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국 May 03. 2024

아이고 이럴 수가

편하려고 꽤 부리다가

아침에 후다닥 일어났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 정신은 깨어 있고 몸이 늦장을 부리며 뒹굴고 있었다. “안 일어나나 둘이 밤샜나?”


주인장의 기상소리에 마나님도 한 말씀 거든다. "가만히 있어도 때가 되면 아침밥 챙겨줄 텐데 다그치기는 별일일세. 전기밥솥에 찬합 넣고 물 좀 두르고 취사 눌러 주이소. 밥 데워지면 국도 있고 아침 먹으면 되는데 뭐 그리 바빠서 그래요.”


알았다는 말도 없이 뭔가 부스럭거리더니 밖으로 나가는 주인장. 잠시 있다 보니 뭔가 탄 냄새가 난다. 탈 일이 뭐 있다고 어디서 타는지. 아무래도 이상하다. ‘어디서 탄내가 나는데’ 주방 쪽을 바라보니 밥솥에서 김인지 연긴지 뭔가 풍풍 솟아오른다.


“아이고 세상에 저 너무 영감이 뭘 어째놨길래 연기가 나지.” 늦장 부리며 편해 보려던 마나님 순간적으로 벌떡 일어나 밥솥을 열어본다.


“아이고 영감쟁이 나이 칠십이 넘도록 살아도 몰라도 저렇게 모를까. 제대로 하는 게 없으니 뭘 시켜 먹을고.” 잠시 꽤 부렸더니 문제가 더 많다.


"맨날 차려주는 밥만 먹었으니 뭘 알겠어. 늙어도 눈치가 빨라야 밥이라도 얻어먹제 아이고 답답해라. 저 영감쟁이 나 죽고 없으면 밥이나 먹고살겠나." 마나님은 아이고 소리 여러 번 하며 기가 차서 혀를 끌끌 찬다.


죽는 사람이 뒷일 걱정할게 뭐 있다고 별 걱정을 다하셔. 돈만 있으면 마나님 없어도 밥이고 반찬이고 입맛대로 골라 먹고 잘 살걸. 요새 얼마나 살기 좋은 세상인데 걱정할 것 없어.


전기밥솥에 내솥을 넣고 찬합을 넣고 물을 둘러야 할 것을. 내솥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스텐찬합을 넣고 그냥 물을 부었으니 물은 전선이 먹었는지 어느 틈새로 빠졌는지 밥도 타고 솥도 녹아내리고 쾌쾌한 냄새에 난리 한 판 벌어졌다. 잠깐 사이에 화재현장이 될뻔했다.


담배 한 대 피우고 들어온 주인장은 따발총 잔소리 직격탄을 맞는다. 무슨 영문인지 몰라 둘러보며


"뭐가 잘 못됐는데 날 보고 왜 그래."


내솥을 넣고 물을 부어야지 어떻게 그냥 물을 붓냐고 불날뻔했구먼.


“내가 알았나."


몰랐다는 데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아이고오 기본도 모르니 무슨 말을 하겠나”.  


밥 한 통은 탄 냄새가 나서 다 버리고 스텐찬합도 바닥이 까맣게 타서 버려야 할 판이다. 문제는 밥솥이다. 다른 건 다 버려도 밥솥만은 살아있어라.


"밥솥 안되면 하나 사면되지 뭐"


“ 안되면 당연히 사야겠지만 순식간에 목돈 깨지는 날벼락을 맞았으니 그렇지.”

조심스럽게 전기코드를 꽂았다. 화라락 불이라도 날까 봐 무서워 손이 떨렸다. 전기제품에 물들어가면 큰일 나는 줄 알았는데 작동이 된다. 제품이 그렇게 허술하진 않은 모양이다. 아휴 다행이다.


수난을 당한 밥솥이 얼마동안 제 역할을 감당할지 모르지만 더 이상 별일 없기를 바라며 게으름 피우다가 생쇼를 했다. 이렇게 사고 치고 깨닫지만 다음에 또 어떤 실수를 할지 장담할 수 없는 삶의 현장이다.

이전 01화 엎어지고 날아가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