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청자몽 Sep 12. 2024

20년 동안 계속 반복됐던 악몽 (상)

딩동댕! 나의 실패이력서(3)

이상하게 반복됐던 꿈, 그것도 악몽이 있었다. 장장 20년 동안 같은 꿈이었다. 군대 다녀온 남자분들에게도 그런 게 있다고 들었다. 다시 군대 가는 꿈! 세상에나!!!



나에게는
'학력고사 마지막 수학 시험시간'이었다.


뾰족뾰족 가지에 가시가 있지만 예쁜 꽃을 피울 장미를 기대한다. ⓒ청자몽



참 이상했다.

좀 바뀔 때도 된 것 같은데, 매번 같은 꿈이었다. 한 번은 너무 이상해서 (꿈속에서) 손들고 감독관님께 질문을 했다. 저 이 시험친지 오래됐는데요. 왜 또 이걸 봐요? 그랬더니, 그냥 봐. 말이 많네. 하시며 면박을 주셨다. 울고 싶지만 꾹 참고 시험지를 봤다. 또 수학 문제다. 왜 또? 하필 꼭 같은 꿈이냐고.


이상해서, 주변에 물어보니 자기네들도 그런 꿈이 있다고 했다. 뭔데요? 그랬더니 군대 다시 끌려가는 꿈이란다. 제대했는데 또 끌려가. 진짜 미치죠. 군대를 왜 또 가요. 아.. 정말 싫겠다. 군대를 다시 어떻게 가요. 그렇죠. 근데 왜 싫은 꿈을 그것도 같은 꿈을 계속 꿨을까요?




후회가 많이 남아서 그랬나 보다.


실제로 학력고사 마지막 시간에 후회를 많이 했다. 좀 더 열심히 공부할걸.. 내가 왜 하고 싶은 공부만 하고, 하기 싫은 공부는 안 했을까 하고. 후회를 했다. 그리고 뒤늦은 후회는 대학을 들어가서도, 그리고 졸업해서도 내내 이어졌다.


점수 맞춰서 학교와 학과가 정해진채로 갔다. 반수를 염두에 두고 1학년 1학기를 붕 뜬 채로 다니다가 여름방학에 재수를 포기했다. 마음을 좀 붙여보자 했지만, 자괴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학과 공부에 흥미가 없었지만, 취직하려면 평균 학점은 나와야 한대서 억지로 공부했다.


일찌감치 취업을 생각하고 2학년 때부터 공무원시험 준비를 했다. 별로 하고 싶지 않았지만, 해야 하니까 억지로 했다. 시험에 도움이 될까 해서 컴퓨터 관련 자격증도 힘겹게 땄다. 전공과 관련 없는 자격증 공부는 정말 어려웠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고등학교 때라도 공부를 열심히 해서 더 좋은 대학에 갈걸.. 하며 후회를 했고, 그즈음에 이미 '학력고사 마지막 수학시험' 악몽을 꾸고 있었을 거다.


몸이 피곤하거나 마음이 힘들면 어김없이 그 꿈을 꿨다. 자격증은 1년 내내 떨어지다가 12월에 아슬아슬하게 붙었다. 3년 동안 3개를 그렇게 땄다. 그래도 따놓고 보니 뿌듯했다. 그게 그래도 1학년 2학기 때부터 2학년 1학기 때까지 1년 동안 학교 끝나고, 무리해 가면서 학교에서 1시간 거리에 있는 컴퓨터학원을 다니면서 공부 한 덕분이었다.


학교 끝나고 나도 놀고 싶은데 컴퓨터학원을 갔다. 지하철에서 학교 과제를 하고, 시험공부를 하면서 한숨을 쉬었다. 학원 끝나고 졸다가 내릴 역을 놓칠 뻔도 여러 번 했다. 뭐 한다고 이러고 있을까 하면서 또 그 생각을 했다. 이럴걸 중고등학교 때 이 정성으로 공부할걸. 그랬으면 더 좋은 대학 갔을 텐데...라고 생각하면 또 어김없이 그 꿈을 꿨다.




취직준비할 때도, 회사 다닐 때도 마찬가지였다.


학교 다니면서 3년간 준비한 모든 공무원시험과 공사 시험, 공기업 시험 모조리 다 떨어졌다. 학과장님께 잘 말씀드려서 어렵게 원서를 받아온 은행시험이며, 각종 회사 시험 등등 붙은 게 하나도 없었다. 창피하고 속상해서 대학졸업식도 못 갔다. 후배들한테 창피했고, 무엇보다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열심히 했는데 된 게 하나도 없었다. 역시 중고등학교 때를 원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니 또 그 악몽이지.


졸업하고 9개월 가까이를 공시생으로 살았다.

아무 소속 없이 노량진을 전전하는 삶이란... 당시 엄마한테 제일 아픈 손가락은 나였다. 나는 어디 가서 일이나 할 수 있을까? 자존감은 바닥이고, 멍하니 텅 빈 시간이었다. 존재 자체가 버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역시 프로그램을 배우는 교육센터에 가서 공부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들었다. 국문과 나왔는데요? 그래도 자격증 3개 있잖아. 가봐. 할 수 없이 지원을 했다.


우여곡절 끝에 프로그래밍을 공부하는 교육센터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마저도 2번은 떨어지고, 세 번째 교육센터에 겨우 들어갔다. 국문과 학생이라, 시작부터 무시당했다. 기본이 없을 거야.라는 기본을 깔고 말이다. 그런데 진짜 기본이 없었다. 자격증 3개는 달달 외워서 땄는데, 그건 그거고 이건 실전이었다. 아는 게 없으니 잘할 수가 없었다. 악몽은 계속 됐다.


교육센터 마치고 취업을 해야 하는데, 학교도 학교지만 당장 학과가 문제였다. 게다가 여자인 것도 문제가 됐다. 아무 데서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좋은 학교 나온 분들은 일찌감치 취업이 됐다. 하다못해 관련학과, 아니면 공대라도 나오신 분은 면접을 많이 갔다. 나는... 누가 면접 오라고 한 번만 불러주시면 소원이 없겠다 했다.


어렵게 들어간 첫 번째 회사에서 3개월째 월급 한 번을 받아보지 못하고 일하다가 그만뒀다. 도움말 만드는 아르바이트도 하고, 그래픽 학원이나 편집 학원 등을 기웃거리다가 한 번만 더 프로그램을 공부해 보겠다 하고 6개월 과정을 또 들어갔다. 이제는 좀 알겠다 하고 수료를 하는데, 이번에는 IMF가 터졌다. 취직은 정말 더 힘들었다. 어휴..

그렇게 어렵게 시작했다.


잊을만하면 악몽은 현실에서도, 꿈에서도 계속 됐다. 어렵사리 취직을 해도 힘들고, 막상 회사를 다녀도 힘들었다. 다니다가 이직을 하기도 어렵고 또 어려웠다. 그때마다 나는 원망했다. 옛날에 공부를 좀 더 잘할걸.. 그랬으면, 지금보다 나았을 텐데. 그래서인지 '학력고사 마지막 수학시험' 시간 꿈은 잊을만하면 꾸고, 또 잊을만하면 또 꿨다. 그래도 프로그래머로 일하게 됐다. 힘은 많이 들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경력 근육이 붙기 시작했다.




원글 링크 :







저의 첫 번째 이야기 :


저의 두 번째 이야기 :


이전 02화 실패담, 망한 이야기 : 버전 3 (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