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대표의 좌충우돌 사업일기 - 1월 2일 목요일
2020년의 첫 출근이다. 기분 좋게 아침부터 목욕재계를 하고 에스프레소 머신에서 커피를 내려 향긋한 커피내음과 함께 아침에 배달된 신문 2종을(우와 좌의 신문을 하나씩 읽는다) 천천히 넘기며 최근의 이슈를 관심 있게 살펴본 뒤, 멋진 정장을 입고 출근을 하기는커녕 가까스로 일어나 머리만 감고 머리에서 나는 향긋한 샴푸내음과 함께 대충 옷을 챙겨 입은 다음 아침에 배달되어 현관 앞에서 고이 자고 있는 신문 2종을 거실에 던져 놓고 현관문을 나섰다. 인간은 관성의 동물이고, 잘 변하지 않으며, 어제나 오늘이나 똑같은 일상의 연속이다. 그래도 2020년의 첫 업무 시작이니 기분 좋게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순간 카톡이 왔다. Y이다. Y는 고등학교 때부터 인연이 되어 지금은 인생 가장 소중한 친구이자 우리 회사인 훈남하이 엔터테인먼트의 기획이사님이다. 무려 기.획.이.사. 직책은 높을수록 좋기에 우리는 짜고치는 고스톱으로 나는 대표 너는 이사를 하기로 했다. 실제 하는 일은 대표라기보다는 영업사원, 이사라기보다는 대리에 더 가깝지만 말이다.
2020년의 첫 날부터 지각이란다. 10시 출근인데 9시 48분에 연락이 왔다. ‘지금 깼어... 빨리 갈게... 미안.’ 그의 집은 김포, 거리를 생각해보면 대략 2시간 지각이다. 첫.날.부.터. 힘이 쫙 빠졌다. 사무실에 들어가기 싫어졌다. 스트레스가 생기면 난 카페로 간다. 책 한 권 들고 카페에 가서 책을 읽는다. 이는 내 인터뷰 기사에서도 밝힌 바 있다. 그렇게 행선지를 사무실이 아닌 카페로 바꿨다. 그 때 전화가 왔다. 구청이었다. 갑자기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같은 관공서라고 하더라도 경찰서에서 오는 전화랑 구청에서 오는 전화는 느낌이 다르다. 그렇다고 해서 경찰서에서 온 전화를 받아본 적이 있다는 건 아니다. 그냥 느낌이 다를 것 같다는 것이다. 구청에서 오는 전화가 일 전화 말고는 없지 않겠는가? 나는 일에 목말라하는 초보 대표이고, 요동치는 심장을 살짝 가라앉히며 전화를 받았다.
“훈남하이 엔터테인먼트 김원식 대표님이시죠? XX구청 문화관광과 XXX주무관입니다.” 예스. 유레카. 작년 Y와 A(우리 회사의 또다른 이사님이다. 역시 같은 고등학교 출신이고 이 분은 제작 이사이다. 물론 실제 하는 일은 제작 이사라기보다는 바이럴 마케터이다)와 함께 서울 모든 구청에 회사 소개서를 들고 찾아갔었다. 이를 우린 ‘씨 뿌리는 과정’이라고 명명했다. 그리고 단 한 곳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우리가 뿌린 씨가 다 썩은 줄 알았다. 그런데 그 씨가 생명력을 얻어 XX구에 뿌리를 내렸다는 전화 아닌가? Y의 카톡으로 첫날부터 맥빠졌던 시작이 다시 반등을 하기 시작했다.
전화내용을 정리하면 작년에 보내준 소개서랑 기획서가 너무 마음에 들었고, 이번에 좋은 기회로 같이 일을 해보고 싶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유선상으로 말고 만나서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구청에서 먼저 만남을 요청하다니. 초보 대표에게 아주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마다할 이유는 눈꼽만큼도 찾을 수 없었고, 당장 내일 들어가겠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렇게 새해 첫 업무 날부터 미팅이 잡혔다. 미팅을 한다고 해서 일이 무조건 성사되고 돈을 버는 건 아니지만 사업의 모든 수익 창출은 내부미팅이든 외부미팅이든 어쨌든 대부분 미팅에서 시작된다. 그 시작의 기회를 잡은 것이다. 카페로 가려는 발걸음을 부여잡고 다시 사무실로 발길을 돌렸다.
새 사무실로 이사를 했다. 이사라곤 하지만 같은 건물 6층에서 3층으로 옮긴 것이다. 원래 있던 사무실에서 옮길 생각은 없었지만 그 곳 사정으로 나가야 했고, 2달여의 시간 동안 부랴부랴 비슷한 조건의 사무실을 찾았는데, 등잔 밑이 어두웠다. 공유 오피스인데 개인 독립 공간은 조금 좁아졌지만 그 외 모든 게 전 사무실보다 훨씬 좋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여기로 올 걸. 하지만 공유 오피스는 역시 공유 오피스였고, 올 해 하반기에 아예 독립공간으로 나가는 걸 목표로 잡고 6개월 계약을 했다. 그리고 작년 회사의 마지막 콘서트를 끝낸 뒤 여유 있는 시간 동안 조금씩 짐을 옮겼다. 스트레스와 설렘이 공존한 마음을 갖고 새 사무실에 들어섰다. 우리를 반겨주는 건 사무실 이전 화환도, 개소식을 축하하러 온 손님들도 아닌 우리의 짐으로 가득 찬 상자들이었다. Y가 오기 전에 옮겨진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문득 서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 서러움도 사실은 내 마음에서 발현된 것이고, 모두 내 선택에서 시작된 것이기 때문에 서러움이 드는 것조차 어이없게 느껴졌지만 그래도 서러웠다. 6개월 뒤에 또 옮겨야 한다니. 언제쯤이면 안정된 공간에서 안정된 마음으로 사업을 할 수 있을까? 일을 하긴 해야 했기에 꾸역꾸역 짐을 정리했지만 스트레스와 설렘이 공존하는 마음에 서러움 한 스푼이 더 해졌더니 김국환의 타타타 가사처럼 ‘내가 나를 모르는’ 지경에 이르렀다.
