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성

초보 대표의 좌충우돌 사업일기 - 1월 3일 금요일

by 훈남하이 김대표

어제의 설레는 전화는 오늘의 떨리는 약속을 만들었다. 지난 해 무작정 우리를 알리기 위해 찾았던 곳에서 이제는 먼저 우리를 찾았고, 뭔지 모르겠지만 구청의 정문이 프랑스 파리의 개선문 같았고, 그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는 나는 개선장군 같았다. 물론 나만의 생각이다. 마음만 그랬을 뿐 실제로는 분명 잔뜩 움츠린 채 이 곳 저 곳 기웃기웃했을 것이고, 사람들은 당연히 좋게 봐줘도 민원인, 아니면 슈퍼 갑을 보러 온 찌질한 을처럼 봤을 게 자명하다.


1시간 반 정도의 생각보다 길었던 미팅이 끝났다. 그리고 XX구청은 우리에게 생각보다 큰 프로젝트를 의뢰했다. 그 프로젝트는 우리가 꿈꿨던 일이었다. 회사를 시작하고, 향후 몇 년 안에 꼭 했으면 좋겠다고 다짐했던 일의 화살표가 우리 앞에 멈춰 섰다. 물론 XX구청은 이 모든 게 중간에 엎어질 수도 있으니 양해해줄 수 있겠냐고 정중히 물어봤다. 다양한 정치논리가 움직이고, 그들 나름의 안전장치도 필요할 것이기에, 그리고 무엇보다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우린 그 모든 것도 다 양해할 수 있다고 웃으며 말했다.


설렘과 걱정이 동시에 휘몰아쳤다. 생각보다 이른 시기에 꿈꿨던 프로젝트를 할 수 있게 됐다는 것에 설레면서도 우리가 과연 이 과업을 문제없이 아니 훌륭하게 수행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에 혼란스러웠다. 이 일을 성공적으로 해내면 우리 회사는 기본 엔진을 amg로 바꾼 세단처럼 빠르게 치고 나갈 수 있을 게 자명한데, 우리의 깜냥에 대한 확신이 대표인 나조차도 오롯이 서지 않았나보다. 갓 운전면허를 따고 이태원 이슬람 사원이 있는 복잡하고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주행해야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난 초보여도 대표였고, 중심을 잡아야했다. 왜냐하면 Y가 더 흔들리고 있었기 때문에. 그 역시 생각하지 못했던 의뢰에 설렘과 걱정이 동시에 몰아닥쳤나보다. 말이 없어졌다. XX구청에서 나와 말없이 걸었다. 5분 여 뒤 그가 말했다. “아... 너무 걱정돼.” 순간 난 걱정의 티를 단 하나도 낼 수 없었다. 나까지 걱정을 내면 이 일을 놓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 아무 일도 안 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우리 지금까지 잘 해왔잖아. 할 수 있어.” 사실 할지 말지는 이미 결정된 상황이었다. 지금 필요한 건 걱정의 불씨를 잠재울 수 있는 소화기였다. 그의 등을 두드리며 우린 소화기를 준비하러 갔다. 무슨 소화기냐고? 원래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청소, 혹은 방 꾸미기가 특효라고 하지 않는가? 사무실 이사도 했으니 사무실에 필요한 이것저것을 사러 XX구청 인근에 있는 다이소로 향했다. 소화기도 빨간색이고, 다이소 로고도 빨간색이다.


역시 우린 단순한 동물이었다. 통장 잔고가 줄어들수록 순간 행복지수는 올라간다는 말처럼 우리의 걱정지수는 쭉쭉 떨어지고, ‘뭐 살까’라는 행복한 고민에 휩싸여 다이소를 이곳저곳 누볐다. 하지만 그 발걸음은 이내 느려지고, 이내 돌아갈 길 잃은 패전 장수처럼 오도가도 못 하게 됐다. 새 사무실 꾸미는 재미는 있는데 새 사무실이 너무 작았다. 우리가 생각한 것들은 구현해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사무실 크기였다. 공유오피스인데 이전 사무실보다 공용 공간 및 관리는 훨씬 좋아졌지만, 독립 공간은 조금 줄어들었다. 예전에도 작았는데 더 작아졌다. 연예 매니지먼트사의 상징인 사인 CD 진열과, 공연기획사의 상징인 공연 사인 포스터 전시는 꿈도 못 꿀 정도로 작은 사무실이었다. 그러면서 이용료는 더 비쌌다. 다시 우울해졌다. 역시 우린 단순한 동물이었다.


