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쁘다 사랑해(32개월)
하얀 티셔츠에 어깨끈이 달린 청치마를 입으니 큰아이 같다. 유독 주머니를 좋아하는 아이는 왼쪽 오른쪽 주머니에 양손을 딱 집어넣고 코를 찡긋하며 눈웃음 짓는 그 모습을 보니 엄청 맘에 드는 모양이다.
‘우와 클로이 예쁘다 언니가 됐네.’ 칭찬 한마디를 더 얹어주면 좋아서 “안니 안니” 하면서 고개를 끄덕끄덕 언니라고 인정하며 헤헤 웃는다. 만족해하는 그 모습이 참 귀엽다. 못생겨도 예쁘기만 할 손녀지만 밖에 나가면 지나가던 사람들도 "예쁘다" 한 마디씩 하고 가는 걸 보면 누가 봐도 예쁘게 생긴 모양이다. 할머니 눈에는 크게 숨 쉬며 앙탈을 부려도 울어도 웃어도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이 진짜 진짜 예쁘다. 또닥또닥 토끼똥을 누면 많이 못 먹었구나 걱정되지만 가래떡처럼 매끈한 똥을 누면 그 똥도 더럽자 않고 예쁘다.
아이가 먼저 지나가는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준다. 감성이 메마른 사람이거나 성난 사람이라도 웃으며 손 흔드는 아이를 보며 무심코 지나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 다 손을 흔들어 답하며 "참 예쁘게 생겼다." 그런다. 할머니는 손녀를 향해 최고! 최고! 예쁘다. 엄지를 치켜세워주면 아이는 좋아서 신이 난다.
예쁘다, 좋다, 사랑해라고 하면 할머니 최고라고 도돌이표 반응이 되돌아온다. 서로 엄지 척하며 예쁘다 최고다 사랑한다 도돌이표 놀이로 즐거워하는 우리는 혹시 공주병 왕비병?
클로이 그 주머니에 뭐 들었어? 머리핀도 있고 레고 인형이 소복하게 들어있다. 주머니에 들어있던 것 하나 둘 모두 꺼내 놓고 빈 주머니 보여주며 “아무것도 없어. “ 클로이 주머니에 돈은 없어? 세상 때가 뒤룩뒤룩 묻은 할머니의 엉큼한 한마디로 아이를 자극해 본다. 돈이 뭔지 모르는 아이에게 돈이라니 할머니 고기 먹고 싶은데 고기는 누가 사주지?
작은 손으로 자기를 가리키며 “아 아” 자기가 사준단다. 그러면 돈이 있어야지 돈이 없는데 어떻게 하지 “아빠 아빠” 아빠는 만능이다. 바로 아빠를 찾아 나선다. 아빠보다 엄마를 먼저 만나니 빈 주머니를 벌리며 “핫머니 맘마 맘마“라고 하니 엄마가 무슨 의미인지 몰라 무슨 말이냐고 묻고 또 묻는다. 그래도 계속 “핫머니 맘마”라고만 한다. 기특한 손녀의 행동을 바라보던 할머니가 그 의미를 설명해 주니 엄마도 한바탕 웃는다.
“엄마 돈 없어” 하니 폰을 달란다. 폰을 주니 폰 뒤에 꽂힌 카드를 빼서 주머니에 넣는다. “하하, 이 아이 무서운 아이네 카드로 계산하는 것 봤다고 그걸 기억하네.” 카드를 주머니에 넣고 할머니 맘마 사준다며 기분 좋게 돌아온다. 카드 뺏기고 황당한 엄마. “핫머니 맘마”란 소리에 기분 좋은 할머니. 웃으며 돌아온 손녀를 꼭 껴안아 주며 이뻐 이뻐 이래서 손녀 키우는 재미가 있나 보다.
카드를 달라는 엄마와 줄 생각이 없는 딸과 신경전이 벌어진다. 두 손을 주머니에 넣고 살랑살랑 여유롭게 돌아다닌다. 돈이 뭔지도 모르는 두 살 아이도 돈의 여유를 느끼는 듯하다. 순수한 아이의 행동을 바라보며 돈과 여유를 생각하는 할머니 눈은 세상 때가 너무 많이 묻었다. 돈이 없어 배고픔을 참아야 한다면 어른이나 아이나 저런 여유가 생길까.
카드를 바꾸기 위해 다른 카드 하나를 주니 바꾸기는커녕 두 개를 다 주머니에 넣고 양손으로 꼭 잡고 다닌다. 어쩌지, 어린이집에 가기 전에 저 카드를 빼내야 할 텐데 허허. 할머니가 눈치껏 빼내기는 했지만 똑똑한 손녀다.
'손녀랑 할머니랑 한편 먹으면 너희들 이제 각오해야 될걸.' 클로이 엄마 빙긋이 웃는다. 똑똑한 딸내미 낳은 엄마의 미소다. 아이 앞에 찬물도 못 마신다더니 금방 따라 하는 걸 보니 머리가 잘 돌아가는 거지. 한번 더 인정받고 싶은 할머니. 우리 가족은 누구누구 몇 명이야? 그러면 “합버지, 핫머니, 아빠, 엄마, 아”라고 손가락 다섯 개를 꼽는다. 그 모습이 귀여워 꼭 껴안아 주며 클로이 ‘사랑해, 사랑해’ 등을 토닥토닥하면 그 작은 손으로 할머니 등을 톡톡 두드려 준다. 행복이 뭐 억만금이 있어야 행복인가. 건강하게 토닥토닥 이러면서 하루를 웃고 사는 것이 행복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