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하고 담백한 나의 열다섯 번째 독백
“엄마, 엄마가 만드는 식혜 레시피 좀 알려 줘.”
얼마 전 이번 소:담백 에피소드를 쓰기 위해 엄마에게 물었다.
“인터넷에 치면 다 나와. 나도 인터넷에서 찾아봐서 하는 거야.”
그렇다. 최고의 식혜 레시피는 멀리 있지 않다. 레시피를 찾다 이곳까지 흘러들어온 분들이 있다면 미리 사죄의 말을 건넨다.
(맛있는 식혜 레시피는 네이버 블로그, 유튜브를 참고해 주기 바란다. 여기에 적힌 글은 레시피보다는 식혜와 함께한 내 추억의 주절거림이니.)
명절을 앞두고 창고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대형밥솥과 커다란 스테인리스그릇, 그리고 고운망의 체를 밖으로 끄집어냈다.
할머니는 설날과 추석, 일 년에 두 번, 집에서 손수 식혜를 만들었다. 동네 마트에만 가도 대기업에서 잘 만든 식혜를 구매할 수 있는 시대였다. 하지만 그녀는 고작 페트병 두병 분량의 식혜를 얻기 위해 밤낮 고생을 마다하지 않았다.
식혜를 만들기 위해선 엿기름가루가 필요하다. 큰 대야에 엿기름가루를 넣고 적당량의 물을 부어준다. 엿기름가루가 자연스럽게 불어날 수 있도록 잠시 방치해 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엿기름가루가 잘 불어난 듯하면 쌀을 씻듯이 손으로 부드럽게 주물러 준다. 사골국 같기도 한 뽀얀 국물이 우러나온다. 잠시 뒤 엿기름가루를 건져 올려 양손으로 꾸욱 누르며 엑기스를 뽑아낸다.
나는 할머니의 조수로서 이 압축 과정을 담당했는데, 손이 빨개질 정도로 너무 힘을 준 탓인지 손가락 마디마디가 아파왔다. 이정면 됐겠지 싶어 할머니를 힐끔 쳐다보면, 할머니는 내가 짜낸 엿기름물을 체망에 한번 거른 뒤 엿기름가루 덩어리를 대야에 옮겨 담고 그 위에 물을 부었다.
맙소사. 다시 처음 단계로 돌아간 것이다.
한번 엑기스를 뽑아낸 탓인지 두 번째 압축과정은 그리 힘들지 않았다. 처음보다 맑아진 색상의 물이 열 손가락 사이를 타고 흘러내렸다. 식혜만들기에서 나의 역할은 여기까지였다. 이후 과정은 온전히 할머니의 몫이었다. 우리 집에서 제일 큰 밥솥에 찬밥을 넣고 우려 놓은 엿기름물을 들이붓는다. 밥솥의 보온기능으로 6시간을 설정한 뒤 잠이 든다.
동이 트기까지 아직 한창 남은 새벽녘, 할머니는 홀로 자리에서 일어나 밥솥 안을 살핀다. 밥알이 동동 떠오른 것을 확인하곤, 밥솥만큼 커다란 크기의 냄비에 식혜를 옮겨 담는다. 잠을 잊은 그녀는 가스불 위에서 팔팔 끓고 있는 식혜의 옆을 지키고 서선 버끔버끔 일어난 거품을 연신 걷어낸다.
마지막으로 설탕과 생강을 넣어주면 식혜 만들기의 대장정이 끝이 난다. 대낮부터 이어진 과정이 새벽에서야 끝이 난 것이다.
차게 식힌 뒤 페트병에 소분해 둔 할머니의 식혜는 명절 내내 나의 간식이 되었다. 수다를 떨다가 입이 심심하면 한 그릇, 잠들기 전에 입이 건조한 것 같으면 또 한 그릇. 식혜를 만들기까지의 과정이 오래 걸려도 식혜가 동 나는 것은 순간이었다. 명절이 끝나기도 전에 사라져 버린 식혜를 떠올리며 아쉬운 입맛만 다시던 그날.
사실 이번 에피소드는 너무나 쓰기 어려웠다. 식혜를 만들던 일이 너무 오래되어 과정이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네이버블로그와 유튜브를 번갈아가면서 얻은 레시피를 대충 적어야 하나 고민도 했다. 그러다 한 영상에서 기시감이 느껴졌다. 레시피를 확인하기 위해 영상을 두 번, 세 번 돌려보다 보니 그 옛날 나와 할머니의 모습이 점차 오버랩되는 것이다.
아 맞다, 이렇게 했었지.
아마 브런치를 쓰지 않았다면, 그리고 식혜 편을 구상하지 않았다면 켜켜이 쌓여가는 나의 기억 더미에 깔려 흔적조차 발견하지 못했을 나의 오랜 기억.
과거를 떠올리니 할머니가 만들어주신 식혜가 더욱 생각이 난다. 생강맛이 혀를 짧게 스치고 지나가면 달콤한 설탕맛이 얼른 뒤따라오던 할머니의 식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