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준현 Oct 14. 2022

제 5화_에멀젼 (Emulsion)

주방에서 일어난 불화

에멀젼 (Emulsion)


사람은 누구에게나 자신과 맞는 사람 그리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존재한다. 요리에서 에멀전은 섞이지 않는 두 가지, 예를 들면 물과 기름 두 가지를 섞는 기법을 의미한다. 



물 같은 나와 기름 같은 너, 서로 밀어내고 섞이지 않는 우리를 한 공간에서는 어떻게 에멀전을 해야 할까?



이전 직장보다 좋은 조건으로 호주 호텔 주방으로 옮겨 일 한지 몇 개월이 흘렀다. 들어오는 주문을 혼자서도 무리 없이 해내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렇게 잘해 나아가고 있는 도중 나와 쉽게 섞이기 힘든 사람이 들어오게 되었다.



사람에게 선과 악이 존재하기도 하지만, 선과 악이 없이 다름으로써 안 맞는 사람도 존재한다. 그런 사람과 단 둘이 일 하는 것은 서로에게 시너지가 없고 스트레스만 주며, 업무의 효율까지 저하시키게 된다. 



새로 들어온 동료는 나보다 높은 직급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들어온지 얼마 안 됐기에, 메뉴에 대한 설명과 만드는 방법 등등은 업무를 하며 알려주었다. 


그러나 불화는 얼마 가지 않아 시작되었다. 새로 온 동료를 쉽게 부르기 위해 ‘A’라고 칭하겠다. A는 여기에서 일하기 전 경력이 2년 정도 있는 사람이었다. 


내가 헤드 셰프에게 배운 방식으로 요리하는 것과 A가 요리하는 방식엔 차이점이 많이 있었다. 


A에게 헤드 셰프는 이렇게 요리하지 않았다고 말을 해도, 본인이 배웠던 이전 식당에서의 경험이 맞는 거라며 계속 고집을 부렸고, 나보다 높은 직급이기에 더 말하지는 않았다.


어느 날 헤드 셰프님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이 주방에선 무조건 수직적인 구조이기 때문에 A가 말하는 게 무조건 맞는 것이고, A가 시키는 대로 따라야 하는 것이 내가 해야 하는 것이라고 신신당부했고 나의 태도에 주의를 주었다. 


물론 군대 생활을 해보았기에 수직적인 구조가 어떤지 충분히 느껴보고 이해하고 있었고, 수직적 구조에서 선임은 일어나는 일에 모든 책임을 지기 때문에 헤드 셰프의 지시를 따르기로 했다.


나는 솔직히 업무적으로 마찰이 생겨도 감정적으로 대처하는 성격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업무는 업무에서 끝내야지 업무를 감정적으로 대처하는 것 자체를 많이 싫어한다. 


나는 A의 업무 스타일이 투박하고 맞지 않지만 이해하고 맞춰주기 위해 개인적으로 노력을 했다. 헤드 셰프와 A의 요리 방식은 많이 달랐고, A는 헤드 셰프의 요리 방식을 따라가지 않았다. 


그것 보다도 업무적인 것 이외에 말도 안 되는 것에 딴지를 걸고, 신경질을 내기도 하고, 업무와 관련 없는 내용으로 시비걸며 나에 대한 컴플레인을 지속적으로 헤드 셰프에게 하는 것이 썩 내키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헤드 셰프도 A를 편애하는 것 같아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A는 지각이 잦은 편이었다. 하루는 아예 잊고 출근을 하지 않은 적도 있고, 나와 같이 근무할 때면 2번에 1번은 무조건 지각을 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나는 헤드 셰프가 1시간 늦게 나오라고 하여, 1시간 늦게 나간 적이 있고, A는 헤드 셰프에게 아무런 공지를 받지 못한 적이 있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10분 일찍 출근했지만, A는 시작부터 화가 잔뜩 난 채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하루 종일 나에게 날 선 채로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주문이 들어왔고, 밀려들어오는 주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A가 갑자기 급발진을 하며 나에게 소리치며 화를 냈다


넌 오늘 일찍 오지도 않고 1시간이나 늦게 왔으면서 반성하는 기미도 안 보이냐”라고 소리쳤고 어이없었던 나는 자초지종 설명했다. 


그러더니 매일 지각하는 A가 나에게 time management에 대해 강조하며 요리할 때도 우선순위도 모르고 time management를 할 줄도 모른다며 화를 냈다. 


A가 우선순위를 모른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본인이 음식 만드는 순서와 헤드 셰프가 만드는 순서가 달라서, 내가 헤드 셰프 방식으로 가끔 만들 때가 있는데, 그럴 땐 본인 순서에 맞지 않다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물론 time management 가지고 트집 잡는 건 그냥 자기 기분 나빠서 풀려는 건 알고 있었다.




어느 매우 바쁜 날 아침에 주방에 와보니 주방이 난장판이었던 적이 있었다. 




싱크대에 설거지도 안 되어있는 접시가 쌓여있고, 정말 말 그대로 개판이었고, 오늘 쓸 재료들도 준비가 덜 된 상황이었다. 


A가 이렇게 만들고 퇴근했기에 화가 좀 많이 났지만, 어쩔 수 없이 헤드 셰프님에게 보고했고 며칠이 지나서 헤드 셰프님에게 자기에게 전화로 동료 뒷담 하지 말라며 주의를 받았다.




알리오 올리오를 만들 때, 물과 기름의 에멀젼이 굉장히 중요하다. 


에멀전이 잘 되기 위한 매개체로 파스타의 전분이 들어가고 에멀전이 잘 된 알리오 올리오는 느끼하지 않고 수분이 넘쳐난다. 이렇듯 물 같은 나와 기름 같은 A 사이에선 섞이기 위한 매개체는 없었고 결국 그 끝은 마르고 기름진 파스타만이 남게 되었다.






사진 출처 : https://pixabay.com/

이전 04화 제 4화_콩피와 수비드Confit & Sous-vide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