Y의 친구 중에 아버지 사업을 아버지와 함께 하고 있는, 그러니 앞으로 그 회사를 물려받아 대표가 될, 그래서 대표 마인드를 갖고 있는 K를 만났다. 예전에 몇 번 본 사이이기도 하고, 이사를 위해 손수레를 빌렸기 때문에 갖다 주러 간 겸 Y와 셋이 커피 한 잔하기로 했다. 역시 대표끼리는 통하는 게 있었다. 요새 부쩍 느끼는 생각인데 초보든 베테랑이든, 친분이 있든 처음 봤든 상관없이 한 위치에 있는 사람은 같은 위치에 있는 사람과 통하는 게 많다. 그래서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게 꽤 재밌고, 또 배우는 점도 많다. 원래 공통으로 아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 뒷담화를 대화주제로 삼는다고 했지만 난 뒷담화를 하지 않기 때문에 Y를 앞에 두고 앞담화를 했다. K도 함께 했다. K는 Y에게 내가 대표로서 느끼는 감정들을 차분하게 이야기해줬다. 고마웠다. 이미 모든 감정이 화학반응을 일으켜 어떤 이야기도 온전하게 전달되기 어려운 나와 Y의 관계에 때로는 외부의 시선이 고마울 때가 있다. 아, 이렇게 이야기한다고 해서 Y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건 아니다. 그는 내가 평생 데리고 가야할, 그리고 평생 고마워할 친구이다.


오후 4시가 넘어서 사무실에 복귀했다. 오자마자 다이소에서 산 몇 안 되는 소품들로 사무실을 꾸몄다. 사실 꾸몄다고도 말하기 애매한 게 이 사무실에는 책상에 서랍이 없어서 서랍 역할을 할 미니 서랍장을 몇 개 산 게 다다. 그래도 새 사무실이라 그런지 뭔가 모를 일할 맛이 샘솟았다. 일할 맛이라는 게 내가 요리사가 되어 만들어야 하는 맛인데 아직은 부족하여 주변의 상황에 그 맛이 계속 변한다. 그래도 오늘은 꽤 좋은 맛이 나는 게 나를 계속 사무실 의자에 앉게 만든다.


산적한 일을 하나 하나 밑줄 그어가며 처리해가던 찰나 오늘의 복병이 여기에 숨어 있었다. 훈남하이 4번 째 콘서트 – 올려면 오고 뮤지션 및 세션, 스태프 정산, 그리고 세금 납부가 다이어리에 흩날린 눈처럼 필기체로 박제되어 있었다. 계산해보니 거의 300만원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물론 어떤 회사에게는 푼돈이겠지만, 나에게는 그리고 우리 회사에게는 어마어마한 돈이었다. 사실 자본이 넉넉하지 않은 많은 회사에게, 그리고 그 회사의 대표가 나처럼 초보 딱지를 달고 있는 사람이라면 지출은 언제나 마음에 균열을 가져온다. 큰 지출을 할 때마다 ‘내가 회사를 하지 않았다면 이 돈으로 더 잘 살텐데’라는 생각이 밀려온다. 하지만 어떻게 하겠나? 난 선원 넷(직원과 뮤지션 포함)을 거느린 작은 배의 선장이었고, 그 배가 침몰되지 않게 강하게 마음을 먹고 움직여야 했다. 돈을 다 입금하고 혼자 말했다. 한 3,000만원은 쓰고 싶다. 세금이란 게 돈을 많이 벌 수록 많이 내는 것이고, 콘서트 규모도 클수록 돈 지출이 많은 것이니 ‘에라이 내년엔 더 내자’라는 마음으로 오늘의 마지막 복병을 가까스로 이겨냈다. 정산과 세금은 내기 전 액수를 보면 한숨이 푹푹 나오지만, 막상 정산을 하고 나면 마음이 편해진다. 어차피 해야 할 것이니까. 줄어든 통장 잔고가 또 다른 한숨을 자아내기 전에 서둘러 은행 어플을 종료한다.


새해 업무 이틀 만에 진이 다 빠졌다. 그래도 이틀 일하니 주말이다. 나야 뭐 늘 주말이 더 바쁜 사람이지만 그래도 주말이 주는 분위기는 꽤 괜찮다. 심지어 주말이라는 단어의 어감도 사랑스럽다. 지난 주 크리스마스에 이어 2주 연속 수요일에 쉬고 목금 일하고 주말을 맞이하는 사이클을 겪다보니 몸이 적응했나보다. 주4일제 근무를 시도하는 회사들이 조금씩 생겨난다고 하는데 참 매력적이다. 특히 수요일에 쉬는 주4일제는 ‘어제 쉬었으니까 오늘은 열심히’, 그리고 그 다음 날에는 ‘오늘만 일하면 내일 쉬니까’라는 마음이 적절하게 적용된다. 우리 회사에 적용해볼까 잠시 고민했지만 우린 지금 그럴 때가 아니라는 생각에 이내 접는다. 그래도 XX구청에 당당하게 입성했고, 복병들도 다 처리했으니 퇴근길이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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