Y가 왔다. 첫 날부터 화를 내고 싶진 않았다. 그도 충분히 미안해하고 있었다. 밥을 먹으러 가면서 기분전환 차 XX구청에서 전화 온 이야기를 했다. 스트레스와 설렘이 공존하는 마음에 억지로 설렘이라는 영양제를 투여하려 했다. 무엇보다 점심식사 후 좋아하는 회사 콘텐츠 민주주의의 김도연 대표가 오기로 했기 때문에, 그 전까지 평정심을 되찾아야 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평정심을 되찾았다. 물론 평정심을 돌아오게 만든 건 맛있는 점심식사에 대한 기대도 한 몫 했다.
김도연 대표가 왔다. 도연이와는 안 지 오래되진 않았지만 가치관이 잘 맞고, 또 동갑내기에, 신생 기업의 초보 대표라는 타이틀 덕분에 급속도로 친해졌다. 내가 술까지 좋아했다면 이 친구와는 매일 봤을지도 모른다. 이 친구는 말술이고 주당이다. 사무실 근처에 있는 부대찌개 집에 갔다. 뜨끈하고 얼큰한 부대찌개 국물 한 스푼에 평정심이 완전히 돌아왔다. 그리고 평정심에 맛있는 양념을 더한 건 그와의 대화였다. 역시 대표끼리는 통하는 게 있는 것인가? 직원에 대한 대처, 일의 방향성, 회사의 목표, 올 해 계획, 자금 문제 등 다양하고 전방위적인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어느새 부대찌개의 야채와 라면 사리가 눅진해졌고, 냄비에 눌러 붙었다. 특히 직원에 대한 이야기와 자금 이야기를 할 때는 마치 데칼코마니인 듯 했다. 나야 Y가 함께 있었으니 뒷담화는 아니었다. 자금 이야기를 할 때는 괜히 눈시울이 붉어졌다. 3년만 시장에서 망하지 않고 버티면 승산이 있다고 했던가? 슬슬 3년이 다 되어가는 두 회사의 초보 대표가 지난하고 버겁지만 끝끝내 버텨가며 2020년의 첫 날을 맞이했다는 것에 끈끈한 전우애마저 느껴졌다.
도연이와 나눈 이야기 중 마음에 깊게 박힌 대화가 있었다. 얼마 전 우리 회사로 영상 제작 의뢰가 들어왔다. 우리 회사야 영상 제작 전문 회사도 아니고, 또 영상 제작비용으로 들어온 돈은 사실상 말이 되지 않는 수준의 액수였다. 하지만 그 때 우리의 상황은 주어진 일을 닥치는 대로 해야 하는 겨울의 추운 상황이었고, 또 일 역시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라 우리 수준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정도의 일이었다. 수락했다. 아니,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영상을 잘 제작해서 보냈고, 반응이 좋았나보다. 똑같은 규모로 또 의뢰가 들어왔다. 우린 역시 수락했고, 최선을 다했다. 어느 정도 거래를 튼 기분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 또 영상 제작 의뢰가 들어왔다. 그런데 이게 웬걸? 일의 어려움은 크게 차이가 없는데 예산이 줄었다. 엄청난 고민이 들었다. 조금이라도 돈을 벌 수 있게 들어오는 일을 다 하는 게 맞을까? 아니면 속된 말로 ‘호구’잡히지 않기 위해 커트를 하는 게 맞을까? 하루의 숙고 끝에 스케줄을 핑계로 거절을 했다. 마음이 찝찝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데 괜히 거절한 건 아닌가라는 생각부터, 이제 더 이상 우리에게 일 의뢰가 들어오지 않으면 어떡하지 라는 걱정, 그냥 할 걸 그랬나 하는 후회 등등 얼마 안 되는 액수와 일에 마음이 시시각각 요동쳤다. 그 일을 도연이에게 이야기했다. 도연이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그런 경우에 그냥 그 돈 안 받고 공짜로 해줘. 물론 생색내면서. 그리고 일의 퀄리티는 그 액수보다 훨씬 비싼 예산에 맞춰서 해줘.” 그렇다. 일을 그 규모에 수락하느냐, 수락하지 않느냐만 답이 아니었다. 수락하면서도 호구잡히지 않는 방법이 존재했던 것이다. 그렇게 초보대표는 새해의 첫 업무 날부터 배웠다. 그래도 이런 배움에 쪽팔려하지 않고 고마워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어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