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 과하고 싶다면 다른 걸 덜어내면 된다.
묘사에서 '적당히'라는 원칙을 지키라는 말은 모든 묘사를 어지간히 하라는 말이 절대 아니다.
하나의 묘사는 묘사자체로 완성이 아니다.
하나의 스토리 안에는 수많은 묘사들이 녹아져 있다.
그러므로 적당히 하기 위해서는 각각의 묘사가 적당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묘사와 묘사들이 모여 평균값을 맞추는 방법도 있다.
결정적 묘사가 돋보이기 위해서는 기꺼이 다소 평이한 묘사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스토리 안에서 모든 장면에, 모든 순간의 묘사들이 다 훌륭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모든 장면장면마다 힘을 주면 그 스토리는 너무 무거워지고 결국 수면아래로 가라앉아 소비자의 눈의 띄지 못한다. 마치 완벽한 스타일링을 마치고 외출직전, 하나의 액세서리를 덜어낼 줄 알아야 하는 것처럼 과한 것은 멋도, 맛도, 뭣도 없다.
성동일 선배는 인터뷰에서 한 작품을 연기할 때 모든 장면을 최고로 연기하면 안 된다고 했다.
딱 3반만 잘해야 한다고!
나는 이 말에 완벽히 동의한다.
연기뿐만이 아니고 스토리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3번 일지 4번 일지 그 물리적인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사실 3막 구조라는 틀 거리로 보면 스토리에서도 3번이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정말 중요한 지점, 가장 반짝여야 하는 묘사를 위해 평이한 묘사를 기꺼이 적어야 한다.
모 영화가 있다.
그 영화는 연기파 배우가 주연을 맡은 영화로 100억 규모의 대작이다.
하지만 그 영화는 결국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하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나는 이 영화의 제작이 확정되기도 전인 아주 초반에 이 시나리오를 읽었었다.
전체적인 얼개는 아직 다듬어야 했지만 주인공의 첫 등장만큼은 임팩트 있게 느껴 져서 기억에 남았다.
아니나 다를까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은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결국 수년 후 완성된 영화에서 그 장면은 생각처럼 임팩트 있게 그려지지 않았다.
내가 읽었던 그대로인데도 말이다.
물론 영화라는 매체가 연출력, 연기등의 영향을 많이 받으므로 그 스토리자체만 때어 논하기 아주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빛나는 장면이 퇴색된 이유는 분명히 있었다.
그것은 그 장면만큼 모든 장면을 고르게 훌륭하려고 했던데 기인한다.
사실 이렇게 손을 대기 시작하면 묘사자체만 바뀌는 것이 아니다.
전체적인 흐름도, 인물의 쓰임도 조금씩 달라지는데 그 장면이 좋다는 의견이 많으니 다른 걸 수정하면서도 그 장면은 정말 그대로 봉인해 놓았던 거다.
살이 찌거나 빠지면 같은 옷도 맵시가 달라진다. 그럼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
그것처럼 다른 곳이 달라지면 묘사도 달려져야 한다.
실제는 나는 내가 스스로 좋은 작가라고 느낄 때가 바로 '삭제'할 때다.
이대로는 빛이 나지만 큰 그림 안에서는 더 이상 필요 없다고 판단을 내리는 나를 만날 때,
나는 내가 존멋이라고 느낀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이 묘사는 내 머릿속을 부유하고 있다가 진짜 필요한 순간 튀어 올라올 거라고!
어떤 사진을 첨부할까 고민을 하다가 위에 사진을 골랐다.
저 의상은 실제로 상의를 작업하는데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았겠지만 저 의상에서 강조한 것이 상의인지 하의인지 헛갈린다. 그만큼 하의도 빛이 난다는 말이다.
묘사도 이런 것이다.
하나를 빛내기 위해서는 하나를 덜어낼 때 결국 둘 다 빛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