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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넬의 서재 Oct 27. 2024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꼬마 할머니

<어느 치매 노인의 일기> 2편

*<어느 치매 노인의 일기>는 90대 치매 할머니와 60대 딸, 20대 손녀가 함께 살며 겪는 따듯하고도 슬픈 이야기를 엮은 장편 소설입니다. 본 소설은 완결까지 탈고된 상태로 브런치 공모전 용도로 맛보기차 업로드합니다. 공모전이 끝나면 다시 처음부터 한 편씩 업로드될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도시 생활 10년 차, 둘째 딸 가족과 함께 살게 된 할머니는 동네의 은근한 유명 인사였다. 자꾸만 줄어드는 150cm도 안 되는 키에 하얀 숏컷을 한 할머니는 누가 봐도 반할 만큼 귀여웠다. 치아가 많이 빠져 삐죽 튀어나온 아랫입술과 멍때리고 있으면 언뜻 고릴라를 닮은 모습이 매력이었다. 덕분에 할머니는 누가 봐도 “실례지만 할머니 너무 귀여우세요” 소리가 절로 나왔다. 멍하니 앉아 있으면 흘기는 듯한 눈매가 방긋 웃을 때마다 땡그랗게 변했다. 


식성이 워낙 좋아서인지 자식들의 머리는 희어져 가는데, 할머니는 흰머리 틈으로 검은 머리가 쑥쑥 자랐다. 게다가 두 손은 평생 한 밭일로 울퉁불퉁할지언정, 딸들이 수시로 검버섯을 짜준 덕분에 얼굴도 희고 고았다. 정말로 할머니는 딸들도 부러워할 정도의 부들부들한 피부를 자랑했다. 


항상 밝은 색상의 옷을 입고, 지팡이를 짚고, 강아지와 사람만 보면 좋아서 “아하하” 웃는 할머니를 미워할 사람은 없었다. 동네 슈퍼 사장도 할머니를 보면 인사했고, 정육점 사장도 할머니를 보면 반갑게 아는 체했다. 젊었을 때 애교가 그렇게 많았다던 할머니의 모습 그대로 나이 든 것 같았다. 


할머니는 몇 개 남지 않은 자기 아랫니와 오른쪽 어금니로 반찬 투정 한 번 안 하고 매끼를 억척같이 챙겨먹었다. 밥 시간이 되면 귀신같이 알고 식탁에 와 슬쩍 앉았다. 밥뿐만 아니라 간식 배도 따로 있었다. 냉장고에는 항상 할머니를 위한 요구르트와 간식이 구비되어 있었다. 비록 치아는 다 썩어서 속이 비고 시커맸지만, 저렇게 잘 먹으니 건강하신 거라고 모두들 하나 같이 칭찬하곤 했다. 


할머니는 왕성한 식욕만큼 왕성한 배변 활동도 자랑했다. 변비로 고생하는 요즘 젊은이들을 비웃듯이 하루에도 두 번씩 아침저녁으로 똥을 왕창 싸고는 했다. 노인의 똥냄새가 어찌나 고약한지 한 번 똥 쌀 때마다 한겨울에도 온 집 안의 창문을 열어놓고 환기하기에 바빴다.


젊어서 할머니는 매일 아침 물 한 그릇을 떠놓고 부처님께 기도를 올렸다. 그래서인지 할머니의 귓불은 부처님 귀처럼 크고 두툼했다. 자기는 어떻게 되어도 괜찮으니 자나 깨나 자식들 잘되게 해달라 그 소원 하나만 매일 빌었다. 그 공덕인지 불행 중 다행으로 할머니는 치매도 예쁜 치매에 걸렸다. 비록 말은 잘 생각나지 않고, 자식들 얼굴을 한 번씩 못 알아볼망정, 병치레를 앓거나 벽에 똥칠하는 일은 없었다. 


이미 의사선생님도 놀랄 정도로 뇌진탕도 한 번 이겨낸 노인네에게 이 정도 치매는 애교 수준이었다. 가끔 치매 노인이라는게 믿기지 않을 만큼 정신이 너무 멀쩡하여, 할머니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할머니가 치매라는 걸 믿지 않았다. 


