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다르 항구를 주목하라
하루 1천만 배럴의 석유를 수입해야 한다는 사실은 중국에겐 강력한 무기이자 치명적인 급소다. 막대한 구매력을 바탕으로 사우디와 이란 등 산유국을 압박해 석유위안 체제의 초석을 다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석유달러 체제를 지켜야 하는 미국 입장에선 석유위안 체제를 만들려는 중국의 모든 시도를 무력화해야 한다. 사우디는 친미 국가고 이란은 경제봉쇄 등으로 압박하면 되지만 중국의 힘이 더 세지면 미국은 상대적으로 압도적 우위에 있는 단 하나 남은 수단을 써야 한다. 그 것은 바로 군사력이다.
위의 지도에서 보면 과다르 항구가 갖는 지정학적 중요성을 곧바로 알 수 있다. 미국이 항행의 자유를 명목으로 호르무즈 해협에서 군사적 우위를 유지하는 한 중국은 사우디와 이란으로부터 수입한 석유를 자국으로 안전하게 수송할 수 없다. 항행의 자유가 미국으로의 석유 수송과, 달러로 석유를 산 나라들에게 안전한 석유수송을 보장해 주기 위해 만들어진 명분이지만, 중국에겐 그 명분이 본래의 목적과는 전혀 반대로 작용할 수 있다. 이란 석유를 실은 중국 유조선이 해협을 통과할 때 항행의 자유를 제한한다면 중국은 에너지 안보, 크게 보면 국가 안보를 미국의 항공모함 손에 맡기는 셈이기 때문이다.
중국이 과다르 항구를 눈여겨 본 것은 그 때문이다. 바닷길로 석유를 운송하는 건 미중 무역전쟁이 계속되는 한 지극히 위험한 방법이다. 중국은 미국이 적절한 명분으로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할 경우에 대비, 육상 수송 방법을 추진했다. 그 해답이 바로 중국-파키스탄 경제회랑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맞서 추진하는 일대일로 전략의 핵심이 바로 중국-파키스탄 경제회랑이다.
이 구상을 간단히 요약하면 사우디와 이란 석유를 유조선에 실어 곧바로 과다르항 비축시설에 내리면, 그 석유를 육상 파이프라인을 통해 중국 서부 신장위구르 지역 카스까지 밀어보내는 것이다. 파이프라인이 총 길이는 약 2천km로 인도양-남중국해를 잇는 해상길 1만5천km의 8분의 1 밖에 안된다. 무엇보다 미국의 항공모함의 위협을 적게 받는다는 점에서 중국이 놓칠 수 없는 전략적 요충지인 셈이다. 송유관 건설과 함께 철도와 도로 등의 인프라도 건설된다.
2015년 11월 중국은 파키스탄과 과다르 자유무역지대 부지를 43년간 장기임차하는 계약을 맺었다. 43년간 중국이 과다르 항구에 대한 운영권을 갖게 된 것이다. 일본과 우리의 근대사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개항이 갖는 의미는 단순히 무역선이 오고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무역선의 뒤에 반드시 따라오는 게 강제로 항구를 개방시킨 열강의 군함이었다. 파키스탄이 중국에 과다르 항구를 내 준 건 중국의 랴오닝함이 미국의 항모전단에 맞서 과다르 항구에 정박할 수 있다는 의미다.
미국이 중국의 과다르 항구 접수를 그대로 놔둘리는 만무하다.
사우디가 중국 -파키스탄 경제회랑에 적극 협력하고 나서면서 미국의 심기를 건드렸다. 무하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그 주인공이다. 무하마드 왕세자는 2019년 2월 중국 베이징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 약 280억달러, 우리돈으로 31조원에 달하는 투자를 약속했다. 핵심 내용은 사우디 국영석유회사 아람코과 중국 방산업체 두 곳이 합작회사를 설립해 중국 랴오닝성 판진에 100억달러 규모의 석유화학단지를 건설하는 것이다. 아람코는 아라비아아메리카코퍼레이션의 약자로 석유달러 체제를 상징하는 기업이다.
시진핑과 회동에 앞서 무하마드 왕세자는 파키스탄을 방문해 200억달러(약 22조원)에 달하는 투자를 약속했다. 이 중 80억달러 가량이 과다르 항구에 투자될 것으로 알려졌다.
무하마드의 행보를 종합하면 사우디는 중국이 자국으로부터 수입한 석유를 과다르 항구를 통해 중국 본토로 운송하는 것과, 이 석유를 활용해 석유화학 제품을 만드는 사업에 50조원 이상을 투자키로 한 것이다. 사실상 중국의 석유위안화 체제 구축 야심에 불을 당겨준 것이다.
파키스탄이 이란과 접경국이란 점도 미국 입장에선 신경이 쓰이는 대목이다. 사우디 석유를 수송한다는 명분으로 과다르 항구를 통한 육상 수송로 건설을 추진하고 있지만, 중국 입장에선 파이프라인을 과다르 항구를 거점으로, 이란으로까지 쉽게 이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 집권 후 이란에 대한 경제봉쇄로 이란 석유를 수입하는 중국 국영석유회사까지 제재를 가하고 있는 것도 이같은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트럼프가 냉전 시대의 적성국인 러시아 푸틴 대통령과 콧대 높은 인도 모디 총리에게 러브콜을 보내는 것도 이같은 중국 움직임을 견제하기 위한 제스쳐다. 이란과 파키스탄은 위로는 러시아, 아래로는 인도라는 햄버거 빵에 둘러쌓인 패티 같은 형국이다. 빵으로 패티를 눌러버리려는 게 트럼프의 전략이다.
중국-파키스탄 경제회랑 사업이 가시화하면서 지난 50여년간 수면 아래로 가라 앉았던 인도-파키스탄간 국경 분쟁이 잦아진 건 우연이 아니다. 중국-파키스탄 경제회랑을 막는데 미국이 파키스탄과 앙숙관계인 인도를 지렛대로 활용할 것이란 건 공식이다. 인도와의 분쟁이 격화될 경우 중국이 자국의 석유 수송로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과다르 항구와 파키스탄에 중공군을 파병하면, 이를 기폭제로 미중 무역전쟁이 열전으로 비화할 수 있다. 피터 자이한이나 쏭홍빈 등 미중 양국의 지정학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과다를 항구를 주목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