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국 Aug 30. 2024

빈자리를 보며 생각한다

불효녀도 마음은 아프다

며칠째 계속 그 자리가 비었다. 무슨 일일까? 그 빈자리를 보며 너무 더워서 병이 낫을까. 혹시 밤새 안녕하고 떠나셨나. 내 엄마의 빈자리를 보는 듯 별 생각을 다 한다. 연로하신 어르신들은 안 보이면 안부가 궁금하고 걱정된다.


아침마다 산책 후 나무그늘 아래서 쉬던 어르신 모습이 보기에 좋았다. 몇 날을 지켜보다가 가던 방향을 돌려 옆에 앉아도 될까요?

“그럼요, 앉으세요. “  

모자창에 가려졌던 얼굴을 가까이서 보니 깨끗한 피부에 온화한 인상이 연세가 들어도 영판 여자다. 곱게 물든 단풍잎처럼 맑고 건강한 할머니다.


운동하러 나오셨어요?

“예, 나오면 바람도 쐬고 이렇게 이야기도 하고 얼마나 좋아요.”

그렇죠. 잘 나오셨어요. 집이 가까우세요?

손으로 가리키며 ”저기 공원 가까이 집이 있어서 참 좋아요. “

건강하시죠. 혼자 걸을 수 있을 때 많이 다니세요.

”고맙습니다. “

연세가 여든 후반쯤은 됐을까. 외모로 연세를 가늠하기 힘들다.


“나이가 드니까 귀가 잘 안 들려서 못 알아들을 때가 있어요. 이해하세요. “

이때다 싶어서 할머니 연세가 얼마예요?

” 내 나이 올해 구십 다섯 살이요 “

네~에, 그만큼 보이지 않아요. 우리 엄마는 구십 일곱인데 혼자 걷지를 못해요. 어르신은 정말 건강하시네요. 엄마와 한 시대 사람인데 이렇게 건강하게 혼자 나들이를 할 수 있다니 부러워요.


"엄마가 두 살이나 많네요. 나도 두해 더 있으면 어떻게 될지 모르지요."

어르신은 두해 더 지나도 건강하실 것 같아요. 우리 엄마는 두해 전에도 못 걸었어요. 젊을 때 일을 많이 해서 그런가 다리에 힘이 없어요. 어르신은 고생 많이 안 하셨는지 곱고 예뻐요.

"아이고 별말씀을 난 고생은 안 했어요.

이 나이 되도록 다리고 팔이고 몸 어디도 아픈 데가 없는데 단지 귀가 좀 안 들릴 뿐이지요."

예에 아픈 데가 없으니 얼마나 좋아요.

정말 복 받으셨네요.

"부모가 좋은 걸 물려줘서 그렇지요."

뭐니 뭐니 해도 건강이 최곱니다.

그 연세에 지팡이 없이 혼자 걸어 공원을 산책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


지금은 누구랑 사세요?

"막내아들식구 네 명이랑 다섯 명이 살지요.

할아버지는 안 계세요?

“남편은 죽은 지가 사오 십 년 됐나. 사십 대에 죽었으니 오십 년은 됐겠다. 몇 년인지 생각도 안 나네. 나는 이렇게 행복하게 잘 사는데 먼저 죽은 남편이 불쌍하지. 남편 생각하면 불쌍한 생각밖에 안 들어."

할머니는 젊을 때 남편이 돌아가셔서 그런지 영감이라 말하지 않고 꼭 남편이라고 했다. 젊은 날의 여운이 그대로 남아있고 거기서 마음이 멈춰있는 듯하다.

남편 돌아가시고 고생하셨겠네요.

"난 고생 안 했어요."

남편 일찍 돌아가셔도 사는데 지장 없었어요.

"재산을 많이 남겨두고 가서 애들 키우는데 고생 안 했어요. 아들 셋, 딸 둘, 오 남매 다 대학졸업시키고 결혼도 다했고 애들이 착해요."

네, 다행이네요. 남편이 사업했어요?

“예“

무슨 사업했어요?

"화공약품"

화공약품이란 돈벌이는 되는지 몰라도 사람몸에는 안 좋은 모양이다. 남편이 일찍 죽은 걸 보니.


