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비게이션 탓에 이제는 길을 외우는 일이 없다고들 한다.
운전을 안 하는 내 입장에서는 사실 상당히 피상적인 말이다.
운전을 한다는 상상만 해도 머리가 복잡한데 거기에 내비게이션까지 봐야 한다니...
내비게이션을 보는 것보다 길을 외우는 편이 나은 거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지만 이것 또한 나에게는 피상이다. 운전을 하는 그날까지 아마 그럴 것이다.
내비게이션도 잘 운용하려면 우리는 정확한 위치를 입력해야 한다.
이 얼마나 당연한 말인가.
그런데 스토리를 만든다는, 운전 못지않게 복잡한 일을 하는데 우리는 정확한 위치를 입력하는 일을 소홀히 한다.
정확한 도착지점 입력이 안되어 있으니 가는 길이 정확지 않고
그래서 잘 안 풀리는 건 당연한 건데
이 첫 단추를 끼우는 일에는 정작 관심을 갖지 않으면서 길 위에 일단 올라타고 꼭 거기 가서 헤맨다.
운전하는 사람들이 보면 속이 터져나갈 일이다.
이모는 앞서 '작가 자신을 위한 트리프먼트'를 작업할 때 반드시 로그라인을 써놓고 시작하라고 말했다.
그러니 이제는 로그라인이 뭔지 알아봐야겠다.
이것은 스토리에서의 내비게이션이다.
궁극적으로 이 이야기가 나아가야 할 바를 정확히 정하고 가는 것이다.
그런데 좋은 로그라인, 작가에게 진짜 도움이 되는, 쓸모 있는 로그라인에는 몇 가지 필수 조건이 있다.
1) 주인공의 성질
2) 주인공의 욕망
3) 그 욕망을 실현하는데 방해가 되는 가장 시련
4) 장르적 톤 앤 매너
이 모든 것이 한 문장( 진짜 많이 양보해도 두 문장) 안에 들어가 있어야 한다.
복잡하고 긴 이정표가 헛갈리기만 하고 별도움이 안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아웃사이더 고딩 피터가
거미에게 물려 초능력을 갖게 되면서
사람들을 돕는 히어로가 되고 싶어 하는데
그 능력을 탐하는 리저드박사와 맞서 싸우며
진정한 히어로로 성장하는 이야기.
-영화 <스파이더맨> 로그라인-
1) 주인공의 성질
아웃사이더 고딩 피터가 거미에게 물려 초능력을 갖게 되면서 사람들을 돕는 히어로가 되고 싶어 하는데 그 능력을 탐하는 리저드박사와 맞서 싸우며 진정한 히어로로 성장하는 이야기.
- 여기서 중요한 것은 주인공 앞에 어떤 형용사를 쓸것이냐의 문제이다.
이 형용사 한 단어는 주인공에 대해 굉장히 많은 것을 시사한다.
여기서 '아웃사이더'라는 한 단어에는 주인공의 직업, 주변에 친구들과의 관계성, 현재 피터의 성격, 피터의 스타일링, 피터의 취미, 하물며 피터의 성적, 작가가 동원가능한 조력자까지 주인공에 대한 엄청난 정보가 숨겨져 있다.
그리고 주인공의 하마르티아를 엿볼 수도 있다.
실제로 이 스토리에서 피터는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몇가지 이유 중 하나로 독단적인 성격과 사랑받을 줄 모르는 상처를 드러낸다.
2) 주인공의 욕망
앗싸 고딩 피터가 거미에게 물려 초능력을 갖게 되면서 사람들을 돕는 히어로가 되고 싶어 하는데 그 능력을 탐하는 리저드박사와 맞서 싸우며 진정한 히어로로 성장하는 이야기.
- 아웃사이더인 주인공이 초능력을 갖게 되면서 그전에 없던 욕망을 품게 된다.
바로 스토리가 시작된 것이다.
처음 피터가 품은 히어로가 되고 싶다는 욕망은 아웃사이더라는 그의 성질과 부딪히며 인싸가 되고 싶다에 더 가까운 욕망이다. 하지만 그는 히어로가 되고 싶다는 1차 욕망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진정한 욕망을 깨닫게 된다. 진정한 의미의 히어로가 되고 싶다는 진짜 욕망, 더 큰 욕망, 궁극의 욕망을 품게 된 것이다.
3) 그 욕망을 실현하는데 방해가 되는 가장 큰 적
③앗싸 고딩 피터가 거미에게 물려 초능력을 갖게 되면서 사람들을 돕는 ②히어로가 되고 싶어 하는데 ①그 능력을 탐하는 리저드박사와 맞서 싸우며 진정한 히어로로 성장하는 이야기.
- 표면적으로는 히어로가 되고 싶다는 피터의 욕망에 가장 큰 시련은 리저드 박사로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한편으로 그에게 진정한 욕망을 품게 하는 계기도 제공하고 진짜 히어로의 의미를 깨닫게 하는 최고의 조력자이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가장 정확한 악역 포지션에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러면서 피터가 진정한 히어로가 되는 것을 방해하는 두 번째 시련은 스스로가 생각했던 인싸 히어로라는 허상이기도 하다. 그 허상과의 싸움에서 졌다면 진정한 욕망을 품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의 하마르티아 또한 그가 이겨내야 할 시련이다.
피터뿐만 아니라 모든 주인공들은 이전의 자기 자신을 뛰어넘어야 진정한 성장이 가능하다.
4) 장르적 톤 앤 매너
앗싸 고딩 피터가 거미에게 물려 초능력을 갖게 되면서 사람들을 돕는 히어로가 되고 싶어 하는데 그 능력을 탐하는 리저드박사와 맞서 싸우며 진정한 히어로로 성장하는 이야기.
- 거미에게 물려서 초능력이 생긴다? 그 능력을 탐하는 박사가 있다? 그와 맞서 싸운다?
이 정도만 봐도 이 영화는 sf의 액션 스토리로 하이틴 멜로까지 기대할 수 있는 이미 흥미롭기 그지없는 설정들이 다 보인다.
좋은 로그라인은 이런 것이다. 한 줄 안에 다 있다.
로그라인은 중요한데 비해 로그라인을 잘 정리하는 작가들은 드물다.
로그라인을 익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로그라인을 설명하는 다양한 작법서를 읽는 것이 아니다.
좋은 스토리들, 선명한 스토리들을 거꾸로 로그라인으로 정리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공부해서 쓰려고 하지 말고 써야 공부가 된다.
작가는 공부해서 되는 직업이 아니다.
써봐야 공부가 가능한 상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