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대신 마음 통하는 이웃이 생기다

by 위키워키

치앙마이에 도착한 첫날 저녁, 쟁여두고 마실 맥주를 사려고 숙소 앞 슈퍼에 들렀다. 불교국가 특성인지 술이 비싼 나라인데 나중에 보니 우리가 접한 가격 중 가장 저렴하게 팔고 있었다.


"그냥 여기서 마시고 갈까?"


남편이 가리킨 가게 옆 마당에는 드럼통과 낡은 테이블 몇 개가 놓여있고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조명도 꽤 은은한 것이 마음에 들어 그러기로 했다.

그렇게 이곳은 하루를 마무리하기 전 꼭 들르는 최애 아지트가 되었다.





며칠 만에 우리 얼굴을 외운 사장 니우는 "two chang beers with ice~?" 라며 넉살 좋게 맞아주며 BGM 또한 우리가 알만한 팝으로 잽싸게 바꿔 틀어주곤 했다.


어느 하루는 한국에서 가져간 컵라면 2개를 맥주와 곁들였고, 나머지 2개는 니우에게 맛 보라며 건넸다. 그러자 내부에 있는 작은 방에서 귀여운 딸이 빼꼼히 얼굴을 내밀었다. 알고 보니 이 슈퍼가 영업장이자 가정집이었던 것이다. 짜장범벅에 코를 박고 먹는 아이의 모습을 보니 신기했다. 원래도 한국 짜장면을 그리도 좋아한다는데 잘 가져왔다 싶었다.


고맙다며 가져다준 용과
방콕 갈 때 공항까지 태워주겠다며 아예 우리 앞에 차를 끌어다 둔 니우




서른일곱의 니우는 시크하고 똑부러지는 부인 팽과 함께 11살 난 딸 닉을 키우는 가장이다. 낮에는 볼트나 맥심(현지 택시 어플) 기사로 활동하고, 가구점에서 일하다 저녁쯤 퇴근하는 아내와 이 가게를 운영한다. 약간의 영어를 구사할 줄 알고 친화력 쩌는 마당발인지라 고객관리를 도맡고 있고 팽은 대부분 피곤에 절어 카운터 겸 책상 앞을 지키거나 방에서 닉의 숙제를 봐주곤 한다.


작은 슈퍼에서 파트타임 직원을 2명씩이나 고용한 것이 신기했는데 지켜보다 보면 그럴만했다. 우리 같은 손님에게 얼음 버켓과 술을 가져다주고, 사러 온 고객에게는 계산을 해주며 물건을 건네고, 박스채 들어오는 맥주들을 정리하는 등 어느 하나 노는 손이 없었다. 파트타임 여직원인 남폰과 푼 또한 낮에는 각각 공무원 지망생, 염색약 판매원으로서 일상을 보낸다고 했다.




이들은 한창 바쁜 시간대를 보내고 늦은 밤 허기를 채우는데 어느 날 쪽파와 비슷한 채소 볶음과 오믈렛을 만들기 시작했다. 집에 가스가 떨어졌다며 직접 불을 때는 니우의 손길이 매우 숙련되었다. 호기심 어리게 쳐다보는 나에게 고추와 마늘을 빻으라는 미션을 주었고, 눈물을 줄줄 흘려가며 수행했다.

고마움을 표현하고자 갖고 있던 짜장면을 가져와 몇 개는 끓여주었고 남은 것은 딸 닉을 위해 남겨뒀다.


니우와 팽의 요리들은 그야말로 밥도둑이어서 그 자리에서 밥과 함께 싹 해치웠다. 잘 먹는 우리 모습이 재미있는 눈치였다.




매일 늦은 밤까지 같이 놀고도 다음 날 돌이켜보면 딱히 무슨 대화를 했는지 요약할 수는 없었는데, 그럼에도 함께 있을 때면 즐거웠다.


오지랖이 태평양인 데다 철없는 남편을 늘 걱정하고 혼내는 아내가 있는, 그러고 보니 자식 유무만 빼면 우리 부부와 똑같은 한 쌍이었다. 속깨나 썩인 듯한 니우와 모든 걸 감내해 온 듯한 팽은 항상 티격태격했고, 우리는 그들의 그런 모습을, 그들은 우리의 옥신각신을 재미있어하며 점차 '말하지 않아도 아는' 사이가 되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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