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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국 Apr 26. 2024

엎어지고 날아가다

호야는 별일 없이 잘 산다

성질머리가 왜 이리 급해졌을까. 모르면 가만히 있던가 안되면 마음을 내려놓고 때를 기다리면 될 텐데. 잠시를 기다리지 못하고 끙끙거리다 사고 치고 후회한다. 항상 조금만 참을 걸 그때사 깨닫는다. 잘 되던 와이파이가 왜 갑자기 안 되는지 속이 답답하다. 고장 신고를 하면 될 텐데 고장신고 번호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너무 의존하며 살았나 보다. 중증이다.


‘와이파이가 갑자기 안되는데 왜 그럴까요?’ 백리 밖에 있는 그이에게 물었다. “와이파이, 코드를 뺏다 꽂아봐.” 대답은 간단한데 쉽게 봤더니 더럽게 안 꽂힌다. 그 작은 테두리 안에서 구멍 찾는 게 이렇게 힘들까 못 찾겠다. 손끝에 눈이 없는 것이 아쉽다.


TV가 딱 중간이라 왼쪽에서 보나 오른쪽에서 보나 쉽게 손이 닿지 않는다. 할 수 없이 티브이와 벽사이 좁은 틈새에 몸을 어설프게 밀어 넣고 콘센트 구멍과 씨름하는 사이 TV가 앞으로 꼬꾸라졌다. TV 화면도 아무거나 딱지 말라고 경고하고 갔는데 이일을 어째. 사고는 큰 사고다.


틈만 나면 텔레비전 앞에서 드라마 영화  한마디 놓치지 않고 집중하는 그이의 절친처박아 놓았으니 어쩌나. 이삿짐보다도 며칠 먼저 들어와 있었던 터줏대감을 거꾸러뜨렸다. 과연 어떻게 됐을까. 죽었니 살았니? 아이고 내가  이러지 하면서 벌떡 일어나 제자리로 올라앉았으면 좋으련만 거구가 엎어져 있으니 일으켜 세우기도 힘들다.


와이파이는 왜 그때 탈이 나가지고 이런 사달이 나게 하냐. 차라리 아침 일찍 밖으로 운동이나 나갔으면 이런 꼴이 없었을 텐데 꼭 사고 치고 돌아본다. 아이 짜증 나 텔레비전 떨어뜨렸다니까


“그거 이제 안 나온다. 조금만 충격 줘도 고장 잘 나는데. 성질 급하기는 고장신고 하고 기다리면 되지” 그러게 고장신고 해주면 될 것을 왜 코드 뺏다 꽂아라 해가지고. “그래, 해보라고 말한 내가 잘못이다.”


그래도 할 수 없지 어쩔 거야. 이미 일은 저질렀는데 똥 낀 년이 성낸다고 사고 친 사람이 더 식식거리고 열받는다. 텔레비전은 엎어놓고 들어 올릴 생각을 하니 TV 큰 것도 불만이다.

  

티브이에 부딪쳐 구석으로 날아 떨어진 호야 화분은 어떻게 됐는지 그것이 더 궁금하다. 화분은 흙만 좀 흩어졌을 뿐 별 문제없다. 다행이다. 화분을 챙겨 제자리에 놓고 TV를 낑낑거리며 일으키고 온몸으로 받쳐 힘들게 제자리로 올려놨다.


리모컨 리모컨, 빨리 눌러봐야지. 계속 신호 없음이 뜬다. 까만 화면을 보며 정말 죽어버린 걸까. 마음을 가다듬고 정성스럽게 리모컨을 다시 눌렀다. 소리가  울리며 화면이 나온다. 아쉬운 대로 볼만하다. 고통의 흔적으로 왼쪽   정도는 화면이 하얗게 죽어버렸다.


기술도 좋지 죽으면  죽지 그래도 아쉬울까  죽은 부위보다 살아 있는 화면이  크다. 순식간에 화면은 줄고 남은 화면은 그런대로 볼만하다. 며칠 시간이 지나고 TV 겪었을 충격의 아픔을 잊어버리고 고장 난 화면에 익숙해져 갈 무렵. TV 보면서 오늘은 사회자가  먹고 방송진행하나 . 얼굴이 빨갛게 나오네.


“허허 참, 텔레비전이 고장이 났으니 그렇지.”

어떤 사람은 목이 빨갛게 나오고 어떤 사람은 얼굴이 빨갛다. 똑같은 김치전을 보는데도 오른쪽은 김치전 왼쪽 화면은 부추전 같다. TV가 잘못됐다는 걸 잊어버리고 속고 또 속는다. 붉은색과 푸른색이 제멋대로 나온다.


순간의 실수로 멀쩡한 TV 깨고 돈 깨지게 생겼다. 요즘 티브이는 등치는 큰데 왜 이리 약한 거야. 티브이는 깨졌지만 와이파이는 고장신고 없이 살아났다. 이래가지고서야 혼자 놔두면 뭘 제대로 하고 살겠나. 그것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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