 마음먹는게 어렵지, 한 번 마음을 다잡으면 추진력 하나는 엄청나게 빠른 스타일이다. 배당주 투자로 파이어족 꿈을 이루겠다는 마음을 먹자 마자 바로 인스타 광고에서 보았던 배당주 책을 주문했고 다음 날 바로 배송이 되었다. 그리고 그날부터 자기 전 매일 배당주 책을 읽으며 공부를 시작했다. 책을 읽으며 공부하는 것만으로도 벌써 파이어족의 꿈을 이룬 듯한 기분이었다. 빨리 미국 배당주를 저가에 매입해서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만들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그렇게 3일만에 배당주 관련 책 2권을 단숨에 읽고, 곧바로 배당주 투자 실전에 돌입했다. 국내 주식은 일하느라 바빠서 주식창 들어갈 시간이 없었지만, 미국 주식은 밤에 열리니 일 때문에 들어가지 못할 이유도 없었다. 컴퓨터 엑셀 파일을 키고 내가 보유한 자산과 앞으로 어떻게 포트폴리오를 구성할지 정리를 하였다. 잠자는 시간도 아껴가며 엑셀로 정리한 내용을 뿌듯한 마음으로 바라보며 저장 버튼을 눌렀다. 파일 명을 뭐로 하지? 고민 끝에 나는 이렇게 작성했다.
2026 파이어족 프로젝트.xlsx
앞으로 나는 2026년에 파이어족을 선언하고 회사를 그만둔다!
회사를 벗어나 자유로워진 내 모습을 상상하니 벌써부터 심장이 두근거렸다. 마음은 이미 조기 은퇴를 하고 파이어족이 되어 다달이 배당금을 받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인생을 즐기는 사람이었다.
근데 유감스럽게도 내가 하나 말하지 않은게 있다. 난 마음 먹는게 어려울 뿐 실행력 하나는 끝내주게 빠른 사람인게 맞지만, 그만큼 끈기도 부족하단 사실을 말이다.
퇴근 후 몇일간은 눈여겨봤던 미국 배당주들을 조금씩 매수하면서 투자금을 늘렸다. 그러나 이것도 길게 가지는 못했다. 밤 9시, 10시에 퇴근을 하면 녹초가 되어버리니, 배당주고 뭐고 눈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 것이었다. 증권 어플을 켜서 주식창을 보며 어떤걸 살까 고민하는 것보다, 유튜브 숏츠를 보며 낄낄거리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게 녹초가 된 나를 치료할 수 있는 단기 처방전이었다.
‘아 이래가지고 2026년에 파이어족 할 수나 있으려나…’
코 앞으로 다가온 것만 같았던 파이어족의 꿈도 성큼 달아나버린 기분이다. 나는 아무래도 평생 직장 다니며 회사가 주는 월급만 따박 따박 받는 썩 달갑지 않은 예감이 든다. 그래, 성실하게 회사에서 일하는 것이 내가 가장 잘할 수 있고, 또 가장 쉽게 돈벌 수 있는 방법이겠지.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먹는다고, 배당주고 파이어족이고 아무나 할 수 있는게 아닌 것 같다. 나는 그냥 개미처럼 일하며 돈벌면서, 일과 내 인생의 거리를 잘 유지하며 사는게 가장 나답게 사는 방법인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