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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현 Oct 13. 2022

제 4화_콩피와 수비드Confit & Sous-vide

주방에서 일하는 것과 회사에서 일하는 것 무엇이 더 힘들까?

콩피와 수비드의 차이 (Confit & Sous-vide)



콩피와 수비드는 재료의 맛과 식감을 더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 저온에서 요리하는 방법이다.


주방에서 일을 시작해보니 상상하고 기대했던 현실을 직접 마주한 기분이었다. 


요리사에 대한 인식과, 매우 열악한 환경, 뜨거운 불 앞에서 매일 보내야 하는 힘든 직업이란 생각에 우려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론 드디어 주방에서 일을 하는구나 하는 설레는 감정도 느낄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과연 주방에서의 현실과 회사에서의 현실이 어떻게 다른지 궁금할 것이다. 두 가지 모두 다 체험해본 사람으로서 어떻게 다른지 이제는 분명히 보인다.



회사에서의 삶은 끝없이 계속 이어지는 업무에, 제때 처리하지 못하면 늘어나는 업무량부터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주를 이루었다. 퇴근 후 집에 와서 혹시나 무언가 빠뜨린 건 아닌가 하는 불안감과, 아침마다 가득 차있는 메일함. 


타 부서 혹은 상사의 재촉 이메일은 기분 좋은 하루의 찌푸린 얼굴로 시작하게 만들어준다. 


좋진 않지만 업무를 위해 나도 누군가를 재촉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기도 하고, 가끔 울화통이 터지는 일이 생기기도 하며, 매번 똑같은 실수를 계속 만드는 빌런은 주변에 꼭 한 명씩 존재했다.





회사에서 일을 할 때면, 하루 종일 컴퓨터를 쳐다보느라 눈이 아프기도 하고, 의자에 잘못 앉아 하루 종일 일 할 때면 허리 통증과, 목 통증 추가적으로 손목까지 아프기도 하다.


그러나 일이 마무리가 잘 되고 야근까지 해서 마감이 완벽하게 문제없이 끝나면 성취감도 느꼈지만, 어두운 바깥 하늘을 보며 스스로가 짠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것 말고도 더 디테일하게 쓸 말이 많지만 전반적으로 내가 회사 생활을 하며 느꼈던 점들이다.




주방에서는 회사와 달리 육체적 노동이 주를 이룬다. 항상 칼을 만지는 직업이다 보니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을 경우 실수로 큰 부상을 초래할 수가 있어 항상 신경을 써야 한다. 


오븐에서 막 꺼낸 프라이팬의 손잡이는 매우 뜨겁고, 업장에서 사용하는 핸드믹서는 살삭력이 엄청나기에 순간의 실수로 큰 사고가 발생할 수가 있다.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주문이 밀릴 때 발생한다. 


주문이 겹쳐서 여러 음식을 동시에 만들어야 할 때엔, 각 음식에 들어가는 구성요소들을 전부 알고 있어야 하며, 재료 별 조리 시간과 순서에 맞춰 모든 것이 동시 다발적으로 마무리가 되어야 한다.


이 순간에는 육체와 정신적 스트레스가 동반되며 심지어 화장실 갈 시간도 없다. 


서비스는 보통 한 타임에 3시간 정도 진행되며, 이 3시간은 말 그대로 전쟁터 같은 분위기이다. 


심지어 바쁜 와중에 음식에 대한 컴플레인이나 특별 오더가 들어오면 정신이 혼미해질 수도 있다. 



정말 비슷한 예시로, 햄버거 만드는 게임을 해보면, 주문받으면서 햄버거 패티와 양상추 빵을 구워야 하는데 난이도를 매우 높게 올려놓고 플레이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참고로 일시정지는 사용 불가)


주방에서의 장점은 서비스 시간을 제외하고 식재료 준비할 때, 많은 생각 없이 단순 노동을 할 때 정신적 스트레스가 크지 않다는 점이다. 


그리고 업무가 끝나고 나서는 가끔 다음날 재료 주문을 잘했는지 안 했는지에 대한 불안감은 존재하지만, 회사에서 받았던 스트레스에 비해서는 현저히 적은 편이었다.


다만 주방에서 아쉬운 점은, 주말에 일을 해야 하는 것과, 점심 혹은 저녁 시간에 일을 해야 하는 부분이 일반적으로 근무하는 직장인과 비교하면 큰 단점 중 하나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호주 주방에서 셰프로 요리를 하면서, 크게 불만은 없고, 요리사로서 요리에 대한 지식이 넓어지고 무언가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에 행복을 느끼고 있다. 


신선한 재료들을 이것저것 만지고 다듬으면서 돈까지 받으니 조금 행복하다. 주방과 회사는 콩피와 수비드 같다. 


콩피는 기름 사용하고, 수비드는 물을 사용하기에 큰 차이점이 있지만 결국 고기는 익는 것처럼 회사 던 주방이던 남의 돈을 버는 것은 똑같이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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