할머니는 젊은 시절 깔끔한 성격을 버리지 못해, 방바닥에 먼지 한 톨이라도 떨어져 있으면 손가락 끝으로 꾹 눌러줍기 바빴다. 다 먹은 밥그릇은 꼭 싱크대에 가져다 물을 담아 놓았다. 이불이 흐트러져 있으면 이불 모서리 맞추기를 잊지 않았다. 한 평생 성실히 살던 습관을 버리지 못해 집에 있으면 늘 걸레라도 쥐고 바닥을 닦기 바빴다. 


심지어 어쩌다 한 번씩 할머니를 보러 오는 다른 자식들이 멀쩡하신 분을 왜 자꾸 치매라고 하냐고 되레 꾸짖을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노인네가 얼마나 영악한지, 안 그럴 것 같으면서도 할 말 못할 말을 서슴없이 내뱉었다. “밥 달라”, “나가자”, “이것 좀 해봐라”, “춥다 문 닫아라” 등 노인네 특유의 권한으로 은근 사람을 부려먹곤 했다.


심지어 무언가 자기 마음에 안들면 그 귀여운 눈을 옆으로 흘기며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을 내뱉기도 하였다. 물론 그 귀여운 얼굴로 “좆같은 새끼”나 “옘병하고 있네” 같은 험악한 욕을 내뱉는건 알고 있는 사람만 아는 모습이었다. 이는 마치 7살 된 아이가 쌍욕을 하는 모습과 같아 막내 아들조차도 직접 들어보기 전까지 할머니가 찰지게 욕한다는 걸 믿지 않았다. 


할머니가 구사할 수 있는 문장은 대부분 “좋아좋아”, “놀고 있네”, “몰라”, “까꿍”, “잡숴”, “아이고 우리새끼”와 같은 감탄사에 가까운 단답형이었다. 그래서 할머니와 대화를 하는 것은 한국말을 어느 정도 알아듣는지 잘 가늠할 수 없는 한국어를 하는 외국인과 대화하는 것 같았다. 분명 말을 알아듣는 것 같은데, 언어 구사 능력이 떨어지니 뭘 알아들었는지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도 한 번씩 깜짝 놀랄 말을 해 가족들을 웃기거나 놀라게 하곤 하였다. 


한번은 할머니가 퇴근하고 간만에 놀러온 막내딸을 알아보지 못했다. 할머니는 식탁에 앉아 늦은 저녁을 먹는 막내딸을 한참을 바라보더니 그제서야 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내가 아까 우리 딸을 못 알아봤어”라며 미안해했다. 둘째딸이 막내딸에게 그간 못한 할머니 이야기를 하면 “뭐드게 그런 소리를 하냐”며 자기 흉보지 말란듯 점잖게 꾸짖었다.


그렇게 한평생 쌓았던 복으로 할머니는 늙어서도 자식들과 손자 손녀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지냈다. 6 25 전쟁 통에 정신대에 팔려갈까 얼굴도 모르는 서방에게 허겁지겁 시집 보내져 아이 여덟을 낳은 할머니였다.


하루아침에 남편이 된 사람은 다행히 과묵하고 삼국지를 좋아하던 점잖은 양반이었다. 늘 집 안에 금강경 낭독을 틀어놓고 불교 음악을 즐겨들었다. 동네 할머니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았던 할아버지는 그래도 할머니만 그렇게 아껴주었다. 자식들에게 자주 사랑의 매를 행사하던 할머니와 달리, 화내는 모습 한 번 보인 적 없던 할아버지였다. 짜리몽땅하고 은근히 성깔 있는 할머니와 훤칠하고 과묵한 할아버지는 그렇게 부부 금실이 좋았다. 


