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지현 Oct 21. 2024

상대성 미라클모닝

4부. 나를 책임지는 사람은 바로 나

마음 근력이 단단한 사람이 되기 위해 쓴 목표 중 하나는 ‘미라클모닝’이었다. 출근 전 한시간 정도 일찍 일어나 명상을 하든지, 일기를 쓰든지, 책을 읽든지 나를 위한 개인 시간을 갖는 것이다. 사실 재택근무를 하고 있으니 한 시간 일찍 일어난다고 해봤자 아침 8시 기상이다. 새벽 4시, 5시에 일어나 아침 시간을 갖는 사람들이 들으면 ‘8시에 일어나는게 무슨 미라클 모닝이냐’며 콧방귀를 낄 노릇이겠다. 하지만 매일 아침 9시 10분, 9시 20분에 일어나 10분만에 출근하는 생활을 근 1년간 반복했던 재택근무 1년차 직장인에게 8시 기상이란 그야말로 기적이다. 그래서 누군가 나에게 그게 뭐가 미라클이냐며 콧방귀를 낀다면, ‘상대성 미라클모닝’이라고 되받아칠 생각이었다. 뭐든지 상대적이다. 


그렇지만 웬걸? 한 가지 간과한 사실이 있었으니, 아무리 미라클모닝에 ‘상대성’이라는 단어를 붙이더라도, ‘모닝’ 그 자체가 나에겐 너무 힘든 숙제란 점이었다. 30년 중반의 세월동안 아침잠과의 싸움에서 이겨본 적이 없다. 늘 아침에 3~4번의 기상 알람을 듣고 겨우 눈을 떴다. 나에게 아침 시간 5분은 1시간과도 같았다. 그래서 미라클모닝을 실천하기 위해 아침 8시에 일어난다는 건, 체감으로 새벽 4시, 5시에 일어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역시, 뭐든지 상대적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한동안 나의 아침은 이런 패턴의 반복이었다.


- 아침 7시 30분, 첫 번째 알람이 울린다.

- 첫 번째 알람을 끈다. 두 번째 알람이 울릴 것이란 사실을 안다. 다시 또 잔다.

- 10분 후 두 번째 알람이 울린다.

- 두 번째 알람을 끈다. 세 번째 알람이 울리 것이란 사실을 안다. 다시 또 잔다.

- 10분 후 8시, 나와 약속한 시간. 세 번째 알림이 울린다. 마지막 알람이다.

- 세 번째 알람을 끈다. 어제 자기 전, 아침에 미라클모닝을 하기 위해 평소보다 1시간 일찍 세팅한 알람인 것을 안다. 아침 시간을 가지려면 지금 일어나야 한다. 하지만 도저히 일어나지 못하겠다. 출근은 9시에 하면 된다. 미라클모닝만 포기하면 1시간 더 자고 일어날 수 있다. 내일도 내일의 모닝이 떠오르니, 오늘은 그냥 자자. 


그리고 9시 넘어 일어나 책상에 앉고 출근 버튼을 누른다. 자괴감은 덤이다. 야심찬 새해 목표도 당장의 아침잠과의 싸움에서 언제나 이기는 법이 없다. 백전백패의 싸움인 것이다. 


이 미련한 싸움에 종지부를 짓게 된 계기는 아주 간단한 사실을 깨닫고 나서다. 내가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어하는 이유는 늦게 자기 때문이었다. 퇴근하면 내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보상심리가 있어 씻고 침대에 누워 각종 OTT와 유튜브만 반복 시청했다. 그러다 하릴없이 스스로가 한심해질 때 쯤이면 침대 한켠에 있는 책을 꺼내 읽었다. 밤에 읽는 책은 어찌나 또 재밌는지, 중간에 끊을 수 없어 자정 넘어 새벽 1시, 2시까지 읽다 잠들곤 했다. 남들은 밤에 책을 읽으면 졸리다더니, 나는 눈만 더 말똥해졌다. 아무래도 다음 날의 출근이 오는게 싫어서 그랬던 것 같다. 출근하기 싫어병은 졸음도 내쫓았다.


