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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담백 #가을 03 홍시

소소하고 담백한 나의 열세 번째 독백

by 버들 Mar 22.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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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3. 홍시


때는 바야흐로 10년 전.(정확한 시기가 생각이 나지 않아 계산을 하다보니 벌써 10년 전 일이라니 새삼 놀랍다) 서울의 5평 남짓 아주 작은 원룸에서 살 때의 일이다.


고향을 떠나 타지생활하는 자식들에게 제철 과일을 맛보이고 싶으셨던까. 택배를 보냈다는 아버지의 짤막한 통보 이후 원룸 앞에 커다란 대봉 한박스가 배송되었다.


박스를 열어보니 어림잡아도 서른개는 넘어 보이는 대봉감. 성질 급한 몇몇은 선홍빛을 뽐내며 곧이라도 흘러내릴 듯 말랑였으며, 달큰한 향을 뿜어냈다. 가장 숙성되어 보이는 녀석을 꺼내어 접시에 옮겨담았다. 홍시의 얇은 껍질을 조심스럽게 벗겨낸 뒤, 한스푼  크게 떠서 입안에 머금으니 아이스크림 못지 않는 달콤함이 밀려든다.


주황빛 달콤함에 기분이 좋아진 것도 잠시. 문제는 박스에서 꺼내달라고 아우성치는 대봉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자취생이라면 대부분 그렇듯 과일을 매일 챙겨먹기 힘들다. 특히나 손이 많이 가는 과일을 좋아하지 않는 나같은 사람이라면 더더욱.


대봉 한박스는 아침저녁으로 매일 두개씩 먹는다 해도 3주는 가볍게 넘길 양이었다. 그렇다고 부모님의 마음을 썩혀 버릴 순 없지 않은가.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일단 집에서 가장 서늘한 현관문 앞 선반위에 녀석들을 줄맞춰 정렬 시켰다. 상경하면서 푹 익어버린 아이들은 맨 앞줄에, 아직은 단단한 아이들은 맨 뒷줄로. 서로 붙지 않게 오와 열을 맞춰서 배열했다.


편의점 알바생 시절 배웠던 선입선출을 제대로 써먹는 듯해 왠지 모를 뿌듯함이 인다. 이 정도면 못해도 한달은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도 성급한 판단이었다. 겨울을 맞이하기 위함인지 갑작스레 쌀쌀해진 날씨에 보일러를 돌리다보니 실내가 따뜻해졌다. 철모르는 대봉들은 줄의 순서와 무관하게 앞다투어 숙성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선반 위에 홍시가 가득해졌다. 벌어지고 터지는 홍시에 내 멘탈까지 터지기 직전, 마지막 대책을 세워야했다.


푹 익은 홍시를 골라내어 껍질을 벗겨 속살을 발라낸 뒤 씨를 제거했다. 모아낸 속살은 넉넉한 크기의 플라스틱통에 나눠담았다. 익은 홍시 갯수가 많아 순식간에 통이 가득찼다. 홍시 살을 발라내느라 양 손은 엉망이 되었지만 홍시 폭탄은 막을 수 있었으니 다행이었다.


이렇게 손질한 홍시는 냉장고에 두고 요플레에 올려 먹었고, 일부는 냉동실에 얼린 뒤 틈틈이 우유나 요플레와 함께 믹서기에 갈아 먹었다. 유독 달달했던 홍시 덕분에 프랜차이즈 부럽지 않은 홍시스무디가 만들어졌다. 특히 홍시 스무디는 집을 방문하는 손님들에게 웰컴티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 해 가을, 아버지가 보내주신 대봉감으로 만든 디저트들 덕분에 몸과 마음 모두 풍요로웠다.


쌀쌀한 날씨에 수확한 대봉감은 겉이 단단하고 씁쓰름한 맛이 강하다. 물론 겉이 말랑하다고 해서 속까지 달디단 건 아니었다. 적당히 숙성되지 않은 이상 떫은 맛이 강하다. 이런 대봉감이 시간이 지날수록 겉이 부드러워지고 속살 가득 단맛이 차오른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나에게 엄하고 무서운, 크고 단단한 사람이었다. 아버지의 말 한마디가 유독 쓰게 느껴지는 때도 있었다. 그래서 유독 다가가기 어려웠던 사람이었다. 며칠 전, 갑작스럽게 회사 점심시간에 나를 찾아온 아버지와 점심을 먹었다. 밥을 먹으며 아버지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아버지는 예전보다 몸도 마음도 많이 유해진 듯 보였다. 아버지처럼 나도 세월이 흐르며 숙성되었기 때문이겠지.


시곗바늘이 1시에 가까워지자 앞으로는 자주 밥 먹자는 말과 함께 다시 사무실로 돌아왔다. 다음 식사시간에는 10여년 전 당신이 보냈던 대봉을 기억하냐고 물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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