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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담백 #가을 04 고사리 파스타

소소하고 담백한 나의 열네 번째 독백

by 버들 Mar 2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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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4. 고사리 파스타

브런치 글 이미지 1

추석 명절이 다가오면 엄마의 주방이 꽤나 부산스러워진다.


“이번 추석은 아무것도 안 할 거야.”


며칠 전까지 단호한 말투로 큰소리치던 엄마는 그 말이 무색하게 장을 거하게 보고 온 모양이다. 도라지와 고사리, 생선 그리고 각종 동그랑땡 재료들까지. 이건 손녀딸이 잘 먹어서, 이건 사위가 잘 먹어서, 그 이유도 다양하다.


명절 연휴 동안 주방에만 머물러야 하는 엄마의 고생이 싫어, 매 끼니 외식을 주장했지만 자식 사랑을 이길 수는 없는 모양이다.


정작 그네들이 부모님과 먹는 끼니는 많지 않다. 다 먹지 못한 음식들은 남은 식구들의 몫이다.


연휴의 마지막 날, 나 역시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한다. 차키를 챙기고 외투를 입자 엄마는 자리에서 일어나 고사리나물과 각종 반찬들을 반찬통에 덜어 내게 건넨다.


“반찬 안 싸줘도 돼. 집에서 밥 잘 안 먹어.”라며 손사래를 쳐도


”안 먹는 게 어딨어. 잘 챙겨 먹어야지. “

그녀는 기어코 반찬통이 담긴 에코백을 손에 쥐어준다.


기나긴 명절이 끝나면 다시 출근과 퇴근이 반복된다. 하루 종일 업무와 씨름하다 집에 돌아오면 손 하나 까딱하고 싶지 않다. 밥을 새로 짓는 것도, 배달어플을 켜고 주문버튼을 누르는 것도 귀찮을 만큼.


저녁식사는 건너뛸까 하다 문득 냉장고 속 고사리나물이 떠오른다. 냉장고에 둔다고 해도 나물 종류는 금방 상하기 때문에 서둘러 먹어야 했다. 엄마의 정성이 상해 가는 것을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으니.  


냉장고 속 반찬통들을 샅샅이 살펴본다. 고사리나물과 콩나물무침, 완숙으로 익힌 계란프라이를 넣고 비빔밥을 먹을까 하다, 이번엔 고사리나물을 넣어 파스타를 해보기로 한다.


고사리나물파스타를 만드는 것은 라면 끓이기 만큼 쉽다. 알리오올리오를 만들 때와 마찬가지로 올리브유에 편마늘을 튀기듯이 구워준 뒤, 삶아둔 파스타면을 넣고 볶아준다. 그리고 고사리나물을 넣고 가볍게 섞어 준다. 나물 자체에 간이 배어있기 때문에 액젓이나 소금 같은 다른 조미료는 필요 없었다.


그러다 매콤한 음식이 먹고 싶어  페퍼론치노를 적당히 부셔 넣어준다. 마지막으로 파스타면을 삶은 물을 약간 부어 졸여주다 보면 꾸덕한 질감이 만들어진다. 마무리로 그라인더로 치즈를 얇게 갈아 올려주면 짭짤하면서도 구수한 고사리나물파스타가 완성된다.


예쁜 용기에 옮겨닮은 파스타가 만족스러워 핸드폰 카메라에 담아본다. 포크에 파스타면과 고사리나물을 한꺼번에 돌려말아 한입에 넣으면 가을의 맛을 느낄 수 있다.


처음엔 나물과 파스타의 조합이 이질적이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하지만 비빔밥 대신 새롭게 도전한 메뉴는 생각보다 성공적이었다.


파스타면처럼 길쭉한 고사리나물은 입안에서 겉돌지 않고 면과 어우러졌으며, 오히려 기존 파스타와 다른 식감도 느낄 수 있었다. 나물이라면 쌀밥에만 어울릴 것이라는 편견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취나물을 넣은 파스타 또한 별미이다. 고사리나물파스타가 식감이 좋다면, 취나물파스타는 나물 특유의 향긋함이 그 특징이다. 이 글을 보고 있다면 한 번쯤 도전해 보기를 권한다.


나는 이젠 명절이 되면 으레 엄마의 고사리나물을 기다리게 된다. 더 이상 냉장고 속에서 나물이 상할까 걱정할 필요 없다. 고사리나물파스타라면 일주일 식단도 문제없기 때문이다.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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