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함에 감동 감동(33개월)
유난히 아빠를 좋아하는 아이. 퇴근 시간 엄마 혼자 들어오면 "아빠는?” 하고 아빠를 찾는다. "아빠 오늘 늦게 오신대." 하면 "으앙 아빠 없잖아." 하면서 엄마는 뒷전이고 샐 쭉 돌아서 와 버린다. 아빠는 혼자 들어와도 엄마 안부는 묻지도 않고 "아빠, 아빠" 껴안고 뽀뽀하고 난리다. 둘이 같이 들어올 땐 엄마는 모르는 사람처럼 지나쳐 아빠에게 쪼르륵 달려간다.
‘클로이 왜 그래, 엄마가 최고지, 엄마 섭섭하겠다.’ 그래도 엄마는 "이때만 그래요. 괜찮아요." 한다.
어린 딸의 대환영을 받으며 귀가하는 아빠는 하하 호호. 딸아이의 관심 밖으로 밀려난 엄마는 "클로이 너 밤에 잘 때 보자." 하며 웃으며 들어 오지만 할머니가 미안해지는 이 분위기는 또 뭐지.
아무리 철없는 어린아이라지만 매번 아이에게 외면당한 엄마의 속마음은 섭섭할 것 뻔한데. 괜찮아요 하니 그러려니 생각하지만 안보는 것보다는 불편하다. 싫어도 좋은 척하는 어른과 다른 아이의 순수한 그 마음을 억지로 끌어당길 수도 없고 어찌할 수가 없다.
엄마를 모르는 사람처럼 냉대하더니 30개월째부터는 엄마를 찾기 시작한다. "엄마, 엄마, 엄마 좋아."
아빠에게로 향하던 사랑의 화살이 이제는 엄마에게로 향한다. 양방향으로 엄마 아빠를 들었다 놨다 맘대로 선택할 수 있는 넌 참 좋겠다. 함께 있는 시간이 아무리 많아도 할머니는 늘 뒷전이지만 당연하다. 엄마 아빠가 최고지 그러니 냉대를 해도 섭섭할 것도 없다. 그런데 작은 호의에도 혹하게 감동하는 사람은 또 할머니다.
무심코 혼잣말로 “아 속이 쓰리고 배가 아프다.” 배 아프다는 이 한마디에 옆에서 놀던 손녀가 얼른 일어나 등을 토닥토닥 두들겨 준다. 무슨 일인가 의외의 반응에 할머니가 더 놀란다. 엄마에게도 후하게 대하지 않던 아이가 할머니에게 후한 인심을 쓴다. 그 작은 손으로 전해지는 마음이 감동이다. 발뒤꿈치 굳은살보다 더 굳어버린 할머니의 감성을 손녀가 어루만진다. 눈물 나도록 고맙고 포근하다. 이런 느낌 처음이야.
작은 너의 두 손은 분명 약손이다. 말 한마디 흘렸을 뿐인데 그 마음을 알아차릴 수 있는 너는 어른보다 마음 씀씀이가 더 따뜻하구나. 내 맘은 꽁꽁 얼어붙은 얼음덩어리인 줄 알았더니 작은 관심에도 눈 녹듯 녹는 걸 보니 그건 아니었네. 사르르 녹아 시원한 빙수도 될 수 있었는데 임자를 못 만나 얼음덩이로 굴러다녔나 보다.
정답을 다 가르쳐 줘도 못하는 할아버지보다 세 살도 안 된 손녀가 할머니 마음을 더 잘 안다. 작은 손으로 등을 토닥토닥 만져 줄 때 어린 손녀에게 받은 사랑을 주체할 수 없어 “여보세요. 여보세요. 여기 좀 보세요. 이렇게 예쁜 손녀 덕분에 할머니가 행복하게 웃고 있어요.”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응급 상황이라도 생긴 듯 바쁜 걸음으로 달려가 병원 놀이 가방을 들고 와서 청진기를 양쪽 귀에 꽂고 청진판을 할머니 배에 댄다. 청진기는 “배탈 났어요.” 병명도 정확하게 나온다. 청진기를 내려놓고 주사기를 들고 배에 꾹꾹 누르며 주사를 두 번이나 준다. 그다음은 빨간색 약병을 들고 입에 들이댄다. 참 빠르게 처치도 잘한다.
'후욱 냠냠냠. 약 다 먹었다. 이제 배 안 아파 다 나았네.‘ 방긋 웃으며 다시 일어나 등을 토닥토닥 두세 번 더 두들겨 준다. 마무리까지 확실하다. 너무 사랑스러워 둘이 꼭 껴안고 볼을 비비며 깔깔깔 한바탕 웃는다.
할머니가 커피를 과하게 마셔서 속이 쓰리다는 걸 알았으면 뭐라고 했을까. ‘할머니 커피 먹지 마.’라고 혼내지 않아서 다행이다. 약간의 상처만 봐도 그냥 넘기지 못하고 입으로 호호 불며 아픔을 함께 해 주는 아이. 손톱 밑에 낀 때까지도 평소와 다름을 찾아내어 관심 있게 바라보며 왜 그런지 궁금해하는 아이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그럴 때마다 그 마음 씀씀이가 고맙다. 어디서 이런 마음이 나올 수 있을까 신기하다.
다른 집 아이들도 다 그러는데 혼자만 호들갑인가 손녀가 처음이라 손녀 사랑에 푹 빠져 버렸나 보다.
수십 년 함께한 할아버지도 못하는 걸 어린 손녀가 더 잘한다고 했더니 “당신은 손녀나 잘 키워봐” 질투심인지 진심인지 알 수 없는 그 한마디를 툭 던진 다.
가까이서 보지 않았다면 예쁘게 자라는 손녀의 한순간, 순간을 놓칠 수밖에 없었을 소중한 장면이다. 손녀를 봐 달라고 했을 때 새삼스럽게 육아라니 모든 삶이 뒤틀어지는 듯 못마땅하고 짜증스러웠다. 그때 심정은 지옥 불에 던져지는 기분이 그런 것일까. 순순히 받아들이기는 힘들었다. 손녀 육아를 감당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서 더 그랬다.
처음 적응하는 동안은 때때로 기쁨과 웃음이 선물처럼 주어지지만 몸은 그 자리에 있으면서도 마음은 늘 달아나고 있었다. 내 인생의 주인이 누군지도 모르고 지금까지 가족을 위해 살아왔는데 또 육아의 길이라니 언제 자유로울 수 있을지 피할 수만 있으면 피하고 싶었다.
그렇게 시작된 육아가 이제는 당연히 해야 할 육아로 굳어지고 너의 맑은 눈을 보면 너를 떠나 멀리 달아날 수도 없다. 처음부터 너의 눈과 마주치지 않았더라면 자유로웠을까. 함께한 지 2년, 앞으로 어떻게 될지 너의 따뜻한 그 마음을 뿌리칠 수 없어 서 자유를 갈망하면서도 제자리걸음만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