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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현 Oct 20. 2022

제 8화_블랜칭 (Blanching)

요리의 꽃 뱅킷 (연회 준비)

블랜칭 (Blanching)


블렌칭은 쉽게 말해 데치는 것을 의미한다. 블랜칭을 하는 이유는 식품 조직을 부드럽게 하고, 좋지 않은 맛을 없애 주며, 식품의 색깔을 한층 선명하게 해 준다.


호주 호텔에서 셰프로 요리를 하며 뱅킷에 처음 도전을 하게 되었다. 


뱅킷(banquet) 은 쉽게 말해 연회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같은 시간에 다 같이 식사를 하기 때문에, 셰프는 모든 음식이 따듯한 온도를 유지한 채 100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에게 최고의 음식을 동시에 제공을 해야 한다.


처음 뱅킷에 도전했기에 아직 모르는 것들이 정말 많았다. 


가장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손님의 특이 사항이다. 


저마다 식성이 달랐고, 특히나 호주 사람들은 왜 그렇게 음식에 민감한지 잘 모르겠다. 글루텐프리, 락토스, 비건, 페스카테리안 등등 사람마다 먹는 음식이 달랐고, 어떤 사람들은 특정 과일과 야채, 견과류의 종류에 따라 알레르기가 있기 때문에 레시피에 들어가는 모든 소스 재료 또한 신중하게 체크해야만 한다.


이렇게 손님의 특이사항을 확실히 인지한 후, 어떤 재료로 어떤 음식을 제공해야 할지 결정해야 한다. 물론 이 업무는 헤드 셰프님이 하기 때문에 나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어떤 디쉬가 나올지 결정되면, 이제부터는 프렙 하는 시간이다. 사람 숫자에 맞춰 닭고기와 양고기 준비하고, 엔트리, 메인, 디저트로 어떤 음식이 나갈지 전부 인지해두고 모든 재료들을 준비해둬야 한다.


일반적으로 주방에선, 디쉬를 요리하는 시간보다 재료를 준비하는 시간이 훨씬 길다. 7시에 시작할 연회를 위해 셰프들은 전날부터 준비를 해야만 한다.



모든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손님들이 식사하는 시간이 서서히 다가왔다. 시간은 대략 오후 6시, 오픈 키친에서 바라본 홀에는 사람들이 꽉 차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웅성웅성 떠들며, 주방을 바라보며 음식을 기다리기에, 나는 서둘러 다른 셰프들과 함께 음식을 준비했다.


메인으로 나갈 닭고기와 양고기 스테이크는 미리 내부를 익혀둔 후 오븐 같은 곳에 넣어 온도를 유지해 둬야 한다. 


그릴과 스토브의 개수가 100개의 재료를 한 번에 구울 수 없기 때문에, 이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음식 서빙이 시작하기 전, 오븐의 온도를 빠르게 높여 겉 면을 좀 더 크리스 피하게 만들거나, 그릴에 올려 그릴 마크를 새긴 후 음식을 접시에 플레이팅을 해야 한다.




메인 디쉬를 내보내야 할 차례가 다가왔고, 뜨거운 고기들을 빠른 속도로 하나씩 접시 위에 올렸다. 모양이 망가지지 않도록 조심히 올리고, 아스파라거스와 다른 가니쉬들을 예쁘게 쌓아 올려 음식이 식지 않게 서둘러 내보냈다.


사람들이 메인 음식을 먹는 동안 이제 디저트를 준비해야 한다. 


해보면서 느낀 건데 특정 시간 간격으로 웨이브가 몰려오는 게임을 하는 느낌이 들었고 솔직히 재미있었다.


메인 디저트는 딸기 컴포트를 올린 치즈케이크와 브라우니였다.


디저트는 이미 준비되어있기에 가니쉬만 많이 신경 쓰면 된다. 


디저트는 코스의 마지막 요리이고 사람들이 가장 마지막으로 기억될 음식이기에 눈으로 봤을 때 가장 아름다운 요리여야만 한다.


딸기 컴포트 & 치즈케익 / 초코브라우니 가운데 아이스크림이 빠져있다


가니쉬로 올라가는 설탕 데코레이션은 쉽게 잘 부서지기 때문에 애기 다루듯 조심스럽게 올리고, 하나하나 정성 들여 신속하게 음식을 내보냈다. 


사진에 보이진 않지만 손님에게 서빙 전 마지막엔 아이스크림을 페넬 모양으로 퍼서 올려 제공했다.



게임의 한 챕터가 끝나듯 엔트리부터 디저트까지 뱅킷은 문제없이 잘 마무리되었다.



뱅킷은 런치 디너 서비스와 많이 달랐다. 런치 디너 서비스는 주문이 들어오면 그 자리에서 빠르게 만들어서 나가야 하고, 밀려오는 주문에 정신없이 신속하게 계속 요리를 해야만 한다. 



가끔 예기치 못하게 재료가 소진이 될 때도 있는데, 그럴 때면 참 난처하다. 



그러나 뱅킷은 음식을 미리 준비해두고 만들며, 사람들이 얼마만큼 언제 올지 예측이 가능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음식에 모든 집중을 쉽게 할 수 있었다. 


뱅킷을 처음 경험해보며 나중엔 뱅킷만을 담당해서 일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크게 들었다. 


다만 뱅킷의 단점은 연회가 잡히면 주말이던 평일이던 주 6일 혹은 심지어 경우에 따라 주 7일 근무도 해야 하며 노동의 강도는 시즌에 따라 천차만별이었다.


뱅킷은 내가 상상하던 요리와 가장 근접했다. 뱅킷이 끝나고 나서 나는 뜨거운 물에 들어갔다 나온 블랜칭 된 시금치처럼 부드럽게 축 쳐졌지만 색은 더 푸르러졌다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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