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끼손가락 골절 사연
고소공포증 말로만 끝낼 일이 아니다. 대둔산 구름다리에서의 비명. 직각에 가까운 삼선 계단 올라갈 때 심장이 멎을 것 같았던 두려움. 앞사람 엉덩이에 얼굴을 쳐박고 숨도 제대로 못 쉬고 떠밀려 계단을 올라갔던 일. 정상 마천대 앞에서 안도의 숨쉬기보다 내려갈 길이 아득하여 후들후들 떨었던 두 다리.
무슨 용기로 따라나섰던 등산인가.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그만큼 무서워 떨까. 대둔산 그 계단을 다시 한번 올라 가 보고 싶다. 겁쟁이 자신을 시험해 보고 싶지만 아직 기회는 없었다. 꿈만 꾸다 끝나는 건 아닐까. 세월이 더 가기 전 언젠가 한 번은 해 봐야지. 그때보다 간뎅이가 좀 크지 않았을까. 그렇게 인정하고 싶다. 그때만큼 벌벌 떨지는 않을 것 같은 자신감은 있는데.
새로운 일이나 조그만 사건에도 심장이 떨리는 걸 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간뎅이는 제자린데 오기만 자랐나. 넘지 못할 산일 것 같기도 하고 딱 한 번이라도 자신 있게 넘어서고 싶은 산이기도 하다.
궁금한 건 해봐야 하는데 아직도 풀지 못한 과제로 남아있다. 언젠가 한 번은 도전해 봐야지. 마음은 이팔청춘 자신감 뿜뿜인데 현장에선 또 무서워 떨겠지.
어린 손녀의 극성에 미끄럼틀에 올라갔다가 간들간들한 어린아이가 꼭대기에서 쭉 미끄럼 타고 내려가니 ‘어어 저 아이를 어쩌나.’ 빨리 뒤따라야 아이를 챙길 것 같은 다급함에 미끄럼을 타고 내려가는데 속도에 깜짝 놀랐다. 너무 무서워 미끄럼틀을 손으로 잡는 순간 그 속도에 멈추지는 않고 주춤하다 그냥 내려가 땅에 꼬꾸라졌다. 놀라움과 민망함에 벌떡 일어났지만 왼손 새끼손가락은 이미 탈이 났다.
남들이 보기엔 하찮은 높이지만 난 역시 고소공포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대둔산 삼선계단에서 거꾸로 굴러 떨어진 기분이었다. 아야 아픔을 느끼자 손마디가 살짝 부어오른다. 그만 일로 골절이 오리라고는 생각 못했다. 타박상이겠지 생각하고 한이틀은 미련스럽게 그냥 지냈다. 병원에 갔을 때 “골절입니다.” 세상에 완전 기브스도 아니고 안전장치만 해준다. 죽을 만큼 아픈 것도 아니고 손 놓고 놀 상황도 아니고 별일 아니겠지. 오른손잡이에게 왼손은 보조니까 무심코 넘기며 불편해도 평상시 대로 할 일은 다했다. 집안일이란 손이 안 가고 되는 일이 없다.
관리를 제대로 못한 결과 시간이 지나고 보니 손가락이 꼬부라져버렸다. 꼬부라진 새끼손가락을 볼 때마다 손녀와 미끄럼틀에서 일어난 그 사건을 잊을 수가 없다. 손녀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지만 먼 훗날 할머니랑 놀았던 일. 어설픈 할머니 몸이 부서지도록 너를 지키려 애쓴 공을 생각이나 해주려나.
흐름에 따라 몸을 맡겨야 하는데 반항하다 이런 꼴이 났다. 인생도 곤두박질치지 말고 물 흐르듯 순리데로 살아지면 좋을 텐데. 의사 선생님은 “잘못하면 손가락이 꼬부라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 말고 아예 쭉 펴지게 완전 깁스를 해주었으면 이런 일 없었을 텐데. 장애가 되어버린 새끼손가락을 볼 때마다 아쉽다. 미끄럼도 제대로 못 타지만 그래도 인생을 걸고 대둔산은 다시 한번 가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