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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꽃보다 좋은 제목.

by 영화하는 이모씨

정말 오래되어서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2007년 개봉작 중에 <두 얼굴의 여친>이라는 영화가 있다.

봉태규 정려원주연의 영화로

이중인격인 여친을 둔 남자친구로 살기 힘든 주인공의 이야기를 다룬 코미디 영화이다.


나는 우연한 계기로 2005년인가 2006년 이 언제쯤 이 시나리오를 읽었었다.

그 당시 제목은 <안녕 아니야!>였다.

나는 시나리오를 읽고 나서 좋은 제목이라고 생각했다

여자 주인공 이름이 '아니'였는데 그 아니의 이중성을 표현하는 제목으로,

안녕하다는 의미와 안녕하지 않다는 의미를 동시에 내포하기도 하고

안녕하기 힘든 여자주인공에게 인사를 건네는 것 같아

여러 가지가 동시에 함의된 멋진 제목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른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갔다가 <두 얼굴의 여친>의 팸플릿을 보고 그 시나리오의 제목이 바뀌어 개봉한 것을 알게 되었다. 여 주인공 이름은 여전히 '아니'인데 말이다.

그때 나는 광고를 업으로 하는 지인을 만나는 자리였는데 <두 얼굴의 여친>팸플릿을 들어 보이며 원래 제목이 훨씬 멋진데 왜 이렇게 후진 제목으로 바뀌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때 그 지인은 지금 제목이 훨씬 좋다고 말했다.

나는 정말로 몰라서 물었다.

"오에에 에?"


그러면서 지인은 상품을 광고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상품명은 상품 그대로를 직관적으로 떠오르게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상품의 이름만으로 그 상품의 쓰임, 특징, 자랑하고 싶은 것들이 드러날 수 있다면

정말 좋은 상품명이라고.

그러면서 <안녕 아니야>는 너무 어렵다는 것이다.

스토리를 모르는 사람은 '아니'가 주인공의 이름이라는 사실을 모르니

함의된 것이 매력적이라 한들 상품을 초이스 할때는 아무 힘이 없거니와

이 영화가 이렇게 복잡하게 생각할 영화가 아닌데 왜 두 번 세 번 비틀어 놓냐는 것이다.

그에 비해 <두 얼굴의 여친>은 훨씬 직관적으로 이 스토리가 어떤 것을 말하려고 하는지 단박에 알려주는 임팩트 있는 제목이라는 것이다.


그때 나는 그간 내가 생각했던 제목에 대한 생각을 정말 송두리째 고쳐먹게 되었다.

그 시작은 바로 영화가 상품이라는 태도였다.

그 당시까지만 해도 나는 상업영화감독을 꿈꾼다고 하면서도 영화를 상품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예술이고 감독의 작품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나 스스로 얼마나 기만적인지 깨달았다.

남의 돈으로 영화를 만들겠다면서 영화를 상품으로 생각한 적이 없다니!

순전히 사기꾼 심보다.

남의 돈으로 '상품'이 아닌 '작품'을 만들겠다니, 이건 내 영화에 투자하는 모든 투자자들을 나의 호구로 삼겠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스토리는 상품이다.

나는 스토리를 폄하려는 것이 아니다.

스토리는 관객에게, 독자에게, 수요자에게 닿아야 의미가 있다.

스토리는 태어나기를 작가 한 사람을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

그러니 제목은 상품으로써의 스토리자체를 가장 잘 드러낼 수 있고 자랑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바로 지금이 제목을 정하기 가장 적합한 때라고 소개하고 싶다.

이 스토리가 어떤 걸 말하는지 선명해진 지금,

바로 로그라인이 나온 지금, 말이다.

로그라인은 곧 스토리니까.


앞서 예로 활용한 영화 <스파이더맨>도 마찬가지다.

'.... 거미에 물려 초능력을 같게 된... ' 이 제목이 된 것이다.

그리고 전 세계 수천만의 관객은 이 영화가 가진 가장 매력적인 '서사의 묘사'인 거미의 특징을 가진 초능력을 기대하며 이 스토리에 돈을 지불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좋은 로그라인에는 좋은 제목이 숨겨져 있다.

로그라인이 이런 거다.

이렇게 중! 요! 한 것이다. 다 좋은 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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