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청자몽 Sep 23. 2024

로보트 태권 V, 모든 것의 시작

청자몽 연대기(7)

은하철도 999 작가님이 돌아가셨나 보다. '은하철도 999'라.. 아련하다. 그렇지 않아도 며칠 전에 '(미래형) 야쿠르트 여전사'에 나온 로보트를 보며, 내가 어쩌다가 '로보트'나 기계를 좋아하게 되었는지를 생각했다.

일곱 번째 이야기 :




그렇다. 기계 사랑의 시작은
바로 '로보트 태권 V'


몇 년 전에 그렸던 태권 V 머리(차마 '대..'로는 못 쓰겠다.) (이미지 출처 : 블로그 '청자몽의 하루' 화면 캡처) ⓒ청자몽


아직도 기억이 나는 어린 시절.
어느 날, 큰아버지 아들 다시 말해 집에 놀러 온 사촌오빠가 태권 V를 그려줬다. 얼굴만 그렸는지, 몸통까지 다 그렸는지 그것까진 생각나지 않지만... '머리'는 확실히 기억이 난다. 멋있다. 진짜 멋있었다. 그때 반한게 분명하다. 이후 태권 V 머리만 열심히 따라 그렸다. 질릴 때까지 계속 계속 그렸다. 손으로 그리고, 마음에도 새겼다. 그때부터였다. 로보트는 멋진 것이라고 생각한 게..

영화도 TV에서 봤던 것 같다. 주제가는 당연히 아직도 잘 안다. 언젠가 태권 V 주제가를 지금 7살 딸아이가 더 아기였을 때, 불러줬더니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냐고 물었다. 노래 리듬 자체가 요즘 노래가 아니다 보니 궁금했나 보다. 방에 있는 로보트가 나오는 영화 주제곡이라고 했다.

태권 V가 좋아서, 이후에 나오는 우뢰매나 비스므레한 건담 등도 같이 좋았다. 남동생이 사달라고 졸라 받아온 변신 로보트들을, 당연히 내가 변신시켜 줬다. 로보트도 기계도 좋았다. 언젠가는 저걸 조종하고 싶다. 멋지다. 보면 무슨 커다란 기계 같은 걸로 본부에서 조정을 했다. 그게 컴퓨터였나 보다. 컴퓨터라는 기계였나 보다.



1984년, 컴퓨터를 처음 만났다.
짝퉁 애플 2 컴퓨터


아버지가 컴퓨터를 사주셨다. 짝퉁 애플 2였다. 조립품이었다. 아버지는 우리가 20살쯤 되어 어른이 되면, 이건 필수품이 될 거라고 하셨다. 국민학교 5학년 때였다. 컴퓨터를 사면 한 달인가? 두 달인가? 공짜로 컴퓨터 학원을 갈 수 있다고 했다. 우리 집은 삼 남매인데.. 어쩌다가 내가 다녔다.

내가 학교 다닐 때는, 중학교 가서야 알파벳을 배우던 시절이다. 컴퓨터를 배울 때 영어 알파벳부터 배웠다.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선생님이 칠판에 써준걸 그대로 따라 쳤다. 나중에 알고 보니 GW-BASIC이라는 프로그래밍을 배운 거였다.

10 ....
20 ....

RUN

칠판에 있는 대로 따라 치고, RUN을 입력하면, 까만 화면에 그림이 그려졌다. 입력한 프로그램을 다시 보고 싶으면 LIST를 입력하면 됐다.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스펠링도 틀려서 실행이 안 되고 했는데.. 너무 신기했다.

그렇게 프로그램을 해보게 됐다. 덩달아 알파벳도 배우고 좋았다. 내가 어른이 되면 정말 필수품이 될까?


아버지는 앞을 내다보실 줄 알았던 거다. 아버지 말이 맞았다. 1992년에 학교 입학해서, 과제를 컴퓨터로 입력해서 출력해서 제출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필수품이 된 컴퓨터 세상을 보지 못하셨다. 1987년 3월에 돌아가셨다. 기계를 꼭 잘 만져야 한다는 말씀과 뜻을 남기고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여자와 남자를 구분하지 않으셨다. 기계도 다뤄야 하고, 전기도 만질 줄 알아야 한다고 하셨다. 퓨즈도 갈게 하고, 형광등도 갈아야 한다고 하셨다. 역시 앞을 볼 줄 아셨다. 나도 내 아이에게 미래를 살아갈 수 있게, 잘 지도해줘야 할 텐데.. 감사하며, 묵직한 책임감을 느낀다.



로보트 조정은 못했지만..
컴퓨터를 다뤘다.


태권브이 따라 그리기. 몸까진 따라 그리는 데 성공했다. 몇 년 전에 그린거지만..(이미지 출처 : 내 브런치앱 글 화면 캡처) ⓒ청자몽


로보트 조정은 당연히 못해봤다. 전사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니었다. 당장 체력도 꽝이었고. 20점만
점의 체력장 통과도 힘들었다. 100m 달리기는 20초나 걸려서, 체육선생님들이 모두들 싫어하셨다.

이과도 못 갔다. 선택의 여지없이 문과에 가야 했고, 사회나 국어 과목들 공부를 더 해야 했다. 다행히 수학은 덜 공부해도 됐다. 대학교 전공도 점수 맞춰가고.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학생이 됐다. 로보트는 나와 거리가 점점 더 멀어졌다.

하지만, 컴퓨터가 있었다.
그렇다. 정말로 컴퓨터의 세계가 기다리고 있었다. 로보트 덕분에, 기계도 컴퓨터도 나는 좋다. 안 무섭다. 원래 뭐든지 무서워하면 더 멀어지는 법이다.

그렇게, 태권 V를 보고 자란 아이는 컴퓨터가 싫지 않은 어른이 되었다.



원글 링크 :







저의 두 번째 이야기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