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특별한 크리스마스
매년 12월 24일이 되면 나는 산타로 변신한다.
빨간색 산타복을 입고 다른 봉사자들과 어려운 가정 환경에서 자라는 어린이들 가정을 방문했다. 문 밖에서 아이 부모님께 도착했다는 전화를 드리고, 짜여진 시나리오에 따라 입장했다. 어린이들 앞에서 준비한 율동을 보여주고 마술을 하고 구연동화를 했다.
하이라이트는 바로 산타할아버지를 부르는 시간. 스타가 과거 인연이 있는 지인을 수소문해 찾는 ‘TV는 사랑을 싣고’의 한 장면 같은 장면이 연출된다. 목청껏 “산타할아버지!”라고 세 번째 부르는 타이밍에 문밖에 대기 중인 멤버가 등장한다.
산타할아버지가 등에 진 선물보따리에는 몇 주 전부터 봉사자들이 직접 구매해 포장까지 마친 선물이 담겨있다. 아이들은 대개 산타할아버지를 보고 ‘헤벌쭉’한 미소를 지으며 좋아했지만, 어떤 아이는 무서워서 엄마 뒤로 숨었고, 또 어떤 아이는 아예 무관심한 태도를 보여 우리를 당황시켰다.
그래도 우리가 떠날 때면 문 앞까지 내복에 맨발차림으로 나와 손을 흔들어주는 아이들의 모습에 매료돼 ‘산타 짓’을 6번(6년)이나 해왔다.
「올해 산타는 쉽니다.」
카톡 상태메시지에 이렇게 적었다. 지난해 산타 봉사 활동을 함께 한 동료들에게도 올해는 쉬겠다고 말했다.
갑자기 파업(?)을 선언한 가장 큰 이유는 가족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다. 봉사 활동을 할 때면 집중하느라 가족들은 어떻게 크리스마스이브를 보내고 있을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내가 이웃을 돌보는 동안 우리 가족들은 집에서 나 없이 저녁식사를 했을 터였다. 누군가에게 행복한 추억을 만들어주고는 뒤풀이까지 하고 들어오는 딸래미를 보며 부모님은 내심 서운하셨을 지도 모른다.
나에 대한 미안함도 있었다. 내가 좋아서 해온 봉사 활동이긴 했지만, 사전준비부터 당일 진행까지 많은 에너지를 쏟느라 정작 나를 챙기지 못했다. 생각해보면 크리스마스 무렵 늘 밖에서 시간을 보냈고, 피곤에 절어 귀가했다.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가족들과 그동안 못 다한 이야기도 나누고 마음 편히 푹 쉬어본 적이 없었다.
올해만큼은 이웃을 위한 산타가 아닌, 나와 가족을 위한 산타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크리스마스가 되기 약 2주 전부터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태어나 처음으로 크리스마스트리를 꾸며보기로 했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집에 크리스마스트리가 있었다는데, 몇 번의 이사를 거치면서 사라졌다. 비대면 추세인 점을 고려해 온라인몰에서 크리스마스트리 세트를 질렀다.
집에 배송된 조립 키트는 예상보다 단순했다. 트리 두 덩이, 트리에 걸 장식품이 전부였다. 트리 두 덩이를 연결한 다음, 차렷자세를 하고 있는 나뭇가지들을 쫙 펴줬다. 공, 별, 선물 모양의 장식품들을 트리에 무작위로 걸고 맨 마지막으로 전구를 두른 다음, 스위치를 켰다.
제법 머릿속 이미지의 크리스마스 트리와 비슷했다. 나와 함께 트리를 만드신 엄마는 제법 설레하는 눈치였다. 엄마는 휴대폰으로 인증 사진을 찍고, 이리저리 둘러보시며 트리를 놓는 방향을 꼼꼼히 확인하셨다. 매일 밤 크리스마스 트리의 불이 환히 켜졌다.
왜 진작 이런 선물을 하지 못했을까, 하고 후회스런 마음이 들었다.
내가 준비한 프로젝트는 이게 다가 아니었다. 24일 저녁, 방에 꽁꽁 숨겨둔 비장의 카드를 꺼냈다. 그것은 바로 빨간색 선물 주머니!
그 안에는 지난해에 봉사를 할 때 받은 내 산타복이 들어있었다. 빨간색 바지, 빨간색 상의, 벨트, 산타모자, 흰 수염 풀 세트다.
옷이 딱 한 벌인지라 엄마와 아빠에게 차례로 옷을 입혀드리고 기념 사진을 찍어드렸다. 처음엔 안하겠다고 손사래를 치던 두 분은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 산타에 몰입하셨다.
거울 앞에서 한참을 단장하시는 모습에 뭉클한 마음이 들었다. 아마 태어나 처음 입어본 산타복일 것이다. 부모님과 시간을 보내는 것에 소홀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산타 봉사 활동을 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접 꾸민 크리스마스트리앞에서 하하호호 웃는 것만으로도, 소소한 이벤트에 즐거워하시는 부모님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힐링이 됐다.
일년 중 하루쯤은 부모님의 산타가 되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