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이 먹고 싶다

하고 싶은 게 많아서 좋다

by 아임유어엠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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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이 먹고 싶다.


드라마 <학교 2012>에서 남순이와 흥수가 수업시간에 지금 당장 하고 싶은 것에 대해 적은 것이다. 과거 폭력 사건으로 멀어진 후 으르렁대던 둘은 분식집에서 라면을 함께 먹으면서 화해의 물꼬를 튼다.


나도 라면이 먹고 싶다. 하교 후 외할머니댁에 가면 이모가 끓여주던, 계란을 잔뜩 풀어넣은 불은 라면이 먹고 싶다. 내가 현관옆 작은 방에서 홀로 TV를 보고 있으면 이모는 동그란 상을 들고 들어오셨다. 그리곤 황금색 양은 냄비에 끓인 라면을 후후 불어 고급진 옥색 밥그릇에 덜어주셨다.


유치원생일때부터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엄마가 나를 외할머니 댁에 맡기시는 바람에 오후는 늘 외할머니 댁에서 보냈다. 어린 조카가 엄마없이 홀로 보내는 시간이 심심할까봐 주신 게 라면이었다.


지금은 볼 수 없는 맛이라는 걸 그때는 미처 몰랐다. 조금 더 커서 추억을 소환할 겸 이모께 라면을 끓여달라 부탁했는데, 신기하게도 내가 기억하는 맛이 안 났다. 이후에도 아무리 비싼 라면을 먹어도 어린 시절 이모가 끓여주신 라면 맛을 구현해내지는 못했다.


한 달 휴가도 가고 싶다. 아~~ 생각만 해도 좋다. 물론 회사에 한 달 휴가를 쓰겠다고 하면 안녕히 나가시라고 하겠지만. 일이 없는 시간이 주어진다면, 제주도 게스트하우스에서 숙박을 하면서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귤을 따서 주스도 만들어 먹고, 플리마켓 행사도 열어보고, 한라산 등산도 도전하고 싶다.


거기서 지내며 보고 듣는 이야기를 기록하고, 책으로 엮어 알리고도 싶다. 예쁜 옷 입고 사진도 많이 찍고, 아침 일찍 산책 나가서 차 마시면서 해 뜨는 것도 보고, 기회가 된다면 해변가 드라이브도 해 봐야지. 참, 그러려면 운전 연습을 해야한다.


피아노도 시작하고 싶다. 여유가 나서 강남역 영풍문고에 들렀는데, 책들 사이에 전시돼 있는 우쿠렐레에 마음을 빼앗겼다. 피아노 연주 교재를 산 후 영수증을 응모하면 딱 1명에게만 우쿠렐레를 준단다. 피아노 교재를 살까 하는 충동이 일었지만 행운은 쉽게 오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꾹 참았다.


5~6살쯤 우리 집에 피아노가 생겼다. 사촌 언니오빠들에게 물려받아 연주 교재도 꽤 있었다. 그런데 피아노 앞에만 앉으면 나는 울었다. 엄마가 피아노를 가르쳐주셨는데, 그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것 같다. 잘 치고 싶다는 욕심 보다는 ‘엄마가 시킨 걸 해내자’라는 책임감에 피아노를 쳤다. 자유롭지 못했던 게 아쉽다.


교복도 입고 싶다. 학교 다닐 땐 교복 입는 게 좋은 건지 실감을 못했다. 여름엔 땀이 차서 답답했고 겨울엔 춥다고 징징댔다. 어른들이 내가 티셔츠 한 장만 입어도 “예쁘다” 하시는 이유를 몰랐다. 지금 이럴 때가 제일 좋은 거라고 하는 말도 그저 인사치레로 들렸다.


실패 마저도 아름답게 느껴지는 젊음의 시절. 뭐든 시작이었던 그때로 돌아가 치열하게 고민하고 솔직한 감정으로 살고 싶다. 어른들이 만들어둔 틀에 갇히지 않고, 야간자율학습도 하지 않고, 봉사활동도 해보고 수업 땡땡이도 쳐보고, 본능에 이끌리는대로!


생각해보니 하고 싶은 게 이렇게나 많잖아?


꿈이 많아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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