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민 Aug 12. 2022

제주살이 로망을 만들어준 그 곳

#제주도 #재주장터

여행에도 궁합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궁합이라 함은 나와 여행지의 합이 아닌 나와 함께 가는 사람의 합을 의미한다. 상대가 계획형인지 즉흥형인지, 관광지를 원하는지 현지 명소를 원하는지, 맛집이라면 무조건 기다려서 먹어야 하는지 맛집의 옆집을 가도 상관없는지, 하다 못해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는지 아닌지 조차도 여행 궁합의 체크리스트에서는 중요 요소로 손꼽힌다. 오늘의 인터뷰이는 필자의 오랜 여행 메이트다. 그녀와 나는 MBTI는 상극이어도 신기하게 여행 궁합만은 찰떡을 자랑하는데, 덕분에 지난 10여 년간 국내외 곳곳에 숱한 발자국을 함께 찍어왔다. 그녀가 오늘 인터뷰에서 최애 장소로 꼽은 곳 또한 필자와 같이 떠났던 곳 중 하나다. 그간 여행을 하며 다양한 숙박 시설에 머물렀지만 한 번 간 곳을 두 번 이상 간 적은 없었는데, 이곳은 수년간 여러 번 제 발로 찾아간 곳이다. 사람과 여행지 사이의 궁합도 측정할 수 있다면 아마 넉넉히 백 퍼센트가 나올 만한 곳, 아쉽게도 지금은 없어진 곳이다.


-먼저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요즘 이직을 고민을 하고 있어서 걱정이 많고, 머리가 복잡하고, 정리가 되지 않은 상태의 봉은진입니다.


-그러시군요. 같은 처지입니다. (탄식) 그럼 거두절미하고 바로 여쭤볼게요. 주로 다니는 혹은 과거에 자주 다녔던 동네는 어디신가요.

홍대입니다. 그중에서도 상수 쪽과 연남 쪽 그리고 경의선 숲길 쪽이요. 제가 이전에 홍대 정문 입구에 살았었거든요.


-그러면 은진 씨가 좋아하는 장소도 그쪽에 있나요?

그 근방에서는 경의선 숲길이나 상수, 당인리 발전소 있는 쪽, 그런 산책할 수 있는 곳을 좋아합니다.


-평소에 산책을 좋아하시나 봐요.

네, 저는 약간 개처럼 누가 저를 산책을 시켜줬으면 좋겠어서요.


-혼자는 안 가시고요?

그러니까 개인 거죠. 혼자서는 갈 수 없거든요.


-왜 주체적인 개들도 있잖아요.

주체적인 개가 어디 있어요. 집 나가면 다들 주인이 찾기 바쁘지. 개가 혼자 나가면 그건 큰일이 되는 거예요, 시골이 아니고서야. 개가 집을 나가면 온 동네 사람들이 다 찾아다녀요. 어쨌거나 저는 누군가가 절 데리고 산책을 시켜줬으면 좋겠는데, 위에 얘기한 경의선 숲길, 당인리 발전소 등이 그렇게 산책하기 좋은 코스들인 거죠.


-아, 그래서 그쪽을 좋아하셨군요. 그럼 앞 질문이랑 조금 비슷한 질문이 될 수도 있는데,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장소가 있다면요?

좋아하는 장소이기도 했고, 기억에 남는 장소는 제주도에 있었던 게스트하우스 재주장터입니다.


재주장터 내부 모습
재주장터의 시그니처였던 맷돌 커피


-재주장터에 특별한 기억이 있으신가요?

그때가 2015년 여름이었어요. 제주도를 자주 안 가던 시기에 뭔가 물꼬를 트듯이 간 순간이었는데, 그 시기에 처음 간 곳이어서 더 기억에 남기도 해요. 그런데 만약 처음 간 곳이 재주장터가 아니라 다른 게스트 하우스였거나 그냥 일반 호텔을 갔다면 그 이후에 그렇게까지 제주도를 자주 가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처음 갔을 때 재주장터와 제주도 자체에 대한 첫인상이 너무나 좋았던 거죠. 그래서 그걸 계기로 그 이후에도 계속 찾게 되었던 것 같아요.


-그때 저랑 같이 가셨죠. (웃음) 저는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왜 하필 제주도를 가게 되었던 것인지 기억나시나요?

그냥 어디 딱히 갈 데는 없고, 저희끼리 얘기하다가 이번에 가까운 제주도로 여행을 가보는 건 어떨까 해서 아마 갔던 것 같은데. 저도 정확한 이유는 기억이 나지 않네요. 아무튼 그때 가서 반딧불도 보고, 하루는 온전히 우리끼리 먹고 놀고, 이튿날에는 다른 손님들이랑 같이 머물면서 놀았던 기억이 나요. 생각해보니 너무 우리만 있었으면 그것도 좀 심심했을 것 같은데 하루는 우리끼리 놀고 또 하루는 남들이랑 놀면서 더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그 이후로 거의 매년 가셨죠. 1년에 적어도 한 번씩은.

