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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현 Oct 18. 2022

제 7화_부케가니 (Bouquet Garni)

주방에서 영어가 잘 안 들린다

부케가니 (Bouquet Garni)



부케가니는 프랑스어로 꽃다발을 의미한다. 수프와 육수, 스톡, 소스 등에 넣는 허브 묶음으로서, 음식의 잡내를 제거하고 향을 더해 음식의 풍미를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 





주방은 하나의 부케가니 같은 곳이다. 여러 종류의 허브가 한 곳에 모아져 있다. 누구는 후추처럼 톡톡 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로즈마리처럼 나근나근하기도 하며, 간혹 넣은 건지 안 넣은 건지 티도 안나는 사람도 있긴 하다. 


각자 다른 종류의 허브들처럼 제 역할을 주방 이곳저곳에서 하며, 서로 잘 어울려 음식 속에 풍미를 더해야 한다. 그런데 한 녀석의 허브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문제는 이로서 발생한다.



나는 영어를 잘하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정말 누구보다 열심히 영어를 배우기 위해 노력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새로운 언어 습득력이 남들보다 현저히 낮았던 것을 스스로 알기 때문에 더 많은 시간을 쏟아 부었다.



재능 있는 누군가보다 더 더 많은 시간을 쏟아 노력했다. 공부를 하면서 다시 돌아보면 잊어버리기도 하고, 시간은 지나가지만 쌓여있지 않은 느낌에 노력은 배신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노력에 비해 성과는 두드러지지 않지만, 결국 의사소통에 큰 문제없는 단계까지 이른 건 내 삶에 매우 큰 영향을 끼쳤다.


싱가포르에 처음 왔을 때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싱글리시 발음은 내가 알던 기존의 미국식 영어 발음과 너무 달랐고, 생각 없이 들으면 이게 무슨 언어인가 싶기도 했었다. 


싱가포르에서 3년 말레이시아에서 5년간 살면서 이들 발음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영어 본토 사람들의 발음이 더 어려워졌다.


외국계 대기업에서 일을 하면서, 미팅은 주로 헝가리, 이탈리아 등 여러 유럽 국가와 아시아 국가들과 진행하다 보니, 인터내셔널 잉글리시에 너무 익숙해져 버렸다. 인터내셔널 잉글리시는 쉽게 설명하자면 영어에 슬랭(은어)이 없다. 


정말 직역하듯 서로 대화를 하기 때문에 오히려 이해하기 쉽고 본인들의 의사 표현이 확실하고 미국식 영어처럼 발음이 뭉개지지도 않기에 의사 전달이 더 쉽게 이루어졌다.


이런 커뮤니케이션이 8년간 지속되다 보니, 호주에서의 영어는 의외로 낯설게 느껴졌다. 


유튜브에서 외국인들이 한국어로 서로 대화하는데, 한국인은 외국인들의 한국어를 잘 이해 못 하지만 외국인들은 서로 이해하는 영상을 보았다. 지금 이게 호주 사람이 바라보는 내 모습이지 않을까 싶다.


주방에서 서비스 시간은 전쟁터와 비슷하다. '띠 디디딕 딕 ~!" 계속 밀려들어오는 주문, 무슨 주문이 들어왔는지 빨리 파악하고 본인에게 주어진 일을 서둘러 완성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귀를 항상 열고 있어야 한다. 보통 주문이 들어오면 헤드 셰프가 주문을 확인하고 주문을 읊는다. 


그런데 이 주문을 못 알아들으면 업무에 지장이 많이 간다.


가장 헷갈리는 게, 오리 가슴살 스테이크와, 오리로 만든 푸아그라, 술안주로 파는 타파스 세트가 있다. 오리 가슴살은 ‘duck breast steak’, 오리 간으로 만든 푸아그라는 ‘duck liver pate’, 타파스는 ‘ Rooftop Tapas’ 이렇게 부른다. 


하지만 주문이 들어오면 당연히 모두 친절히 읽어주지 않는다.





오리 가슴살은 “덕브뤳”, 오리로 만든 덕 푸아그라는 “덕 빠뗴” 혹은 “빠테”, 타파스는 “따빠-s” 이런 식으로 읽으니 닭 가슴살을 시킨 건지 덕 푸아그라 시킨 건지 아니면 타파스를 시킨 건지 너무 헷갈리는 경우가 많다.


아직까지 호주 악센트에 대한 해결방안을 찾지 못했다. 더 큰 문제는 호주 사람은, 사람마다 악센트가 달라서 이 사람 호주 악센트에 적응을 해도, 다른 호주 사람의 악센트에 적응하기 위한 훈련과 시간이 또다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호주 주방에서 요리사 셰프로서 노력이 많이 필요할 것 같다.



주방에서 나도 음식의 풍미를 더해줄 수 있는 하나의 허브로서 제 역할을 해야 하는데 이놈의 리스닝이 완벽한 부케가니를 방해하고 있다.





사진 출처 : https://www.pexel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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