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보면서 작업 중이라면
당신은 트리트먼트가 얼추 완성되었을 것이다.
그것은 3페이지 일수도 있고 30페이지일 수도 있다.
둘 다 맞다.
분량이 짧은 경우
서사로만 채워져서 짧다면 아주 훌륭하다.
다만 물리적인 스토리의 길이가 지나치게 짧은 것은 아닌지 경계해야 한다.
분량이 많은 경우
서사를 중심으로 반짝이는 묘사들이 적절히 녹아져 있다면 아주 훌륭하다.
다만 서사는 비어있는 채 묘사로 채워져 있는 것은 아닌지 경계해야 한다.
이제는 묘사를 할 차례이다.
묘사는 어떤 상태가 아니라 그 상태를 나타내는 방식이다.
1) 주인공이 가방에 있던 입사 원서를 모두 한강에 던졌다.
2) 주인공이 남자친구에게 선물 받은 반지를 팔았다.
3) 주인공이 가진돈을 모두 찾아 크루즈여행을 예약했다.
이 모든 것은 '주인공이 포기했다.'는 주인공의 상태를 표현하기 위한
다양한 방식의 묘사다.
묘사가 훌륭해야 하는 이유는 스토리입장에서 엄청나게 중요하다.
왜냐하면!
첫째, 독자든 관객이든 스토리를 소비하는 사람들이 즐기는 것은 결국, 묘사다.
이모는 앞서 '하늘아래 새로운 이야기는 없다'는 말에 동의한다고 했다.
여기서 '이야기'는 '서사'이기 때문에 사실 소비자입장에서는 '스토리=묘사'로 인식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원래 모든 상품은 생산자들 입장에서만 복잡하지 소비자에게 넘어간 순간,
그냥 그 상품만 존재하는 것이니 말이다.
예를 들어 로맨틱코미디 16부작 미니시리즈라고 하자.
1~2부에서는 남녀주인공의 현재 상황이 보여진다.
그러면서 둘은 아주 짧은 인연을 맺으며 서로에게 혐관에 포지션 한다.
2부 엔딩쯤에 가서 둘은 어쩔 수 없이 서로 계속 볼 수밖에 없는 관계 또는 상황에 놓인다.
그리고 둘은 썸을 타다가 8회 엔딩에서는 첫 키스를 한다.
9~10회에서는 꽁냥의 극치를 보여주고
11회쯤에서 시련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며 그 시련은 14회쯤 가서 정점을 다다른다.
그리고 15회에서 안 풀릴 것 같던 문제들이 휘몰아치듯 해결되고
16회에서는 두 주인공은 물론 그동안 나왔던 인물들이 서로서로 갑자기 짝짓기를 하며 멜로포텐을 터트린다.
모든 로코가 이 구성에 완벽하게 들어맞는다고 할 수는 없지만 사실 대부분 그 비슷한 방식으로 흘러간다.
하지만 사람들은 어느 누구도 똑같은 드라마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주인공이 서로 어쩔 수 없이 함께 하는 공간이 묘사되는데
레스토랑이 되기도 하고,
셰어하우스가 되기도 하고,
동아리가 되기도 하면서 소비자들은 완전히 다른 상품으로 인식한다.
그러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이 익숙한 서사의 흐름은
소비자들을 지루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편안하게 만든다.
예상에서 어지간히 벗어나지 않는 전개는 편안하게 소파에 누워 즐기기에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둘째, 묘사는 매체의 특성에 따라 변화무쌍하다.
당신이 쓰려고 하는 것이 소설인 경우와 대본인 경우는 극명하게 달라진다.
요즘은 소설가들도 영상세대답게 굉장히 비주얼라이징 되는 묘사를 하는데
사실 소설의 묘미 중 하나는 묘사의 크기를 작가스스로 얼마든지 조절할 수 있다.
어떠한 상황이나 상태의 인물의 심리를 원하는 페이지만큼 할애할 수 있다는 말이다.
실제로 독자가 인식하는 물리적 시간은 굉장히 짧더라도 작가는 인물의 심리상태를, 혹은 지금 주변상황을 설명하는데 구애를 받지 않을 수 있다.
그럼 독자들은 찰떡같이 알아채고 스스로 시간을 멈춰 작가가 제공하는 깊은 묘사를 즐거이 소비한다.
그런데 영상물을 위한 스토리에서는 조금 다르다.
그 묘사가 인물의 시간과 동일하게 흘러가야 한다.
묘사가 지나치게 늘어지면 그것은 고스란히 인물의 상태를 반영하며 관객들도 그만큼 늘어진다.
지나치게 늘어지거나 섬세한 묘사는 감정선을 놓치기 쉽다.
그렇다면 어떤 묘사가 좋은 묘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