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에서 사고 난 이야기
부부가 한날한시에 정답게 저세상으로 갈 뻔했다.
“아버님은 아무거나 사드리면 안 좋아하시니 옷 하나라도 사드리려면 망설이게 됩니다.” 시아버지의 성격이나 취향을 잘 아는 며느리가 겁 없이 운전면허증 반납을 권했었다. “아버님 이제 운전면허증 반납하시죠.” 며느리의 권유에도 그것만은 쉽게 내려놓지 않았다.
때때로 튀어나오는 "나 때는 말이야." 지난날은 어쨌거나 현재 이빨 빠진 호랑이는 위엄이 없다. 무늬만 호랑이인 그는 대형 승용차를 타고 무전기 같은 휴대용 전화기를 들고 사장 명함을 내밀며 다녔던 잘 나가던 그 시절을 잊지 못한다. 등빨 좋지 인물 좋지 돈 잘 벌지 사나이 폼나게 삼박자가 딱딱 맞았다. 그때가 꽃피는 봄날이었다.
승승장구 잘 나가던 사업에 박차를 가하며 한방 크게 투자하면 더 큰 성과를 거둘 줄 알았지. 한방에 내리막길로 내달린다고 예상이나 했을까. 사업이란 뻥튀기처럼 한방에 펑펑 튀는 게 아니었다. 한방 크게 투자하고 크게 미끄러진 사업 회생은 쉽지 않았다. 현실은 쪽박인데 생활습관은 대박으로 길들어 있으니 하루아침에 나동그라지기는 쉽지 않았다.
“내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나.” 그 생각을 바꾸고 자신을 내려놓고 밑바닥으로 떨어진 생활에 적응하기란 쉽지 않았다. 손가락 사이로 모래알 빠지듯 재산은 다 빠져나가도 운전면허증 하나만은 손에 꼭 쥐고 있었다. '내 너를 꼭 지켜주마' 지갑 속에 꼭꼭 챙겨 넣었다. 동네마트라도 가려면 필요한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며느리가 권하다 지는 척 자가용을 사드렸다. 뜻밖의 선물을 받고 차를 굴리며 고마운 마음에 부모 산소라도 둘러보고 와야겠다고 날을 잡았다. 부모 살아생전 못한 효도 산소라도 잘 돌보려는 그 마음은 진심이었다. 비가 살살 내렸지만 계획한 대로 길을 나섰다.
자주 다녔던 길이라고 방심했을까. 고속도로 진입 후 한참을 잘 가다가 일을 내고 말았다. 중앙 분리대를 ”탕” 박았다. 급브레이크를 밟았으나 잘 듣지 않았다. 차는 비틀거리며 중앙 분리대를 또다시 “탕탕” 박고 튕기며 가드레일을 치고는 멈춰 섰다. 양쪽 에어백이 터지고 어떻게 된 상황인지 뭘 잘 못 했는지. 그는 잘못한 게 없고 문제라면 차가 문제라고 했다.
운전미숙인지 차량에 하자가 있었는지 미끄러운 빗길 탓인지. 어떤 원인이었던 이미 사고는 났다. 그래도 살 운명이었는지 그 순간 뒤에서 차가 오지 않았다. 몇 중 추돌사고의 원인 제공자로 뉴스에 나올 뻔했는데 대형사고를 피해서 천만다행이었다.
아픈 건 둘째치고 정신을 차리고 제일 먼저 며느리에게 전화했다. “야야, 고 고속도로에서 사 사고가 났다.” 말을 더듬으며 무슨 말로 횡설수설했는지 깜짝 놀란 며느리는 상황파악과 사고처리에 들어갔다. 잠시 후 119구급차가 도착하여 환자는 병원으로 이송되고 차량은 그날로 폐차되었다. 심하게 찌그러진 차를 보면서도 평생 무사고 운전인데 이렇게 오점을 남기다니 자존심 상해서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사고지만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 몰랐다.
그는 허리 골절로 한동안 병원에 입원하는 신세가 되었다. 일 년이 지나도 다친 허리는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고 구부정한 몸으로 불편하게 살아간다. 며느리는 또 한 번 운전면허증 반납을 강조한다. 며느리가 잔소리 큰소리 무슨 소리를 해도 이제는 꼼짝 못 하게 생겼다. 진작 며느리 말을 들었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 욕심이 과했다.
죽을 모퉁이 돌아서 자식들 혼을 다 뺀 후에도 운전면허증 반납은 아쉬워한다. 다시 한번 자가용이 주어진다면 멋지게 운전하다 명예롭게 퇴진하고 싶은 모양이다. 그때가 다시 올지 모르겠지만 한번 기대해 보세요. 꿈은 이루어진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