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비의 기쁨
좋아하는 계절을 꼽으라면 아마 봄과 가을이 단연 으뜸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겨울이 좋다.
어떤 작가는 겨울을 참 좋아한다고 고백했다. 겨울을 그렇게나 좋아하는 이유는 100가지 정도 되는데 그 100가지가 모두 ‘눈’ 때문이라고 했다. 그 말을 여러 번 읽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눈이 내리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면 나 또한 하얗게 물들 것만 같다. 눈이 오면 온통 덧칠만 해댄 무채색의 그림에 하얀색을 더하는 것 같다. 우중충한 하늘과 대비해 더 밝게 느껴지고 추웠던 날씨에 대비해 더 따뜻하게 느껴진다. 또 추운 곳에 있다가 비로소 따뜻한 곳에 다다랐을 때 몸이 녹는 느낌과 반대로 온기가 고여 있던 공간에서 나와 상쾌하게 찬바람을 맞을 때의 기분이 좋다.
겨울은 색색의 다른 계절보다 흑백 사진처럼 단조로운 명암 같이 느껴지지만 그래서 더 세세한 빛과 그림자를 보게 된다. 그리고 그 밝음과 어두움의 조화를 다시 한번 관찰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한 꺼풀의 명암을 또 배운다. 해를 거듭할수록 그 겹이 촘촘히 쌓이는 것을 느끼며 어른이 된다.
눈 외에도 겨울을 좋아하는 이유는 ‘입김’이다. 생명으로 가득한 다른 계절과 다르게 겨울에는 대부분의 생명이 숨을 죽이고 겨울을 난다. 마치 큰 불행이 나에게 찾아오지 않기를 바라는 것처럼 고개를 푹 숙인 듯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하지만 그 와중에 그 차가운 공기 속에서 입김을 통해 나는 나의 숨을 본다. 내가 숨을 쉴 때마다 그 온기로 만들어지는 입김은 마치 눈처럼 하얗다. 그때 비로소 내가 살아 있음을 느낀다. 모든 생명이 숨을 죽이던 그때에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가장 살아 있음을 느낀다.
나는 겨울의 그 대비들이 좋다. 빛과 어둠, 생과 사, 온기와 냉기. 그 대비를 넘나들며 다시 생으로 가득 찬 날들을 대비한다.
삶은 너무 다른 것들 사이에서 내가 나로서 온전히 살아가는 일.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게 흔들거리며 나의 중심을 찾는, 그런 겨울이 나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