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들리 수필
수험생의 대부분이 그렇듯, 나 또한 야간자율학습을 했다. 평소에는 보충 수업만 듣고서 곧장 하교했지만, 대입을 향한 막연한 부담감이 원체 심했던지라, 3학년이 되자마자 자의 반 타의 반의 심경으로 야자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내게 오랜 시간 공부를 지속할 집중력은 없었다. 며칠간 국어 문제집만 꾸역꾸역 풀 다, 얼마 지나지 않아 평소처럼 독서를 하기 시작했다. 국어와 영어 지문을 읽는 대신 나는 수필집을 읽었고, 좋아하던 소설가의 소설집을 챙겨 읽었다. 내가 지금 시간 낭비를 하고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한 달이 지났을 때쯤, 나는 석식을 먹기 전에 하교하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3학년 시절의 담임 선생님은 정말 좋으신 분이셨다. 다정하셨고, 세심하셨다. 남아서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핫도그를 사서 나눠주시기도 했고, 밤마다 자전거로 하교하는 내게 꼭 차조심해야 한다며 당부의 말씀을 건네시기도 했다. 삭막한 수험생의 시절을 지나오는 내가 거의 유일하게 느낄 수 있던 다정함이었다. 때문일까, 그분은 내가 유일하게 이따금 생각하는 선생님이 되셨다.
3학년 시절에는 자기 전마다 거의 매일같이 블로그에 글을 썼다. 졸음을 억지로 밀어내며, 새벽 공기와 함께 글을 썼다. 그 순간은 낮과 밤에 단체생활로 지쳐 있던 내가 유일하게 누릴 수 있던 온전한 개인 시간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그 시간만큼은 지키고 싶었다. 덕분에 나는 늘 수면 부족에 시달렸고, 틈틈이 선생님 몰래 자는 요령을 터득할 수 있었다. 좋은 거 배웠지. 그래도 후회하지 않는다. 당시에 쓴 문장들은 내가 지금까지도 글을 쓸 수 있게끔 만든 나의 뿌리가 되었으니.
당시에 쓴 글들을 다시 읽노라면, 몇몇 표현이 눈에 띄는데, 그중 하나가 '삭막한 일상'이다. 지금 생각해 봐도, 당시의 일상은 회색빛이었다. 같은 일과, 같은 공간, 같은 사람들, 매너리즘과 번아웃에 빠질 수밖에 없던 일상들이었다. 역시,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은 시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름의 추억이 쌓여있다. 나름의 성장이 있었고, 나름의 성취가 있었다. 돌아가고 싶지는 않지만, 겪어서 나쁠 건 없었다고 생각되는 순간들이다. 당시의 수많은 새벽 사이에서 쓴 글이 지금의 글이 되었다. 매일의 삭막함을 지나왔기에 웬만한 지루함은 견딜 수 있게 되었다. 역시 무의미한 삶의 순간 은 없는 것일까. 다시 겪고 싶지는 않지만, 적어도 후회하고 싶지는 않은 순간들이다. 그때의 친구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