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라 모르겠다, 한 달 살아보고 올게요

2월의 치앙마이

by 위키워키

일주일 간의 치앙마이 여행에서 돌아온 남편과 나는 잠시간 멍했다. 우리가 알던, 예상하던 동남아를 한 번에 깨부수어준 '건기'의 치앙마이가 눈에 아른거리며 도무지 떠날 줄 몰랐기 때문. 선선한 날씨와 보수적 입맛에도 잘 맞는 음식, 2시간에 불과한 시차, 관광객에게 너그럽고 친절한 분위기 등 이유를 대라면 번갈아가며 배틀을 할 기세였다.


여행에 있어서 소극파를 도맡던 남편이 이번만큼은 앞장섰다.



"우리.. 가서 한 달 살아볼래?"



남편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오다니. 저런 과감한 결단을 얼마나 오래 기다렸던가.. 근데 막상 선수 치니 고민되기 시작했다.


'한 달씩 외국에 간다는 게 말이 될까. 부모님들이 서운하시진 않을까. 얼마나 들까.'


한 생각은 다른 생각을 파생시켰고 흔쾌히 그러자는 말이 기를 펴지 못했다. 그렇게나 동경하던, 말로만 듣던 '한 달 살이'를 하려면 막연한 걱정들을 이겨내야 하나보다.




2주의 시간이 흘렀고 결단해야 할 순간이 왔다.


원래의 나라면 그렇게 긴 휴가는 낼 수 없을뿐더러 설사 낼 수 있다 해도 오만 눈치를 볼 것이다. 여윳자금은 틈틈이 쓰임새가 있으니 남겨둬야 마음이 편하다. 여정을 마치고 일상에 복귀할 때 맞이할 두려움과 현타도 오롯이 내 몫이다. 원래의 나라면 가지 않는다. 안 갔을 것이다. 추억은 추억일 때 아름답다며 다음 여행을 기약하고 말 것이다.



그런데 한 번쯤, 그냥 반대로 회로를 돌려 의사결정 해보는 건 어떨까 하는 청개구리 심보가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휴직 중이니 휴가 낼 필요가 없고 남편은 방학을 갖게 됐다. 처음으로 먼저 여행 가자는, 그것도 한 달 살이를 가자는 말을 꺼낸 것도 그 영향일 것이다. 돈이 생기는 족족 물린 주식에 물을 타곤 했지만 한 두 번 거르는 동안 설마 저점이 지나가버릴까.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허무함 대신 충만한 에너지를 느낄지 누가 아나. 추억이 추억일 때 아름답다면 겁나 큰 추억을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


"그래 가자. 갈 수 있을 때 걍 가자."


그렇게 우리는 한 달간 떠나기로 했다. 남편은 빠른 시일 내 급한 업무를 마무리하는 데 집중하기로 했고 나는 출발에 필요한 준비를 맡았다.




막상 결정하고 나니 초조함이 사라졌다. 옷을 사거나 머리를 하지도 않았고 골 아프게 일정을 짜지도, 짐을 거하게 챙기지도 않았다. 적당히 없으면 없는 대로 살다 오자는 생각으로 떠나는 치앙마이행이 여러모로 나답지 않긴 했다. (도착하고 보니 선글라스도 안 챙겨 왔다.)


한 달간 내키는대로 살아보자는 이 야심찬 노선이 유지될 것인가, 도중 원상 복귀할 것인가.


무엇보다 만나게 될 인연과 사건들을 앞두고 다짐했다.


"지금, 여기에 집중하는 습관을 들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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