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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키워키 Jan 30. 2023

시댁 vs 친정 명절 비교체험 극과 극

"이거 참 큰일 났다니까. 잠깐 비운 새 고양이가 물어간 거야."

설 차례상에 올릴 조기 세 마리를 집 앞 정원에 말려두고 잠시 눈을 뗀 사이, 길고양이가 와서 한 마리를 물어가버렸다는 비보였다. 차례, 제사를 어깨너머로 지켜봐온지도 30년 짬이 넘으니 엄마가 왜 울상인지 바로 알아챘다. 두 마리는 안 된다. 짝수니까. 차례상엔 홀수 개를 올려야 한다. 그렇지만 뭐 어쩌겠나.. 했는데 역시 아빠는 예상을 뛰어넘는다.


"한 마리 더 사 오래."


이윽고 방 안에서 남동생의 짜증 섞인 목소리도 들려온다.



"아 눈만 안 왔어도 갔다 오겠는데.. 아니 그리고 쫌, 그냥 짝수면 어떤데!"



남동생과 아빠는 작은 언쟁을 했고 엄만 그 사이에서 남은 조기 두 마리를 사수하려 종종거리셨을 게 뻔했다.


나는 새삼 몇 시간 전까지 하하호호하며 앉아있던 시댁과 응당 더 편해야 할 이 친정의 명절 온도차가 이리도 크다는 걸 자각하는 중이었다.




제례를 간소화해가시는 시댁은 해가 거듭할수록 그 변화가 눈에 띈다. 일단 우리 부부에게 제사나 차례를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분명히 하셨고 명절마다 차가 많이 밀리니 당일이 아닌 편할 때 오가라고도 하신 상태이다. 그래서 명절을 피한 전 후 주말에 찾아봰 적도 더러 있었다.


올해는 연휴에 맞춰 뵈러 갔고 전 부치려고 동태 몇 점 사다 놨다는 어머님 말씀에,


"맨날 남고 안 먹잖아요. 하지 말아요~"라는 남편의 1차 발언이 튀어나왔고, "그래 있는 거 올리고 하지 말자 이제."라는 시아버님의 쐐기가 뒤따랐다. 어머님은 잠시 고민하시는 듯하다가 결심이 서신 듯 "그래, 그럼 그러자." 며 마침내 상에서 전을 걷어내셨다.


심지어 차례 지내고 올라가면 차가 너무 밀리니 설 전날 밤 미리 올라가라 큰 배려를 해주신 덕에 이렇게 친정에 발을 들이게 된 것이다.


그렇게 도착한 친정인데 안타깝게도 근심과 걱정이 가득했다. 사라진 조기뿐 아니라 차례를 지내지 않고 올라온다는 딸 때문에. 아흔 친할머니까지 전화로 가세해 '뭐 그리 빨리 올라오냐, 시댁에서 욕할 거라'며 난리가 나셨다.


"아무리 그래도 그게 도리가 아니다. 사돈께 연락을 따로 드려야겠다."


연신 걱정을 하는 엄마에게 시부모님은 우리가 가고 나서 아쉬우실망정 안 좋게 생각하실 분들이 아니라고 몇 번이나 설명했으나 통하지 않았다.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시부모님에 대한 감사함이 꽉 막힌 친정에 대한 답답함과 속상함으로 변해갈까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올해는 정말 많이 줄였다며 준비한 음식들을 보여주시는 엄마의 손에는 한 쟁반은 될 것 같은 전들이 들려있었다. 몇 끼는 먹을 듯한 갈비탕과 과일, 약과, 술, 색색의 나물들까지. 이게 뭐가 준 거냐며 엄마 혼자 너무 힘들었겠다는 말에 머쓱해하시는 엄마를 보니 불현듯 시어머니가 떠올랐다. 동태전을 그만 놓아주자는 남편과 아들의 단호한 말에 의외로 별로 기뻐 보이지 않으시던 그 모습. 시원섭섭함이었을까, 순간적으로 약간 서운하신 듯한 표정까지도  것 같았다.


어머니들에게 제례란 무엇이기에. 매해 명절마다 애쓴 결과 우리 가족이 더 웃고, 덜 아프고, 더 잘 되는데 조금이나마 기여한 게 아닐까 어느새 굳게 믿게 되신 것도 같다. 그래서 무턱대고 줄이거나, 없애기가 너무나 조심스러운 게 아닐까. 그 모든 고생과 수고로움을 떠안고 살아왔으면서도 끝까지 자식들과 남편 눈치를 살피시는 양가 어머니들 모습이 결국 똑같았기에, 겹쳐 보였다.




단 나타난 딸과 사위가 너무도 반가우신 지 부모님은 늦은 밤까지 웃음꽃을 피우셨고 조기와 일찍 올라온 딸에 대한 근심은 어느새 잊으신 듯했다. 아니면 이쯤에서 받아들이셨거나. 


다음날 차례상에는 조기 한 마리가 빼꼼히 올라왔다. 아빠가 고집을 꺾으신 모양이었다.




양가 모두 우리를 아끼신다. 제례는 조상뿐 아닌 우리에 대한 사랑도 투영된 한 상이었다. 평생 차려온 그 한 상을 마음대로 접자 말자 운운하는 것이야말로 자식 된 도리가 아니고 실례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이제야 든다. 그러나 표현하는 방법이 일률적일 필요는 없지 않을까. 엄마들이 그 점을 꼭 상기하셨으면 좋겠다. 


사라진 친정의 조기와 남게된 시댁의 동태는 본질적으로 부모님들의 사랑을 담고 있었다. 같은 듯 너무나 다른 친정, 시댁 양가의 분위기가 예상치 못한 가르침을 준다. 남은 시간동안 나는 어떻게 부모님들께 표현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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