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대표의 좌충우돌 사업일기 - 1월 6일 월요일
회사를 운영하다보면 직원과의 관계가 늘 고민이다. 그 직원이 친한 친구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사회에서 만난 사람이라면 매몰차게 사회의 흐름에 맡기면 되지만 우린 사회가 아니라 풋내가 나는 학교에서 만난 사이이고, 갖은 정이 다 든 사이라 Y에게 매몰차게 하는 건 참 쉽지 않은 일이다. 쓴 소리도 많이 하고, 대표로서 소위 ‘혼’을 내기도 하지만, 그럴 때 마다 내 혼이 나가는 기분이라 썩 좋진 않다. 어쨌든 친구랑 함께 회사를 키운다는 건 여러모로 쉽지 않은 일이다.
오늘도 Y는 지각을 했다. 새해의 다짐도 그에겐 헤어진 연인의 연애편지 속 사랑고백이었나 보다. 우리 회사가 스타트업이고, 직원도 본사무실엔 나와 그 뿐이라 편한 건 이해하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 올해 새해 다짐 중 하나가 욱하는 사람이 되지 말자 아닌가? Y가 오면 다시 한 번 좋게 넌지시 말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끓고 있는 마음 속 뚝배기에 불을 껐다.
오늘은 루네의 신곡 발표 전 최종 회의 날이다. 루네는 우리 회사의 뮤지션이다. 큰 회사는 아니지만 그래도 할 건 다 한다. 내일이 신곡인 눈꽃 발매 날이기 때문에 발매 후 홍보를 어떻게 할지, 추후 어떤 식으로 발전시킬지 등 다양한 고민을 Y와 A와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생각해보니 다소 회의가 늦은 감도 있다. 내일이 발매인데, 전 날 홍보 이야기를 하다니. 아직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은 좌충우돌 초보 회사의 티가 회사 아래 양꼬치집 앞에 나는 양꼬치향처럼 오늘도 팍팍 난다. 하지만 초보이든 베테랑이든 늘 잘 되는 게 목표이기 때문에 우린 최선을 다해 없는 머리 있는 머리를 짜냈고, 나름 트렌드를 고려해서 자화자찬으로 꽤 괜찮은 홍보 플랜을 만들어냈다. 물론 홍보 플랜은 비밀이다. 대외적으로는 영업비밀, 속으로는 그래야 있어 보이니까.
회사 이름으로 발매한 네 번째 곡이다. 어느 정도 적응이 될 법도 한데 여전히 발매 전 날에는 떨린다. 그 떨림의 근원지는 설렘이라는 호수와 걱정이라는 호수이다. 설렘의 호수에서 흘러내리는 물과 걱정의 호수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합쳐져서 내 몸은 요동친다. 잘 될 수 있을까? 투입된 자본은 뽑아야 한다는 냉정한 비즈니스적 마인드가 내 몸을 차갑게 얼리기도 하고, 이 곡이 잘 되어서 루네와 함께 전국 방방곡곡 행사를 다니는 생각이 내 몸을 뜨겁게 녹이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내 몸은 어떤 온도에 장단을 맞춰야 할지 몰라 이내 지쳤다. 그 지침을 깨우는 건 역시 카페인 뿐. 미팅 중간 중간 커피를 계속 마시며 내일 전국에 내렸으면 하는 눈꽃을 기대한다.
정신없이 업무를 마치고 나니 어느새 퇴근 시간을 훌쩍 넘겼다. 새해라 일이 잘 되는 건지, 할 줄 아는 게 없으니 열심히 라도 해야 된다 생각해서인지 시간이 겨울 낮처럼 빨리 지나갔다. 오늘은 XXXX재단 팀장과 친목도모(?)를 하는 날이다. 팀장님과는 작년부터 치맥도 간간히 할 정도로 조금 가까워졌다. 다 영업의 성과이다. 인맥 없고 재능 없는 초보 대표는 무식이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음을 작년에 체득했다. 그렇게 조금씩 중심으로 침투해 간다. 오늘의 친목도모는 장보기이다. 나는 코스트코 회원권이 있고, 팀장님은 코스트코에서 장을 봐야 한다. 친해지는 방법은 다양하다. 술만 있는 게 아니다. 나와 팀장님은 같이 장을 보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친분을 쌓아갔다.
중국에는 ‘꽌시’라는 게 있다고 한다. 관계라는 의미를 가진 꽌시는 부정적인 뉘앙스와 긍정적인 뉘앙스를 모두 가지고 있는데, 부정적인 것은 외부인들의 시각이며, 긍정적인 것은 내부인들의 시각인 경우가 많다. 자칫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중국의 꽌시는 꽌시를 맺은 사람에게는 영화 반지의 제왕 속 절대반지처럼, 혹은 영화 어벤저스 시리즈 속 타노스의 인피니티 스톤처럼 어마어마한 힘을 발휘한다. 그런데 그런 꽌시가 사실 한국에도 있다. 사업을 하다 보니 많이 느낀다. 비슷한 조건이면 이왕이면 아는 사람과, 친한 사람과 함께 하고 싶은 게 당연한 사람의 마음 아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XXXX재단 팀장님과 함께 간 코스트코는 친목의 장일 수밖에 없다.
차로 15분 거리의 코스트코로 함께 이동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우리 회사에 도움이 되는 이야기들이 차를 가득 채웠다. 코스트코에 도착해서 장을 보면서도 계속 이야기를 나눴다. 역시 많은 이야기들이 우리가 끌고 있는 카트를 가득 채웠다. 지속적인 관계를 맺는 것에 있어서 피로도를 느끼는 경우가 있고, 상처를 받을 때도 있다. 특히 그 관계가 우리에게 열매로 돌아오지 않을 때 마다 간혹 Y와 A는 관계 맺기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며 힘들어 한다. 그럴 때 마다 내가 Y나 A에게 늘 하는 말이 있다. “당장의 성과도 중요하지만 올 해만 사업하고 끝낼 게 아니라 우린 영원성을 추구하며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멀리 보자.”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XXXX재단 팀장님에게도 그 이야기를 했다. “김대표님. 잘하고 계시네요.” 계속해서 관계를 맺어가고 있는 나에게 참 든든한 말이었다. 차가운 공기가 일순 따뜻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