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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키워키 Jul 07. 2023

옆 테이블 신사분이 삼겹 10인분 보내셨습니다.

집 근처에 고깃집이 생겼다. 늘 문전성시인 이유는 대문짝만하게 적힌 '1인분 3500원'이라는 무지막지한 가성비 때문만이 아니었다. 쥐똥만큼 주고 20인분 먹게하는 게 아닌가 의심할 수도 있겠지만 먹성 좋은 우리 부부도 5인분(500g) 먹고 나면 배가 불러 더 못 먹을 정도가 된다. 바로 무한리필 채소 덕분. 상추, 깻잎은 기본이고 당귀, 봄동, 고사리, 파김치 등 고급템들이 금방이라도 밭으로 돌아갈 신선함을 자랑한다. 어느새 채소를 더 많이 먹은 것 같아 죄책감도 덜 수 있다.




지나치지 못하는 방앗간이 되어버린 이 가게를 찾은 어느 저녁, 마주 앉은 남편이 먹다 말고 자꾸 왼편을 곁눈질 하고 있었다. 덩달아 오른편을 보니 한 무리의 남학생들이 왁자지껄 떠들며 고기를 굽는중이었다. 교복을 입었으니 최소 중학생 이상인데, 저마다 덩치 차이가 많이 나고 변성기가 채 오지 않은 아이들도 있는 걸로 봐선 갓 중1 정도  것 같았다.


"쟤네 엄청 귀여워."


셀프바에 갔던 남편은 다섯 명중 제일 키가 작아보이는 학생과 동선이 겹쳤는데 그렇게 야무진 아이는 오랜만이라 했다.


"한 두 번 온 게 아니야 쟤네. 쌈이랑 채소를 얼마나 야무지게 담는지."


고양이 쳐다볼 때 빼고 남편이 저리 흐뭇한 미소를 짓는 건 오랜만이라 의아할 정도였지만, 가르치는 일을 하고나서 부터 학생들을 특히 귀하게 여긴단 걸 알고있던 터라 그러려니 했다.


그러다 무언가 결심한듯 자리에서 일어난 남편은 카운터로 향했다. 계산을 미리 하는 건가 싶었는데 사장님과 몇 마디 주고받더니 다시 돌아왔다. "옆 테이블 아이들이 10인분 정도면 실컷 먹을 수 있지 않겠냐"고기를 사주고싶다 말씀드렸더니 고민하시던 사장님은 이렇게 대답하셨다고 했다.


"근데 .. 쟤네가 먹는 건 우삼겹이예요."


우삼겹이 우리가 먹고 있는 대패삼겹보다 400원 더 비쌌지만 키다리아저씨가 되기로한 남편에게  문제가 되진 못했다. 뭐가됐든 먹던 걸로 보내주시라 말씀드리고 돌아온 그의 돌발행동에 살짝 놀랐지만 한편으론 아이들의 반응이 기대되었다.


이윽고 우삼겹 산더미를 가져오신 사장님은 아이들 앞에 내려놓으시며 우리 쪽을 가리키셨다.


"옆 테이블 저 분이 이거 사주신대. 너네 오늘 땡잡았다 야."


어리둥절 하던 아이들은 이윽고 감사하다고 연신 인사를 하곤 바로 굽기 시작했다. 쌈도 리필해왔고 사장님이 주신 된장찌개까지 더해지자 상이 빈 틈 없이 가득 찼다. 순식간에 동내는 모습을 지켜보니 내 배가 다 불렀다. 남편이 혹시 더 먹고싶은 지 물어보자 한 아이가 대답했다.


"저희 한 접시 더 남았어요.. 이제 괜찮아요!"


서빙되지 않은 5인분이 남았다며 똑부러지게 사양하는 모습을 보니 셀프바에서 야무지게 채소를 담았다던 아이인 것 같았다.


계산을 하고 가게를 나서려다 인기척에 돌아보니 어느새 아이들이 카운터까지 나와 쪼르르 도열 해있었다. 우리가 일어나는 것을 보곤 재빠르게 인사를 하러 온 것 같았고 몇 번이나 고개를 꾸벅 숙였다.


"너네 ㅇㅇ중학교지? 많이 먹고 공부 열심히 해라~!"


아재가 된 남편을 데리고 서둘러 나왔다.




"어렸을 때 나도 하도 먹으니 어떤 모르는 분이 사주신 적이 있거든. 얘네도 나중에 누군가한테 갚을 거 아니야."


아주 큰 금액은 아니지만 처음 보는 아이들에게 고기를 쏘는 남편이라니, 그리고 당연하단듯 지켜보는 나라니. 불과 1~2년 전만해도 상상 못 했을 모습이다. 남편이 대기업에서 지금보다 많은 돈을 벌 때, 나 또한 휴직 전이라 안정적 소득이 있었을 때, 우리가 옆 테이블 아이들을 챙긴 적이, 아니 제대로 바라본 적이라도 있었나? 둘이 마주하기도 어려운 판이라 만났다하면 맛있는 음식들과 술에 취해 일주일간의 회포 풀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 때 칵테일 한 잔과 오늘 아이들이 먹은 10인분의 가격이 비슷할텐데, 그 무모한 흥청망청이 새삼 아찔하다.


 "그때보다 많아진  시간 밖에 없는데.. 우리 좀 많이 변한 것 같아." 나름 감상에 빠져 이야기했는데 우삼겹 신사는 호락호락하지 않다.


"나이. 나이 많아졌잖아."


... 맞다. 이제 그런 술은 그닥 당기지도 않는다. 메뚜기도 한 철이다.


나이와 함께 돈과 시간이 정비례로 늘어가면 좋겠지만 한 가지가 늘었다 싶으면 다른 한 가지를 포기하거나 보내주며 엎치락뒤치락 하게 된다. 그러다 아이들 덕분에 잊고 있던 '마음'의 존재도 되새긴 것 같다. 보이지 않는 만족을 먹고 자라는 마음. 오늘 비싸고 예쁜 술 한 잔보다 훨씬 큰, 나누는 기쁨을 흡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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