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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국 Apr 09. 2021

꽃봉오리처럼 늘 예쁘게 살고  싶었지만

인생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처지를 한탄해야지 누굴 탓하겠나  걷는  다리가 문제지 하루라도 먼저 가는 사람은 대복 받았다.라는 말을 심심찮게 하는 85 할머니.

남의 일에 참견하고 무시하며 갈구는 것으로 낙을 삼는 내가 제일 잘난  착각 속에 사는 89 할머니. 씻고  씻어도 성에 차지 않는 깔끔함에 수도세 폭탄 맞게 하는 92 어르신.

눈까리 까졌나 전깃불은  켰냐라고 몸에  절약 정신이 짜증으로 변하는 95 어르신.

족발에 감자탕과 보쌈, 불고기, 육회까지     늘어나는 간식비 폭탄에 힘겨워하는 막내딸의 하소연은 못 들은  고기 타령만 하는 78 어머니.

내손과 발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그래도 “살고 싶다” 는 74세 어머니.

시도 때도 없이 변을 달고 살아도 먹을  앞에선 허겁지겁 남보다  먼저 삼키고 보는 76 어머니.


서로 얼굴 쳐다보며 “ 죽어서 탈이다. 죽어야지 죽어야지하면서도 “개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단다.  손으로  떠먹을 힘만 있어도 이승에 있는  낫다.” 수시로 내뱉는 소리지만 진실  수가 없다. 개똥 밭이라도 구를  있는 힘이 된다면 충분히 건강하다는 뜻이다. 개똥밭이 아니라   깔고 누워서도 살고 싶은 마음은 한결같으니 오락가락 널뛰기하는 어르신들  마음을  찍어 알아맞히기란 쉽지 않다.     


 내 발 내 다리 내 몸으로는 서지도 못하고 한 발짝 걷지도 못하며 휠체어에 전적 의지한 89세 할머니가 유난스럽게 씻고 또 씻는 깔끔한 게 병인 92세 할머니를 보며 ”나도 늙어서 저러면 어쩔까 걱정이다" 하신다. 늙음의 기준이 뭔지 의미가 뭔지 헷갈려진다. 같이 늙어가는 입장에 80대 말과 90대 초반 불과 3년 차이가 이렇게 세대차를 느끼게 하는가.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커가는 아이들에게 “오뉴월 하루 볕이 무섭다”는 그 말이 노년에도 통할까.


“나도 늙어 저러면 우짜꼬” 하시는 그 말씀은 아무리 생각해도 우습다. 육신은 망가졌을 망정 나는 아직 정신적으로 건강하다는 자신감이겠지. 어르신들과 함께하며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어떻게 살아야 인생을 잘 살았다고 할 수 있을까. 딱히 정답도 없는 문제를 곱씹어 생각하게 된다.

다시 볼일 없는 잡지책처럼 뒷전으로 밀려난 어르신들의 삶이란 밥 한술 잘 못 넘겨도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그 길로 갈 수밖에 없는 허약한 모습이다.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시들해지는 꽃처럼 시무룩하게 풀이 죽어 있는 어르신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이분들도 생기 발랄하게 꽃피던 젊은 날이 있었을까. 안타까운 마음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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