내가 늦게 자서 늦게 일어날 수밖에 없단 아주 단순한 사실을 깨닫고 나니, 미라클모닝을 성공할 수 있는 해법도 간단해졌다. 그냥 지금보다 일찍 자면 됐다. 적어도 자정을 넘어서까지 가졌던 독서 시간만 아침으로 옮기고 그 시간에 일찍 자도 다음날 1시간 일찍 기상은 가능해보였다. 아침에 책을 읽는게 가능할지 상상이 잘 되진 않았다. 너무 졸려서 책이 읽히려나 싶은게 컸다. 그래도 일찍 자면 지금보다 일찍 일어날 수 있으니 한 번 시도해볼만 했다. 그렇게 나는 생전 안하던, 자정 전 11시에 잠들기를 실천했다. ‘아직 자면 안될 것 같은데…’ 싶은 생각이 날 유혹했지만 꾹 참고 잤다. 그리고 다음 날…


- 아침 7시 30분, 첫 번째 알람이 울린다.

- 첫 번째 알람을 끈다. 두 번째 알람이 울릴 것이란 사실을 안다. 다시 또 잔다.

- 10분 후 두 번째 알람이 울린다.

- 두 번째 알람을 끈다. 세 번째 알람이 울리 것이란 사실을 안다. 다시 또 잔다.

- 10분 후 8시, 나와 약속한 시간. 세 번째 알림이 울린다. 마지막 알람이다.   

- 세 번째 알람을 끈다. 그리고 생각한다. 난 어제 11시에 잤다. 지금 내 상태는 어떠지? 여전히 졸리긴 한데, 일어나려면 일어날 수는 있을 것 같다. 생각보다 꽤 푹 잔 느낌이다. 그럼 한 번 일어나볼까…?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인생 처음으로 아침잠과의 싸움에서 1승을 거둘 수 있었다. 불가피하게 일어나야 하는 상황이 아닌, 자발적으로 내 시간을 보내기 위해 일찍 일어난 것이다. 


일어나자마자 씻고 양치질을 하며 잠을 깨웠다. 폼롤러로 스트레칭을 하며 잠들어있던 몸도 깨웠다. 좋아하는 아로마오일로 간단한 마사지를 해줬고, 졸음 방지용 음악도 선곡했다. 유튜브에서 즐겨 듣던 사티의 짐노페디 피아노 모음곡 플레이리스트를 재생했다. 그리고 책상에 앉아 그간 읽고 있던 책을 펼쳤다. 금방 졸게 뻔하다 싶었는데, 이게 웬걸? 스스로도 놀랄만큼 집중이 되었다. 독서를 하는 20~30분 남짓한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출근 시간이 다가오면서 어쩔 수 없이 책장을 덮어야 하는 사실이 아쉬울 지경이었다. 미라클모닝, 이거 생각보다 나랑 잘 맞잖아? 나 알고보니 아침형 인간이었나?


미라클모닝은 단 한번의 경험만으로 싹을 틔우기 충분한 경험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나만의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기대보다도 엄청난 만족감을 주었다. 아침에 일어나 스트레칭을 하고 아로마 오일로 가볍게 마사지를 하고, 하루를 시작할 음악을 선곡하고, 좋아하는 책을 읽는 순간 순간이 나의 아침을 정성스럽게 돌보는 기분이었다. 갓생사는 멋진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은 덤이었다.  


이 날 거둔 최초의 1승을 씨앗삼아 나의 미라클모닝은 마침내 꽃을 피우게 되었다. 나는 연이어 2연승, 3연승, 4연승하며 아침잠과의 싸움에서 승점 1점을 추가할 수 있었다. 아침에 책 읽는 시간이 좋아져서 일찍 일어나는 스트레스가 사라졌다. 무엇보다도 내일이 오는 것과 출근에 대한 짜증이 사라졌다. 하루를 긍정적인 기분으로 시작하는건 생각보다 엄청 큰 심리적 만족감을 주었다. 왜 사람들이 새벽 4시, 5시에 일어나 출근 전 미라클모닝을 실천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내가 직접 해보니 알겠다. 비록 난 아침 8시에 겨우 일어나고 있는 상대성 미라클 모닝이지만 말이다. 누군가 ‘8시에 일어나는게 무슨 미라클모닝이야’ 라고 말해도 나는 당당했다. 매일 아침 나를 돌보는 1시간 남짓한 시간 덕분에 내 하루가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벽에 일어나는 것이 미라클모닝의 전제가 아니다. 몇시에 일어나더라도 매일 나를 돌보는 시간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그를 통해 변화를 체감한다면 그것이 바로 미라클모닝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