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청자몽 Oct 17. 2024

근심 걱정이 있을 때는, 화분을 더 열심히 돌봐줘요.

베란다 대파 이야기(4)

연휴 끝나고 화분을 열심히 들여다보았다.  일이 태산인데  딴청이라니.. 시험 전날에 정작 시험공부 안 하고, 뜬금없이 서랍 정리하는 분이었다.



에이.. 설마, 또 파 이야기를?!!!


또 한다. 심한데.. 파가 워낙 쑥쑥 잘 자라다보니, 얘기 안할 수가 없다. ⓒ청자몽

내가 생각해도 심하다.

네 번째 파 이야기다. 양파도 아니고, 대파로 네 개나 글을 쓸 줄은 나도 몰랐지만.. 그래도 이렇게 잘 자라는데, 안 할 수가 없다. 길쭉한 흰 부분을 잘라낸 지 며칠 안 됐는데.. 벌써 싹이, 아니 파가 저렇게 많이 올라왔다.


파 자랑(?)을 다 하게 될 줄이야.

자랑이 아니고, 신기해서 찍고 쓴다. 쓰지 말고 잠을 자야지. 싶지만.. 잠이 오는데 참으면서 쓰고 있다. 쓸데없이, 그것도 대파 이야기를 말이다. 암만해도 내일은 연휴 때문에 미뤄둔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하느라 분주할 것 같다. 벌써 전화할 곳만 두세 군데나 있다.


고객센터에 전화할 일이 하나 있고, 상담받을 일이 두 개 있다. 한 개는 내일 전화하고, 나머지는 수요일로 미뤄야겠다. 아까 청소기도 살짝 오동작한 것 같아 그것도 손을 봐야 한다. 연휴 끝나면 해야지. 그러고 미뤄놓은 일들 처리하려면, 나도 바쁘지만 아마 다들 바쁜 통에 덩달아 정신없겠다. 고객센터 전화는 오래 걸리려나? 망가진 것도 빨리 와서 봐달라고 해야 하는데..


그런 건 내일 일이니 그냥 생각 접고 자자.

이러면서 잔뜩 딴청이다.





아까 낮에는 뜬금없이 화분갈이도 했다.


'호야'라고 하던데.. ⓒ청자몽

아까 낮에는 예정에도 없던 화분갈이도 했다.

급한 일도 아니었는데, 지금 왜? 분갈이를 하고 있지? 작아진 화분 테두리를 살살 꽃삽으로 파면서 나도 내가 한심했다. 그러게 분갈이를 왜 지금 하냐고? 나도 몰라. 그냥 자투리 시간에 해치우자.


열심히 분갈이를 하니까 남편이 쓱 내 눈치를 본다. 뭔가 낌새를 알아차렸을지도 모른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면서 봉지에 담아뒀던 여분 흙을 큰 화분에 채워줬다. 그러면서 역시 식물은 화분빨이지. 나지막하게 주절거렸다.


호야는 별로 티가 안 난다. 티를 안 낸다고 하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물이 부족한지, 잘 자라는지 어쩐지 알 수가 없다. 늘 비슷해 보였다. 보다 보니 화분이 작아 보여서, 그냥 그냥 화분을 갈아준 거다. 그뿐이다.




맞다. 약간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태


꼭 시험 전날 정작 공부 안 하고, 괜스레 잔뜩 딴청 피우는 느낌이다. 갑자기 책상 위 정리하고, 서랍정리도 하고. 내가 왜 이러지? 이러면서 다른 일에 몰두하는 모양새다.


자잘한, 처리할 일 말고.. 걱정거리가 생겼다. 내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문제. 해결한다고 해결이 되지는 않겠지만 더 이상 손 놓고 있으면 안 된다. 움직여야 하는 문제가 꽤 크게 다가왔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문제는 그야말로 방법이 없다. 그냥 둬야지. 할 수 없는 건데.. 속상하다가 말다가, 약간 포기했다가 억울했다가. 이해한다고 말하며 외면했다가를 반복하고 있다.


어제와 그제는 다 잊고 쿨쿨 자버렸다.

아니면 진짜 귀한 자투리 시간에 괜히 유튜브나 보면서 잠깐 아무 생각 안 하거나, 책 가져와서 눈으로 책 보며 머리로 또 그 생각이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잡생각이 넘쳐날 때는 화분 돌보기만 한 것이 없다. 내일은 물 부족한 친구들이 없는지 돌아봐야겠다. 초록이 위로가 된다. 베란다 다 없애지 말라고 하길 잘했다.


아휴. 내일 되게 정신없겠다.

긴 연휴가 끝나고, 월요일 같은 화요일이 될 것 같다. 기운 내야지. 잠으로 회피하는 건 비겁한 일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움직여야 하는 것만 먼저 생각해서 움직이자. 내가 할 수 없는 일, 이미 일어나서 돌이킬 수 없는 일은 더 이상 생각하지 말아야겠다.




열흘동안의 관찰기 ⓒ청자몽

약간의 심리적 불안상태를 스스로 돌보며, 또 쓰고 있다. 대파향 같은 매운 냄새를 솔솔 풍기면서... 아니다. 그래도 살자. 할 수 없다. 볕만 쪼여도 무럭무럭 잘 자라는 파나 티 안 내면서도 잘 자라는 식물이나 모두 참 잘 자라지 않나.

나도 잘할 수 있을 거야.




원글 링크 :





이전 03화 이런, 대파 같은 소리.. 를 쓰고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