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스라엘-수니파 매파 역할...이란, 지정학적 고립
미국은 필요한 시기에 유가를 올리기 위해 이란을 지렛대로 삼을 가능성이 높다. 중동 지역 지정학적 불안이 유가 폭등을 유발한 사례는 흔하다. 이라크 전쟁이 그렇고, 지난해 9월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의 정유시설 두 곳이 드론 폭격을 당했을 때 유가는 배럴당 100달러까지 치솟을 것이란 전망이 나왔었다. 당시 폭격으로 하루 570만 배럴의 원유 생산에 차질을 빚었다. 이는 글로벌 생산량의 5%가 넘는 양이다.
미국이 이란을 자극해 지정학적 불안을 유발하는 가장 흔한 방법은 폭격이다. 코소보 전쟁과 걸프전쟁, 이라크 전쟁처럼 말이다.
하지만 앞서 지적했듯 트럼프는 공화당 선배 대통령인 아들 부시와는 달리 집권후 어떤 전쟁도 시작하지 않았다. 중동지역에서 미국의 개입을 확대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시리아 등 세계 곳곳에서 미군 철수 또는 축소를 추진하고 있다.
트럼프가 단지 주둔 비용을 줄이기 위해 미군 철수를 추진하는 것일까.
트럼프의 전략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트럼프는 아주 치밀하고 지극히 점진적으로 이란을 고립시키는 전략을 구사했다. 지난 9월 15일 백악관에서 맺어진 아브라함 협정이 그 결실이다.
아브라합 협정은 이스라엘과 UAE, 바레인간에 맺어진 협정으로 수니파 이슬람 국가인 UAE와 바레인이 이스라엘과 정상 국가로 인정했다는 의미다. 이로써 중동 이슬람 국가 중 이스라엘과 수교한 나라는 4개 나라로 늘었다. 앞서 이집트와 요르단이 평화협정을 맺었었다.
이들 4개국의 공통점은 사우디와 마찬가지로 수니파 위주의 국가로 시아파 맹주인 이란과는 적대 관계다. 외신들에 따르면 이스라엘-요르단 평화협정(1994년) 이후 26년간 중동에서의 평화협정은 전무했으며, 이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는 게 워싱턴 정가의 통설이었다. 같은 수니파 국가인 카타르와 오만이 이들 4개국에 이어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맺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실제 아브라함 협정이 맺어지기 하루전 미국과 카타르는 워싱턴에서 전략 대화를 가졌다.
세계지도를 보면 UAE와 바레인은 호르무즈 해협을 사이에 두고 이란과 마주하고 있다. 카타르와 오만도 마찬가지다.
아브라함 협정은 이란을 견제하는 것과 동시에 팔레스타인이란 화약고를 상당히 유용하게 만든다. 이스라엘에 땅을 뺏긴 팔레스타인은 수니파 이슬람 국가다. 수니파 맹주인 사우디가 미국과 석유달러 시스템을 놓고 혈맹관계를 맺고 있고 이번 협정으로 수니파 부국 대부분이 이스라엘과 동맹이 됐다. 적의 적은 내편이라고 했던가. 고립무원이 된 팔레스타인이 기댈 곳은 동병상련 관계인 이란 밖에 없는 것이다. 팔레스타인이 실제 시아파 맹주인 이란과 손을 잡을 경우 미국과 이스라엘 입장에선 공격의 명분을 갖게 된다는 분석도 있다.
트럼프는 아브라함 협정까지 이스라엘과 수니파 이스람 국가들을 상대로 상당히 많은 공을 들였다. 집권 직후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공식 인정하면서 벤야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게 노골적으로 러브콜을 보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의 중동 정책 산물인 이란 핵협정을 무참히 깨버리면서 수니파 국가들의 환심을 샀다.
아브라함 협정의 최종 목적지는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간의 동맹이다. 수니파 맹주로서 사우디는 이스라엘과 갈등 관계지만 이란을 적으로 한다는 점에서는 공감대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에서 패한 후에도 이스라엘과 사우디를 묶어 이란을 고립시키는 전략을 지속했다.
지난 11월22일(현지시간) 벤야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네옴시티에서 비밀리에 만났다. 이 자리는 트럼프가 중재한 것으로 둘이 만난 테이블엔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구체적인 내용은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트럼프가 마련한 자리란 점에서 중동에서의 새로운 역학관계를 만드는 데 양국이 머리를 맞댄 것은 분명하다.
만남의 장소 또한 주목할 만하다. 네옴 신도시는 빈 살만 왕세자가 추진하는 탈석유화 계획의 핵심이다. 우리돈으로 600조원 가량을 들여 금융과 MICE가 결합된 친환경 신도시를 건설하겠다는 것이다. 두바이를 능가하는 중동의 금융과 MICE 허브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빈 살만 왕세자는 이와 관련, 2019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만났었다.
전문가들은 이스라엘과 국경을 마주한 사우디가 홍해 인근에 이같은 프로젝트를 실현하려면 이스라엘의 협력이 필수적이라고 분석했다.
아브라함 협정으로 트럼프가 추진했던 중동에서의 철군 계획이 납득이 가게 된다. 그는 단순히 주둔 비용을 문제로 미국이 70년대 이후 추진했던 항행의 자유와 이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석유달러 시스템을 약화시킨 게 아니라, 이스라엘-수니파 국가들간의 동맹이 미군을 대체하도록 한 것이다. 탁월한 사업가답게 비용은 최소화하고 이익은 극대화한 것이다.
이제 힘의 우위에선 수니파를 지렛대로 미국은 이란을 얼마든지 자극할 수 있다.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지정학적 불안은 이제 이라크 전쟁 당시와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이제 이 곳에서의 전쟁을 타전하는 뉴스에서 미군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바이든 당선인이 이란 핵협정을 재추진 하는 게 이란전쟁의 기폭제가 될 수 있다. 이 경우도 미국이 이란을 직접 공격하는 게 아니다. 트펌프가 짜놓은 현재의 중동 역학관계가 이란 핵협정 재개 움직임을 지렛대로 전쟁 가능성을 수면위로 밀어 올리게 된다. 수니파 맹주들과 동맹 관계를 맺은 이스라엘이 시아파 맞형 이란의 부상을 좌시할 리 없다. 실제 이스라엘은 바이든 당선이 확정된 직후 이란 핵협정 재가동시 전쟁 가능성을 노골적으로 밝히고 있다. 어떤 경우든 이란을 공격하는 첫번째 미사일이 중동 상공을 날 때 그 것은 미국의 미사일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건 이스라엘로부터건 미사일은 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