그래서 멀쩡하던 양반이 갑작스러운 사고로 돌아가셨을 때 할머니 상심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밤중에 자다가 집안 아궁이에서 새어나온 연탄 가스에 중독되어 돌아가신 것이었다. 치매에 걸려서도 할머니는 자식들이 “엄마 서방은 어딨어?” 하면 30년 전 먼저 하늘나라로 간 영감을 기억하고 “저기 먼저 올라갔어”라며 하늘을 가리켰다.


할머니는 아직도 갓난아기를 등에 업고 할아버지와 급히 피난길에 오르던 날을 기억했다. 한겨울에 다 떨어져가는 포대기를 매고 새하얀 눈밭을 헤쳐나갔다. 할머니는 갑자기 어디서 총알 하나가 날아와 고무신 앞 코를 뚫고 지나가던 느낌을 생생히 기억했다. 그때 등에 업고 뛰던 아가는 결국 피난길에 얼어 죽었다. 또 한 아이는 전쟁 중 열이 끓는데 병원에 데려가지를 못해 앓아죽었다. 그래도 여덟 명의 자식 중 먼저 간 두 놈을 빼고도 여섯이나 훌륭하게 성장했으니 할머니는 내심 만족해했다. 


나름 양반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할머니는 여자라고 초등학교 근처에도 가본적이 없었다. 머리가 총명했던 할머니가 글을 배워 어디 도망갈까 걱정한 부모님 탓이었다. 덕분에 할머니는 한평생 한글도 완전히 익히지 못했다. 손자 손녀들이 아직 한글을 익힐 나이에는 같이 어깨너머로 한글을 배우려고도 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한 번도 온전히 할머니만을 위한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그래도 총명한 끼를 숨기지 못하는 할머니를 보고 자식들은 할머니가 초등학교라도 나왔어야 했다고 안타까워했다. 


할머니에게 자식들, 특히 큰아들 얼굴을 보는 것보다 큰 기쁨은 없었다. 전쟁 통에 위로 두 아이를 잃고 장남이 된 큰아들이었다. 할머니는 옛날 사람답게 큰아들을 최고로 알았다. 치매가 들어서도 큰아들 전화가 오면 “우리 아들이냐~” 하며 화상 전화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래서일까, 무심할 만도 한 큰아들도 칠십 나이가 다 되어도 할머니를 보고 “엄마~ 엄마~” 하고 부르곤 했다. 


삼국지를 좋아하던 할아버지를 닮아 자식들도 머리가 비상했다. 그렇다고 자식들이 대성하거나 아주 부유한 건 아니었지만, 아들 셋, 딸 셋, 여섯 자식 모두 할머니를 아끼고 사랑했다. 한 번씩 사업이 망하거나 결혼이 망한 자식들도 있었으나, 결국 모두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안락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해외에 나가 얼굴을 못 본지 10년이 넘은 둘째 아들만 빼면, 이제는 모두 나이가 들어 그나마 한 땅덩어리 안에서 살아감에 감사했다. 적어도 이제는 마음만 먹으면 달려와 직접 자식들 얼굴들을 볼 수 있었다. 


할머니가 뇌진탕으로 쓰러진 뒤 함께 살게 된 둘째딸네도 마찬가지였다. 병원에서도 할머니의 상태에 대해서 더 악화되지 않게 약을 챙겨먹는 것 외에는 더 이상 치료할 게 없다는 말뿐이었다. 시골 생활을 청산하고 둘째 딸 가족과 함께 살며 그 집 사위도, 손자, 손녀도 할머니와 함께 사는 것에 대해 군소리 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이제는 여기가 엄마 집이야”하며 할머니의 두 손을 꽉 잡아주던 둘째 딸이었다. 


당연히 30 몇 평짜리 방 세 칸 아파트에서 다섯 식구가 함께 사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처음 할머니와 함께 살게 되었을 때, 아직 학생인 손자와 손녀, 그리고 사위까지 사는 집에서 할머니는 손님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둘째딸은 남편과 시댁의 눈치를 봐야 했고, 손자 손녀들도 공부할 시간을 쪼개 할머니 밥을 챙겨 줘야 했다. 