2015년에 처음 간 이후로 3, 4년간은 매년 제주도에 갈 때마다 재주장터에 갔어요. 혼자 가기도 하고, 다른 친구들이랑 가기도 하고요.


-재주장터를 또 가야겠다고 생각한 이유가 있었나요?

우선 주인 오빠가 친절했고요. 진짜 저렴했어요. 당시 에어비앤비에서 찾았는데, 텐트 3~4인짜리 하나가 1박에 5만 원 정도 했거든요. 1~2인짜리는 3만 5천 원이었고. 그래서 둘이 각 2만 원도 안 들었어요. 게다가 다른 게스트 하우스들은 보통 막 ‘이제 방에 들어가세요, 시끄럽게 하지 마세요, 조용히 하세요’ 이러잖아요. 저녁 소등 시간이나 아침 조식 시간 등 정해진 규칙들이 많은데, 재주장터는 그런 것이 하나도 없었어요. 게스트 하우스인데도 불구하고 말이죠. 약간 명절에 사촌 오빠네 놀러 가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호스트가 이렇게 자유로웠고, 또 착하고 잘 챙겨줬고, 당시 재주장터 시그니처나 다름없었던 맷돌 커피도 내려줘서 편하고 좋았죠. 아, 루프탑도 너무 좋았고요. 그 오빠도 재주장터를 오픈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였기 때문에 그렇게 다 퍼주고 잘해줬던 것 같아요. 이런 점들이 좋아서 자꾸 가게 되었죠. 그다음 해, 그 다다음 해, 그 다다다음해에도 계속 누군가를 꼬셔서 같이 갔으니까요.


재주장터 터


-맞아요. 은진 씨는 재주장터가 없어지기 전까지 계속 가셨죠. 없어지고 나서는 못 간 거고.

아니요. 없어지고 나서도 갔어요. 가서 재주장터 있던 건물 앞에서 사진 찍고 무슨 유적 구경하듯이. (웃음)


-재주장터를 생각할  어떤 마음이 드시나요.

아까 말했듯이 사촌 오빠네 놀러 가는 듯한 그런 기분이요. 일단 제주도에 대한 좋은 기억을 남겨준 곳이기 때문에 좋기도 하고요. 또 오빠 나이대가 우리랑 좀 비슷한 또래였고, 원래 제주 사람이 아닌데 일을 하다가 접고 제주에 가서 게스트하우스를 한 사람이어서, 오빠를 보면서 저도 제주살이에 대한 로망이 생기기도 했거든요. 그냥 제주도에서 사는 게 나쁘지 않은가 보다 이런 생각? ‘연세'라는 개념도 그 당시에 처음 알게 되었고, 갈 때마다 이런 삶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면 지금 쉬시는 김에 한번 가서 살아볼 생각은 없으신가요.

가려면 갈 수 있겠죠. 그런데 처음에 얘기한 것처럼 제가 아직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고 복잡한 상황이라, 조금 뭔가 정리가 되어야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아요. 제주도까지 가서도 계속 이런저런 신경을 쓰고 있으면 가서 산다고 해도 마냥 행복하진 않을 것 같고, 온전히 즐기지 못할 것 같아서요.


-아마 올 가을에는 갈 수 있지 않을까요.

가을에 가면 좋죠. 날씨도 좋고.


-그렇죠. 그럼 가을에 한 번 가보시는 걸로, 같이?

네, 좋아요. (웃음)


-마지막 질문인데요. 누군가 그곳에 가게 되면 무엇을 하면 좋을까요? 비록 지금 재주장터는 없지만.

재주장터가 있던 곳이 고산 우체국 근처예요. 그 맞은편에 짬뽕집이 있는데 정말 맛있거든요. (이름은 잘 기억이 안 나는데) 그 근방 가시게 되면 짬뽕을 드셔도 되고, 또 뒤편에는 산도 아니고 오름도 아닌데 약간 언덕 같은 곳이 있어요. 올라가서 보시면 경치도 좋으니까 구경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아니면 고산 우체국 가서 편지 한 통 쓰셔도 되고요. 미래의 자기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라던가. (웃음). 또 거기가 협재 해수욕장 근처예요. 협재 근처에 크게 볼거리는 없지만, 제주도의 흔한 관광지를 벗어나 제주 로컬 느낌을 내고 싶다면 들러보셔도 좋을 듯합니다.

이전 04화 사람으로 기억되는 장소가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