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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국 Aug 23. 2024

법대는 아무나 가나

들어가긴 해도

어떨 결에 법학과를 지원했다. 꽃중년의 불꽃을 활활 태우기 위해 열공을 다짐하며 강의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 알뜰히 챙기는 자신이 기특하다. 삐걱 거리는 두뇌를 탓하며 방송강의를 들으며 의자 붙박이로 사느라 하루가 힘들다. 온몸이 의자모양으로 굳어져 엉거주춤한 자세로 따박따박 걸을 수가 없다.

새로운 학문을 알아간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마음은 즐겁고 정신은 반짝 생기가 돈다. 낯설고 두꺼운 헌법, 민법, 형법. 뚱뚱보 이 책들을 다 읽어야 한다니 얼마나 열심히 해야 책장 넘기기라도 다 할 수 있을까. 들고 보고 뒤집어 보고 굴려 봐도 아득하다.

저 산 너머 저 언덕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흰구름이 몽실몽실 피어 나는 어여쁜 날에도 눈앞에서 꼬물거리는 잔글씨들이 왕부담으로 다가온다. 하면 한다는 의욕과 처리능력은 하늘과 땅이다. 두뇌회전능력은 제자리 뛰기 새삼스럽게 법은 무슨 법이냐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고 죽을 맛이다.


시험을 앞둔 토요일 오후 울고 싶은 내 마음을 알아주기라도 하듯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어찌 알았을까. 대신 울어주는 하늘이 고맙다. 한바탕 비를 맞으며 실컷 울고 돌아오면 속이 후련할까. 울어도 울어도 빗물인지 눈물인지 열공에 지친 중년의 눈물인지 아무도 모를 거야. 신난다 나가자.


폭풍우 지난 후 마음을 가다듬고 오후 내내 책과 씨름하지만 마음 따로 몸 따로 열공의 길은 멀기만 하다. 공부도 다 때가 있는 법이다. 읽어도 외워도 머릿속을 돌고 돌아 솔솔 다 빠져나가는 새로운 단어와 문장들.


시험 치는 날도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첫 시간 헌법과 국어의 빽빽한 글자들을 쓰다듬으며 친해보려 애를 쓴다. 먼저 국어부터 달래 놓고 헌법에 힘을 쏟아 볼 생각이다. 최소한 과락은 면해야 하니까. 법 없어도 착하게 살면 되지 법이 무슨 상관이람 이렇게 생각하며 지금까지 잘 살았는데. 새삼스럽게 법학과는 왜? 이유야 어쨌거나 발을 들여놨으니 그래도 전공과목은 붙잡고 가야 하지 않을까. 헌법이 과락에서 간당간당 불안하다.


시간은 짧고 마음은 답답한 그 순간에 갑자기 드는 생각 하나. 열공하며 고시를 통과해야 하는 젊은 사람들 얼마나 긴장될까. 청춘을 걸고 달려온 길 목표달성을 해야 할 텐데 당황하면 아는 것도 못 풀 것 같다. 젊은이여 힘을 내라. 인생을 걸고 하는 도전도 아닌 시험이지만 이렇게 부담스러운데.


아들이 장에 간다고 아들 몰래 거름 지고 장에 가다 이 고생을 사서 한다. 아들이 뭘 하는지 궁금했을 뿐이다. 나중에 알게 된 아들은 허허 웃으며 "열심히 해보세요. 재미있을 거예요."뭐라도 도움 되라고 공부 방법을 가르쳐 준다. 하나하나 알아가는 재미도 있고 살아가는데 도움은 되겠지만 맛베기로 요만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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