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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국 Sep 13. 2024

남자도 뒤웅박 팔자일까

붐비는 길 위에서

새벽까지 잠 못 자고 어질어질 한 머리를 쳐들고 길을 나선다. 퀄리티 좋은 커피라는 소리에 오후 늦게 먹은 고소하고 부드럽고 독하지 않은 아메리카노 한잔의 효과를 톡톡히 본 셈이다. 정오가 가까워 오니 햇살도 뜨겁다. 인도와 맞닿은 건물벽 아래 한 남자가 세상 편하게 코를 골며 단잠 중이다. 추석명절을 맞아 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왕래하는 시장 입구 길바닥에서 저렇게 잠이 올까. 드렁드렁 코 고는 소리에 지나가던 사람들은 한 번씩 돌아보며 갈길을 간다.


그 이유는 모르지만 길바닥에서 곤히 잠들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겠지. 불쌍하거나 애처로운 마음보다 웃음이 나오게 하는 아저씨다. 비록 길바닥에서의 낮잠이지만 숙면 중이다. 세상 행복해 보인다. 남이야 뭐라든.


얼굴은 통통하고 등발도 좋은 아저씨의 풍채를 볼 때 골몰스럽거나 찌들게 산 사람은 아닌 것 같다. 배짱 있어 보이는 저 아저씨는 왜 길바닥에서 잠이 들었을까? 혹시 멀끔하게 생긴 저 아저씨도 신입 노숙자일까. 그것이 궁금하다. 길바닥을 안방 삼아 막걸리나 소주를 마시다 잠든 노숙인들의 모습을 보게 되는 아지트와 가까운 곳이다.


딱딱한 길바닥에서라도 깊은 잠을 잘 수 있다는 건 잠 못 이루고 불면의 밤을 보낸 사람들에 비하면 얼마나 다행인가. 숙면이 부럽다.


비슷한 연배의 아저씨가 돌아보며 “이러면 안 되는데…. ” 그러면서 지나간다. 보는 이는 여러 마음이 들지만 잠든 아저씨는 아무 상관없다는 듯 세상 편하게 코를 골며 잠들었다. 바닥은 서늘해도 햇살은 따뜻하고 잠이 올 만도 하다.


길바닥에서 잠든 아저씨를 지나 대로변에 나오니 인도 한쪽 어귀에는 한 아저씨가 쭈뼛거리며 어색한 모습으로 서있다. 넓은 인도 한쪽귀퉁이를 내 집마당인양 종이박스와 유리병, 캔등 각종 고물들을 부어 놓고 정리하는 중이다.


캔을 납작 납작하게 꼭꼭 밟으며 “요렇게 하면 부피도 줄고 짐 싣기도 좋을 텐데” 아주머니는 시범을 보이며 입과 손과 발 온몸이 바쁘다. 아무래도 아저씨 하는 일이 맘에 안 들었나 보다. 아주머니는 말도 야무지지만 손놀림 하나하나가 야물딱스럽다.


아저씨는 손수레 끌며 온 동네를 돌고 돌아 고물을 주워 왔지만 기도 못 펴고 혼나는 모습이 안쓰럽다. 누구는 길가에 누워서도 세상 편하게 단잠 중이고 누구는 애써 수고하고도 야단맞고 기죽어있다.


아저씨도 에라 모르겠다 손 훌훌 털고 그늘에 가서 푹 쉬세요. 해도 혼날 바엔 안 하고 욕먹는 게 낫지 않을까요. 그것도 베짱이 있어야 그렇게 하지. 뒤탈이 무서워 그렇게도 할 수 없죠.


인도를 내 집인 양 편하게 사용 중인 두 남자는 중년도 노년도 아닌 그 어디쯤이다. 여자팔자 뒤웅박팔자란 말도 옛말이고 요즘 세상은 남자팔자도 뒤웅막팔자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남의 남자 팔자까지 신경 쓰는 영양가 없는 넋두리는 아마도 불면증 부작용 일거야. 이제 오후 늦게 커피 먹나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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