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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넬의 서재 Oct 27. 2024

할머니는 행복하고, 큰딸은 괴롭다.

<어느 치매 노인의 일기> 10편 

*<어느 치매 노인의 일기>는 90대 치매 할머니와 60대 딸, 20대 손녀가 함께 살며 겪는 따듯하고도 슬픈 이야기를 엮은 장편 소설입니다. 본 소설은 완결까지 탈고된 상태로 브런치 공모전 용도로 맛보기차 업로드합니다. 공모전이 끝나면 다시 처음부터 한 편씩 업로드될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러나 할머니만큼 즐거워하지 못한 사람이 있었다. 큰딸이었다. 누가 봐도 할머니 건강이 부쩍 좋아질 정도로 할머니를 챙겼지만, 큰딸도 나이가 예순이었다. 각종 수술과 류마티스 관절염까지 이겨낸 60살 딸내미가 90살 노모를 모시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실 큰딸에게 있어 운동은 취미가 아닌 생존이었다. 안 그래도 젊은 날 몸을 혹사해 여러 번 죽을 뻔한 고비를 넘긴 큰딸이었다. 그런데 매일같이 할머니를 산책시키다 보니, 그 느릿한 발걸음에 맞추느라 자신은 운동 부족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온종일 할머니와 놀아주고 둘째딸네로 돌려보내면 큰딸은 그제서야 밤늦은 시간에 혼자 동네를 더 돌았다. 


큰딸과 할머니는 한 지붕 아래 지내며 크고 작은 충돌도 겪었다. 화장실 변기 망가지니 똑바로 앉아라, 허리에 안 좋으니 다리 꼬지 말아라, 밥 마지막 한 숟가락 좀 남기지 마라, 지저분한 휴지 바지 주머니에 쑤셔 넣지 마라 등 예전에 할머니가 큰딸에게 그랬던 것처럼 이제는 큰딸이 할머니에게 끊임없이 잔소리했다. 


그럴 때마다 할머니는 “나한테만 지럴이여”하며 눈을 흘겼다. 그래도 잔소리가 멈추지 않으면 “에이, 못 살것니, 증말” 하고 도리어 화를 냈다. 그러면 큰딸은 또 “아, 왜 엄마가 짜증이야, 짜증은 내가 내야지!”라며 지지 않고 받아쳤다. 


행여나 안보는 사이 할머니가 사고칠까 큰딸은 늘 조마조마했다. 부엌에 있을 때도 할머니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할머니를 너무 자주 모셔와 남편의 눈치가 보이는 것도 어쩔 수가 없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할머니와 사위는 아직까지 쿵짝이 잘 맞았다. 남편도 치매 노인을 빈 집에 방치할 수 없으니 충분히 이해한다고 말했지만, 매번 퇴근하고 돌아와 장모님을 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매일 새벽 같이 출근하는 사람인데, 할머니가 자고 가는 날이면 새벽 내내 깨어 온가족이 덩달아 밤을 샜다. 할머니 때문에 늦잠이라도 자서 남편 아침도 못 챙겨주면 하루 온종일 마음이 무거웠다. 그제서야 큰딸은 둘째딸이 토로하던 고충을 하나 둘씩 마음으로 이해했다. 


게다가 매일 밤 꾸는 돌아가신 할아버지 꿈도 뒤숭숭했다. 이사 온 첫 날부터 큰딸은 생전 안 눌리던 가위가 눌리더니, 그 뒤로는 계속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함께 나오는 꿈을 꿨다. 꿈속에서 할머니는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얌전히 할아버지 옆에 앉아 있었다. 할아버지는 큰딸을 향해 당장 이 집에서 나가라며 살아생전 들어본 적 없는 호통을 쳤다. 간혹 할아버지 할머니 뒤로 자신이 사는 집이 와르르 무너지는 장면이 보이기도 했다. 


여기저기 물어본 결과, 돌아가신 분이 나오거나 집이 무너지는 꿈은 오히려 길몽 아니냐는 질문만 돌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딸은 반복되는 꿈에 무언가 찝찝함을 버릴 수가 없었다. 워낙 예지몽 같은 걸 잘 꾸는 큰딸이었지만, 문제는 꼭 사건이 발생한 후에야 꿈의 의미를 깨닫는 점이었다. 


다른 자식들은 뭘 그렇게까지 정성을 쏟냐고, 자칫 둘 다 쓰러진다고 큰딸을 말렸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온 가족을 책임지며 살아온 큰딸에게 할머니를 대충 돌본다는 건 성격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할머니를 끔찍이 아꼈다기보다 그냥 성격이 그랬다. 


장녀라고 할머니에게 제일 얻어맞고 산 큰딸이 할머니에게 각별히 잘해줄 이유는 없었다. 둘째딸이 유난이라고 생각했던 자신도 어느새 할머니에게 둘째딸 못지 않은 정성을 쏟고 있었다. 사서 고생한다는 말을 듣고도 점점 호전되는 할머니를 다시 혼자 둘 수가 없었다. 