할아버지를 잃고 한평생 시골에서 작물을 키우며 동네 사람들과 나눠 먹는 재미로 살던 노인에게 갑작스러운 도시 생활은 감옥 생활이나 다름없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사위는 직장으로 인해 오랜 주말 부부였고, 손자 손녀들도 비교적 온순한 모범생이었다. 


그러나 “우리 새끼들이 할머니를 그렇게 이뻐해요”라며 할머니가 동네방네 자랑하던 손자 손녀들도 대한민국 학생답게 24시간 학교-학원 루팡을 돌기 바빴다. 할머니가 병원에서 퇴원했을 때만 해도 전업주부였던 둘째딸도, 할머니가 어느 정도 건강을 회복하자 할머니 옆에서 시중만 들기 갑갑하다며 근처 백화점에 매장 아르바이트를 하러 다니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대부분의 낮 시간을 아무도 없는 빈집에서 멀뚱히 TV만 틀어놓고 시간을 보냈다. 할머니의 시간은 아주 느리고 잔잔하게 흘렀다. 가끔 시간이 너무나 천천히 흘러 그대로 시간 속에 갇혀버리는 건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였다. 마치 어디로 흘러가야 할지 모르는 시간이 그 밀도가 짙어져 할머니를 그대로 질식시킬 것 같았다. 고인 시간에 잠식될 때마다 할머니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TV 소음을 배경 삼아 멈춰버린 시간과 갇혀버린 공간을 탈출하기 위해서라도 꿈속으로 빠져들었다. 


할머니도 한때는 나름 열정적으로 챙겨보던 연속극이 있었다. 할머니는 TV 앞에서 저놈이 써글놈이다, 저년이 망할 것이다 하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때로는 자신과 나이대가 비슷한 배우나 얼굴이 익은 연예인을 보면 반갑게 “아하하” 웃으며 화면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연속극 내용을 따라가기도 벅찼다. 그렇게 할머니에게 TV는 그저 적막함을 채우는 소음상자로 전락했다. 할머니는 그렇게 대부분의 낮시간을 잠이나 멍을 때리며 억지로 흘려보냈다.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둘째 딸, 손자, 손녀가 차례로 돌아와 네 식구가 되었다. 그러나 가족들은 모두 녹초가 되어 금방 잠을 자러 들어갔다. 할머니와 가족들 사이엔 딱히 이야깃거리도 없었고, 수다 떨 힘도 없었다. 더군다나 주말에는 사위까지 돌아와 집에서 아무도 어지간하면 한 발짝도 나가려고 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처음 몇 달 간은 할머니를 최대한 모시고 주말마다 여행을 다녔지만, 할머니 몸이 더이상 장거리 여행을 견디지 못한다는 걸 깨닫고 되도록 주말마다 할머니와 함께 집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항상 밖에서 살다시피한 할머니는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늘 예의 바르게 “미안해요”, “고마워요”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던 할머니도 너무 갑갑한 나머지 가족들에게 한번씩 토라져 “에이 써글놈들” 하며 신경질을 내고는 하였다. 


워낙 깔끔한 성격인 할머니는 쉴 새 없이 집안 바닥을 닦고, 설거지를 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그마저도 저지당하기 일쑤였다. “엄마,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거야” 라며 할머니가 정리한 걸 다시 정리하기 바쁜 둘째딸이 말린 탓이었다. 살면서 한 번도 게으르게 살아본 적이 없는 할머니는 몸이 근질근질했다. 한평생 농사일을 하고, 집안일을 하고, 마을 사람들을 챙기던 할머니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할머니는 처음에는 어떻게든 걸레를 빨고, 빨래를 너는 등 집안일을 도왔다. 그러나 결국 할머니가 가스불을 만지다 집에 화재가 날 뻔한 뒤로는 아예 부엌에 출입금지를 당했다. 자신의 정신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스스로 인정하게 된 할머니는 적지 않은 충격에 빠졌다. 그리고 할머니는 자기 때문에 가족들이 더 고생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점차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되었다. 



3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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