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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현 Oct 15. 2022

제 6화_베이스팅 (Basting)

처음으로 도전해본 호주 요리 대회

베이스팅 (Basting)


누구에게나 한 번쯤 멈추고 싶은 순간이 온다. 


나에게도 그런 순간이 찾아왔다. 


팬 위에 쉬고 있는 스테이크에게 뜨거운 버터를 끼얹어 식는 것과 마르는 것을 방지하듯 나에게도 버터가 필요한 순간이 왔다. 


반복되는 일상에 나는 식어가는 고기가 되었고, 나에게 끼얹을 뜨거운 버터 같은 동기부여 혹은 성취감이 필요했다. 


그리고 나는 주저 없이 요리 대회를 신청했다.



내가 여기서 요리를 하고 있는 이유도 아마 주저 없이 시작하고 보는 성격도 한몫하는 것 같다.



호주에서 요리 대회의 준비 기간은 2주였고, 재료는 닭고기와 생선을 이용한 메인디쉬 2개를 각 2인분으로 만들어야 했다.


나는 한식과 퓨전을 접목하여 파인 다이닝 스타일의 삼계탕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그리고 수많은 고민과 연구 끝에 레시피를 완성시켰다.


파인 다이닝 스타일의 삼계탕, 음식의 이름은 ‘치킹’이었다. 설명을 조금 덧붙여 삼과 각종 한방재료가 들어간 귀한 음식으로서 궁에서 왕도 먹었고, 건강에 초점이 맞춰졌기에 이걸 만들면 이기겠다 싶었다.


삼계탕 육수와 한방 재료를 푹 끓여 만든 국에, 버터와 밀가루로 루를 만들고 육수의 향을 추가하였고, 색을 입히기 위해 크림을 더 넣어주었다. 


고기는 누구나 사랑하는 닭다리를 이용하여 참기름과 함께 마무리하고, 사이드 가니쉬로, 새콤한 무 피클, 당근 퓌레, 구운 버섯과 튀일로 장식을 했다.


치킹


생선으로 만든 음식은, 생선 콘소메와 무 퓌레, 두부, 넙치를 이용한 음식이었다. 이름은 ‘넙치의 연못’. 담백한 넙치의 흰 살과 새콤한 무 퓌레, 묵직한 생선 콘소메에 식감을 살려줄 두부의 조합. 사실 말은 그럴싸해도 무언가 특별히 대단한 것은 없었지만, 단순히 한 번 시도해보고 싶었다.



넙치의 연못


대회 당일 날, 너무 욕심을 낸 게 아닌가 싶은 걱정이 있었다. 가니쉬 음식을 너무 많이 골라서 과연 이 것을 내가 해낼 수 있을까 싶었지만 대회 시작 후 시간에 쫓기듯 서둘러 재료를 손질했고 다행히 가니쉬도 모두 만들었다.


처음 참가해본 호주 요리 대회라 많은 것들이 부족했다. 우왕좌왕하며 음식을 준비했고, 옆에서 여러 질문을 하는 심사위원들은 난이도를 더 올려주었다.


결과는 비참했다. 준비했던 만큼의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아쉽게도 우승하지도 못했다. 어차피 첫 도전이었기에,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아쉬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피드백을 받으며 깨달은 점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 심사위원으로 온 셰프들이 바라보는 기준이 다르다는 점이었다. 


나는 삼계탕 다릴 살을 찢어 참기름과 소금 간으로 버무려 플레이팅을 했지만, 서양사람들 기준에서 찢어진 닭은 별로였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소스 또한 인삼과 각종 한방 향이 별로인 것 같았다. 


아마도 처음 맡아보는 향에 호불호가 심했던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소스의 플레이팅이 예쁘지 못한 점도 한몫한 것 같다.


생선요리는 퓌레에서 무언가 텁텁한 맛이 낫다고 했는데, 사실 원인은 잘 모르겠다.


요리 대회를 통해 요리에 집중하고 최선을 다해서 너무 즐거웠고, 다양한 피드백을 통해 내가 만든 요리의 여러 문제점들을 파악할 수 있어 너무 좋았다. 


비록 우승은 하지 못했지만, 이렇게 2주간 열심히 준비했던 대회는 잘 마무리가 되었고, 지루하던 내 일상에 뿌린 뜨거운 버터는 식어가던 열정에 다시 한번 심부 온도와 풍미를 더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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