신경이 예민해지고 삭신이 쑤셔도 할머니가 배고플까 봐 맛있는 음식을 잔뜩 했다. 할머니가 노인네 냄새날까 때수건으로 온몸을 박박 씻겼다. 할머니가 심심할까 하루도 빠짐없이 밖으로 산책을 데리고 나갔다. 


할머니와의 삶은 예전에 키우던 강아지 미미와 살던 걸 연상시켰다. 너무 자그만해 이불 속에 들어가 있으면 실수로 밟기라도 할까 걱정했던 강아지였다. 정말 실수로 밟기라도 하면 그 조그마한 몸에서 앙칼진 목소리로 캉캉 짖어댔다. 유기견이었던 미미를 키울 때만해도 큰딸은 돈을 우스울 정도로 잘 벌어, 같이 여행 다니지 않은 곳이 없었다. 데려올 때부터 몸이 많이 아팠던 미미가 죽었을 때는 몇 날 며칠을 울고 다시는 강아지를 키우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큰딸은 할머니가 아플까봐 조마조마했고, 배고플까 조마조마했으며, 답답해할까 또 조마조마했다. 할머니만 오면 어찌나 신경을 곤두세웠는지, 가끔은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단 생각도 했다. 아니면 한 번도 키워본 적 없는 자식을 키우는 것 같기도 했다. 팔자에 뒤늦게 자식이 하나 있다더니 그게 설마 할머니였나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큰딸은 형제복에 이어 다 늙은 큰 애기를 키워야 하는 자식복도 없는 팔자인가 하고 잠시 자괴감에 빠졌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둘째네보다도 큰딸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은 할머니였다. 그나마 남편이 할머니에게 워낙 잘해주고 자주 출장을 가는 덕에 가능한 일이었다. 할머니가 우울해하기도 하는 날에는 할머니가 제일 좋아하는 큰아들한테 전화를 걸어, 말도 잘 못하는 할머니와 통화시켰다. 모자 사이 할 말이 없으니 통화 내용이랄 것도 없었다. 그래도 큰아들이 “엄마, 밥 드셔야죠”, “엄마, 운동 하셔야죠”하면 찰떡같이 말을 듣는 할머니였다. 


자식들과의 전화 약효는 훌륭했다. 큰딸 덕분에 할머니와의 잦은 통화가 익숙하지 않던 자식들조차 할머니와 주기적인 전화를 해야만 했다. 큰아들이 바빠서 전화를 못 받으면 둘째아들, 둘째아들이 바쁘면 막내아들에게 전화를 했다. 집에 종종 놀러 오는 둘째딸과 막내딸도 예외는 아니었다. 대부분 전화 통화는 1분을 넘기지 못했지만 그 효과는 최소 한 시간은 보장되어 할머니는 싱글벙글 웃곤 했다. 


주말이면 큰딸은 고물차를 끌고 큰아들 별채에 할머니를 모시고 가기도 했다. 이제 큰아들 별채에 가면 함께 일하는 큰아들과 둘째아들을 쌍으로 볼 수 있는 덕이었다. 큰아들 별채인 한옥집에 할머니를 데려가면 할머니는 잔디 깔린 마당에 앉아 오고 가는 손님들을 구경했다. 처음엔 손님들 앞에서 데면데면하던 큰아들도 할머니가 오면 “엄마!”하고 반가워했다. 자주 얼굴을 본 만큼 자주 정이 든 덕분이었다. 


예전의 큰딸과 마찬가지로 그동안 엄마란 존재에 대해 깊게 생각해본 적 없던 큰아들에게 할머니의 존재는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할머니의 존재는 자기도 늙어가고, 할머니도 영원히 살지 않을 거란 당연한 사실을 상기시켜주었다. 


손님이 없는 주말에는 형제자매들이 큰아들 별채 앞마당에 모였다. 그곳에서 숯불 고기를 굽고 모닥불도 피웠다. 그저 달빛 아래 자식들이 모여 북적북적해 신난 할머니는 모닥불을 쑤시던 불꼬챙이를 들고 기뻐했다. 


치아가 없어 잘 씹지도 못하는 고기를 둘째아들이 잘게 잘라 할머니 입에 넣어주면 육즙이 다 빠지도록 한참을 씹어댔다.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은 밤하늘의 별과 경쟁하듯 작은 폭죽을 터뜨리며 타올랐다. 검게 그을린 연기는 모닥불 냄새를 피우며 할머니 옷깃에 스며들었다. 


다들 할머니가 건강해진 걸 감사해하면서도, 앞으로 이렇게 모일 날이 얼마나 될까 마음 속으로 같은 생각을 했다. 


자식들의 이런 저런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할머니는 그 사이에 쏙 껴앉아 “아, 좋다! 아직은 살만한 세상이야”하고 어린아이처럼 활짝 웃었다. 




브런치 공모전용 초초초 맛보기 완 - 

워낙 장편이라 공모전 후 다시 처음부터 완결까지 천천히 업로드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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