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문이 트였다(33개월)
30개월까지도 문장으로 말을 이어가지 못했는데 한두 달 사이에 언어표현력이 대단한 발전을 보이고 있다. 따라쟁이 앞에서 말을 하기가 무섭다.
할머니는 급하면 무분별 사투리가 벌벌 벌 튀어나오는데. “할머니 말이 재미있어” 하며 자꾸만 따라 하니 민망하다. 나도 몰래 툭툭 튀어나오는 사투리와 순간적으로 튀어나오는 상스러운 소리까지 표준어로 구사하기란 외국어만큼이나 어렵다. 앵무새처럼 따라 하는 소리에 깜짝깜짝 놀란다. 좋은 것 나쁜 것 걸럼 없이 스펀지처럼 흡수하는 아이다.
클로이의 요즘 놀이는 말 따라 하기와 퍼즐 맞추기다. 무슨 놀이를 해도 오래 하지 않는데 퍼즐만은 집중한다. 잘 맞춰지면 함성을 지르며 재미있어한다. 끝날 때까지 한 시간 이상을 꼼짝 못 하고 옆에 앉아 퍼즐 한 장씩 집어 주며 말동무가 되어 주어야 한다. 재미에 빠지면 쉬는 것도 없다. 이런 집중력을 봤나. 할머니가 더 힘들다.
클로이 너 할머니 소 잡아 줬어?
“예”
언제?
“내일”
하하 내일이 언제야?
“오늘이지”
내일과 오늘은 같은 날일까. 그러고 보니 우리는 내일을 말하면서 사는 건 늘 오늘에 산다. 내일은 생각일 뿐 현실은 오늘이다. 내일도 오늘이라는 아이의 말이 정답인 것 같기도 하다.
너 내일 뭘로 소 잡아줄래 너 돈 있어?
“응”
보자 어딨어?
바지 허리춤에 손을 집어넣었다 빼내어 꼭 쥔 손을 내민다.
허허 누구한테 배운 솜씨인지 한바탕 웃음을 준다.
딸이랑 통했는지 퇴근해 온 클로이 아빠. ”솥뚜껑이랑 가스레인지 새로 사 왔으니 언제든지 고기 먹고 싶을 때 이야기하세요. “ 아니 클로이가 내일 소고기 사준다고 했는데.
“클로이 할머니 소고기 사드리기로 했어?”
“예”
“너 돈 있어. “
또 허리춤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빼낸다
아이 없으면 웃을 일이 없다
할머니 행동이나 말이 좀 삐딱하다 싶으면
“할머니 많이, 많이 사랑해 소고기 사줄게”
말문이 트였다고 이쁜 말도 잘한다.
36개월이 되기까지 문장으로 말을 못 하면 정밀 검사를 받아보라는 의사의 그 말이 마음에 걸렸는데 33개월 차에 표준어든 사투리든 듣는 대로 다 따라 하니 애 태웠던 그 일은 다 해결된 셈이다. 할머니가 다양한 언어를 할 수 없는 것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