할머니 입에서 나는 행복하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그 시절 어머니들은 소설책 몇 권을 쓸 만큼 고생했다고 이야기하는데 이 어르신은 모든 걸 요약하면 ‘행복’이다.


아들 며느리가 고맙네요.

“맞아요, 요새 시어미랑 같이 살 며느리가 있겠어요. 며느리가 착해요. “

막내아들 재산 많이 줬어요?

“나 죽고 나면 저희들끼리 의논해서 법이 정한 대로 나누겠지요.” 자식들 누구는 더 사랑하고 덜 사랑하는 것 없이 공평하게 대하는 어머니 마음이 흡사 내 엄마와 닮았다. 현명한 어머니다.


우리 엄마와 나눈 대화보다 모르는 할머니와 더 많이 대화한 것 같다. 엄마에게 무관심했나 싶지만 우리 엄마는 2박 3일을 함께해도 깊은 대화가 이어지지 않는다. 자식들 신경 쓰이게 할까 봐 속 깊은 말은 꾹꾹 눌러놓고 몇 마디하고 나면 대화가 끊어져버린다. 평생 묵묵히 참아 온 것이 생활화된 것 같아 그것이 아쉽다.


이 할머니는 오늘 내내 이야기해도 계속 이어질 것 같지만 이 정도에서 오늘도 건강하시구나. 연로하신 어르신의 근황을 보며 곁들어 내 엄마도 그러리라 위로를 받는다. 그런데 며칠째 안 보이는 할머니가 궁금하다. 연세가 많으니 삶과 죽음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이 세상과 저 세상 어디쯤에 계시는지 할머니의 근황이 궁금하다. 빈자리를 보며 내 엄마는 잘 계시는지 연로하신 엄마를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 불효녀도 마음은 아프다.


그 빈자리를 향해 나는 올라가고 할아버지 한 분은 내려와서 동시에 그 벤치에 도착했다.

서로 어색해하며 ‘앉으세요.’

할아버지는 왼쪽 나는 오른쪽에 앉았다.

‘날씨가 덥지요?’

”아이고 날씨가 대단하네요. “

잠시나마 엄마와 할머니를 생각하며 그 자리에 앉으려 했고 할아버지는 지나가는 길에 잠시 쉬어가려는 참이었다.

바람이 살랑살랑 시원하게 잘 분다.

할아버지는 잠시 쉬었다 일어서며

 ”쉬었다 가세요. “

‘네 잘 다녀오세요.’

살살 불던 바람이 갑자기 격하게 불어온다. 이 바람은 무엇을 말해 주고 싶은 걸까. 바람의 이야기가 들릴 때까지 빈자리에 눌러앉았다. 나뭇가지 사이로 뜨거운 햇살이 강하게 쏘아붙인다. 아무 일 없으니 걱정 말고 일어나 빨리 가라는 뜻인가 하는 그때.


“아이고 덥다. 좀 쉬어가자.”

예쁘게 생긴 할머니가 장바구니를 끌고 땀을 흘리며 다가온다.

네~앉으세요. 장에 다녀오세요?

“ 예, 다음 주에 아들이 휴가라 집에 온다는데 먹을게 뭐 있어야지. 동네에서 사도 되는데 가격도 그렇고 싱싱한 것 사려고 큰 장에 갔다 옵니다."

힘든데 아들 올 때 사 오라고 부탁하지요.

"기차 타고 밤에 오니 안 돼요."

기차 타고 오면 그렇겠네요.

“혼자 있으니 밥도 해 먹기 귀찮아서 한번 할 때 많이 해놓고 몇 차례 먹고 하는데 아들네가 온다니 며칠째 장 보러 다니고 있어요. 아직 날짜가 있으니 또 한 번 더 갔다 와야지요. 더 쉬었다 갈랍니까? 아이고 또 가봐야겠다." 할머니는 명절보다 더 바쁘다며 잠시 쉬고 또 가야 한다며 일어선다.


같이 일어나 안녕히 가세요. 인사하고 점점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보며 엄마 마음은 다 저렇다. 내 입을 위해서는 안 하던 것도 자식에게는 하나라도 더 좋은 것 먹이고 싶은 엄마의 마음은 늙어 힘이 없어도 변함없다. 땀 흘리며 애써 준비하는 엄마 마음을 자식들이 세세하게 알기나 할까. 엄마는 엄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